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간병인 섭외에 역대급 실패를 맛본 나는 검증된 간병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입원한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 눈에 띄는 분은 없나 예의주시하기로 했다.
조여사님은 처음에 샤워실에서 마주쳤다. 곱상하신 외모에 가느라단 체격 때문에 나는 환자 가족인 줄 알았다.
보통 간병인 여사님들은 독특한 바이브가 있다. 업체 로고가 새겨진 단색의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계신 경우가 많고, 중간정도 체격이지만 다부진 느낌이 있었다.
조여사님은 야리야리한 데다 부잣집 사모님 포스가 나서 처음에는 환자 가족으로 보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냥 일반적인 기준이나 느낌을 말한 것이다. 조여사님은 내가 간병인인 줄 알았다 하신다니 나 본인도 굳이 범주화 하지면 간병인 외모에 속하는 셈이니 제 얼굴에 침 뱉을 일이 있겠는가.
여하튼 만일을 대비해 조여사님의 번호를 따 두었고, 낯가리는 아빠를 위해 자주, 수시로 놀러 오십사 청해 두었다. 아빠는 첫 간병인에게 -물론 손을 결박하려는 행동 때문에 그랬겠지만- 천둥 같은 소리로, “가! 가”를 외쳤다 한다.
조여사님이 지금 담당하고 계시는 환자는 스님이신데, 병원 장기 입원이 지겨워 일주일 외출을 다녀오셨다가 다시 골수이식을 위해 입원하실 것 같다 한다. 그 사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 하신다. 그 며칠 사이에 번아웃이 와 버린 나는 언니에게 “너”는 견딜만하냐 묻는다. 그렇다. 나는 싸가지가 없다. 언니에게 반말을 시전 한다. 언니는 "나도 힘들다" 한다. 나는 떠벌려야 스트레스가 해소가 되는 사람인데, 언니는 왜 당최 말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잘 맞으면 부탁드린다고 조여사님을 예약해 두니 시간 날 때마다, 심심할 때마다 뻔질나게 오신다. 아빠랑 익숙해질 테니 좋기는 하지만 가끔은 귀찮기도 하다.
여하튼 내색 없이 모든 연령대와 모든 직업군과 모든 인종과 씨부림 (말 섞음 또는 스몰 토크 또는 대화)이 가능한 나는 조여사님과 곧잘 재미난 얘기를 나눈다. 조여사님은 중국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다 은퇴하시고, 한국에 건너오셔서 12년을 남편과 함께 같은 식당에서 일하셨단다. 엉덩이가 가볍고 손이 잰 편이라 지금도 식당주인이 다시 오라 하지만 식당일은 힘에 부쳐 이제 못 하신단다. 식당일을 그만두고 직장 연금에 모아둔 돈으로 윤택하게 살 일만 남았건만 아들이 코로나 시국에 식당을 개업해 다 말아먹고 빚을 진 관계로 그 빚을 대신 갚아 주신다 했다. 남편분과 한 달에 번 돈 중 400백만 원을 부쳐 주신단다.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우신 조여사님은 내가 장단을 잘 맞춰서일까, 심심하셔서일까 그 뒤로도 하루에 댓 번씩은 찾아오신다. 이야기를 듣다 나의 뇌가 하품을 하고 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커튼이 열리면 어떤 때는 너무 귀찮아 눈을 감고 자는 연기를 시전 한다. 결국 조여사님의 스님은 중요 수치가 낮아져 일주일 외출이 불허되는 바람에 조여사님의 도움을 받을 기회가 없어졌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언니와 내가 계속 간병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양치기 소년처럼, 며칠만 더, 며칠만 더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던 차, 조여사님이 옆 병실에서 알게 된 간병인의 일정이 끝났다면 소개해 주신다 한다. 언니가 당번일 때 오셔서 짐을 놓고, 이틀 후 치과 치료를 받으신 후 다시 돌아오셨다 하시는데 언니 말에 따르면 인상이 아주 좋아 보이 신다 한다.
이여사님이 내가 당번이던 토요일에 오셨다. 듣던 대로 인상이 좋고, 키도 훤칠하신 미인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중국에서 무용 과목을 담당하던 선생님이라 하신다. 배움도 있으시고, 인성도 있으시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간병인이다. 더구나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아버지와도 아주 잘 지내셨다. 우리가 간병할 때보다 환자는 손발까지 요령껏 씻겨 주시니 신수가 훤해졌다. 기저귀 착용 부위의 짓무름도 훨씬 덜했다. 남이라 그런지 가래 뽑을 때나, 체조시킬 때도 훨씬 협조를 잘하신단다.
이렇게 좋은 간병인을 만나려고 처음에 이상한 간병인을 만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심이 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두 여사님께 감사한 마음에 점심을 사드리겠다 하니 칼국수를 잡숫고 싶단다. 칼국수에 만두는 맛나게 먹고, 커피숍에서 수다를 떤다. 간병인의 애환은 간병인이 안다. 셋이 앉아 환자 흉도 보고, 간병인의 애환을 나누자니 속이 풀린다.
언니라 부르라 하시니 70이 가까운 조여사님은 큰언니, 60을 바라보시는 이여사님은 작은언니가 된다. 이렇게 또 소중한 인연을 하나 더 쌓아간다. 나라는 사람의 인간관계 스펙트럼은 얼마나 더 넓어질 것인가? 시의원에 출마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