F는 T가 싫다

by 에포트리슬리

어느 날 언니가 집에 오더니 “오늘 기분이 우울해서 빵을 샀어” 한다. 나는 가슴이 철렁해 속으로 “무슨 힘든 일이 있었길래 우울했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조카는 “무슨 빵 샀어?” 물었고, 형부는 “그 빵 지금 어딨어?” 한다.


“왜 힘들었어”류의 질문이 F의 전형적인 반응이란다. T의 전형적인 대답이 조카의 물음이고. 도대체 형부의 반응은 어떤 범주에 속하는 거지? 본인의 변명에 따르면 배가 너무 고픈데 그 말을 해서 그리 물은 것이란다. 뼛속까지 철저한 에고이스트적인 반응이다. 그 답이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


나의 가족들은 주로 T인 듯하다. 종종 공적인 일을 다룰 때나 업무를 처리할 때나 지나치게 T인 나는 개인사나 가족일에서는 또 지나치게 F인지라 가끔, 아니 아주 종종 힘들다. 아빠를 간병하면서 갖게 된 나의 가장 큰 불만의 가족들의 대응이다. 가장 시간과 정서적 여유가 많은 내가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데는 이제 불만은 어떻게 해결한 상태지만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으나 다른 방법이 없기에 운명이라 체념하고 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과 시간을 얘기로 풀 사람이 없어 짜증 난다.


항암 6차를 마치고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을 때도 나는 뭔가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원했다. 함께 앉아 맥주라도 마시며, 그 간의 어려웠던 일들을 기억하며, 농담도 하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가 바란 유일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번 퇴원을 하고 돌아오면, “수고했다” “고생했다” 이런 말들은 없었다. 물론 마음조차도 없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저 내 가족들은 표현이 서툴렀다. 이런 문제로 한 열 번은 싸운 것 같다. 이후에 조금씩은 더 표현하지만 나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내가 기대를 낮추고 포기한 면이 크다.


연명치료에 대한 내 생각은 아빠의 투병을 지켜본 후 많이 달라졌다. 나는 부모님이 우리 곁에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펑펑 울만큼, 그 말을 입에 차마 담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아프면서 고통스럽게 병을 이겨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른 환자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고통스러운 숨만을 연장하는 것이 환자에게 결코 득이 되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루는 주말 간병을 마치고 온 나에게 언니가 아빠 연명치료거부서 사인시켰냐고 묻는다. 첫 질문이 “아빠는 어떠셔?”이거나 “많이 피곤하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속에서 불이 났지만 한 템포를 참고 “언젠가 하긴 할 건데 지금 물을 질문은 아닌 것 같다”라고 무람히 응수했다. 그러고 나서도 밥 먹는 나에게 “아니, 이건 중요한 문제잖아. “너도 연명 치료 거부서 사인해” 한다.


아니, 어차피 나도 언젠가는 연명치료거부서에 서명을 할 테지만, 지금 그 얘기를 꺼낼 타이밍인가? 더구나 나는 아직 기저 질환 하나 없는 건강한 육신인데, 갑자기 연명치료거부서가 그렇게 급해진 건가? 패션에도 TOP가 있거늘, 이토록 진중한 대화주제는 말해 무엇할까? 밥을 먹다 폭발한 나는 한바탕 모진 말과 분노를 퍼부었다.


며칠 전이다. 아빠가 심부전이 온 그날 이후 나는 종일 울고 다녔다. 다 큰 어른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내 방에서도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그날 저녁 간병인에게 아빠를 맡긴 지 반나절만에 다시 병원에 온 나는 또 울었다. 풀린 수도꼭지 마냥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언니 둘에게 아빠를 면회할 시간을 주고 병동 휴게실이자 로비로 나온 나는 또 한바탕을 울고 나서 큰 형부에게 배고프다고 맛있는 걸 먹자고 웃으며 말했다. 형부는 그런 나에게 슬프든지 즐겁든지 하나만 하라고 성을 내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기가 막혔다. 나는 본시 유쾌한 성정인지라 슬픔 중에서도 유쾌함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인 것일 뿐이다. 화가 난 나는 슬픔에 빠진 처제에게 할 위로의 말이 그것밖에 없냐고 물었다. 이런 눈치로 어떻게 직장생활을 30년을 했냐고 나도 핀잔을 주었다.


이번뿐이 아니다. 그전 주에 피곤에 지쳐 집에 갔다 다시 주말에 교대하러 병원을 향하는 나를 태워다 주면서 임원 승진에 누락된 작은 형부 걱정을 하며 어떻게 지내냐 묻는다. 나는 지난 1주일 간 병원에 갇혀있느라 작은 형부를 본 적이 없다. 게다가 피곤, 수면부족, 스트레스에 쩔어 곤죽이 된 처제에게는 힘들지 않냐, 고생한다는 단 한마디의 위로도 건넨 적이 없으면서, 최근 태국에 같이 골프 여행 다녀오느라 친해진 작은 형부 걱정을 하고 있다.


정말이지 나는 눈치도 없고, 감정이입이 없는 T가 너무너무 싫~~~~~~~다.


옆 베드 환자는 3주 정도 입원해 있는 듯한데 아주 귀여운 목소리에 그렇지 못한 외모의 딸과, 그 딸을 똑 닮은 외모의 엄마가 번갈아 간병을 한다.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지 대화내용이 매번 다 들린다. 저녁은 뭘 먹느냐, 아버지 상태는 어떠냐 다정한 대화가 오간다. 오늘은 수혈을 받는다, 입원한 지 한 달이 넘으니 병원이 집 같다며 서로 다정한 대화가 오가더니, 라면 붇지 않게 어서 먹으라고 닮은 듯한 아이 같은 음성으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순간 뭔가 쿵 하고 뇌리에 꽂힌다. 우리 엄마는 병원에 있는 동안 나에게 별로 전화를 하지 않는구나. 헐, 우리 엄마도 T였어. 그나마 믿었던 우리 엄마조차 T였어. T에게 둘러싸인 F는 정말이지 T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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