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운이 없고, 더 억세게 운이 좋다

by 에포트리슬리

12차 입원 (2025년 12월 ~ 2026년 2월)


백이면 아흔여덟 정도, 내가 지켜본 간병인 분들은 성실했고 프로페셔널했다. 아래 사례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다른 성실하고 훌륭한 간병인 분들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한 달 여를 언니와 번갈아 병실을 지키다 보니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다. 밤에 수시로 깨는 것은 그런대로 익숙해졌지만, 매일 환자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다 보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 소음으로 귀를 막아보지만,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신음 소리 때문에 정신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간병인을 쓰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지속하다가는 부친을 더 미워하게 되고 (지금도 종종 미우니까), 부친과 나머지 가족 구성원에 대한 원망만 깊어질 것이 뻔했다.


월요일부터 간병인을 쓰기로 하고 병원에 비치된 전화번호 중 셋을 돌렸다. 주말 이른 오전인지라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옆 병실 간병인 분에게 아는 분을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사이 전화했던 업체 하나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대강의 비용과 조건을 들은 후 통화를 마쳤다. 통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병인분에게 전화가 왔고 월요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옆 병실 간병인 분에게는 그 사이에 섭외가 되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월요일 오전이 되어 약속한 시간을 넘겨 간병인분이 도착했다. 병동 밖으로 마중을 나간 나는 살짝 놀랐다. 먼저 짐 가방이 4개나 되는 것에 놀랐다. 거기다 간병인은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헤어 밴드를 하고, 연한 갈색 코트를 입었으며,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익숙했던 간병인 분들의 옷차림과 사뭇 달랐다. 편견을 갖지 말자, 다짐을 하고, 짐을 두 개 정도 들어드리고 병실 안내를 하고 환자를 맡기고 나왔다.


재택인 날인지라 퇴근하자마자 큰언니와 함께 아빠를 살피러 갔다. 내 눈을 의심했다. 간병인은 휴대폰을 보고 있고, 아빠는 넋이 나간 상태에서 느닷없이 소변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베드 시트는 반쯤 벗겨진 데다가 온갖 용도를 모를 잡동사니들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고, 심지어 풀린 붕대가 양손 언저리에 있었다. 결박을 위한 용도였을 것으로 보였다. 아빠가 덮고 있어야 할 담요는 간병인이 보조 의자에 깔고 앉아 있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화도 났지만 자초지종을 모르기에 간병인의 설명을 기다렸다. 아빠가 화장실 가신다고 내려오시다 주저앉아서 다시 내려오시지 못하도록 소변 주머니를 달고 붕대로 묶어 두었다는 것이다. 잘하셨다 말하고, 자신이 소변통을 비우러 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간병인의 설명에 그럴 수 있다 위로를 했다.


그 사이 건너편 베드의 가정 불화 할머니가 손으로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큰일이 날 뻔했다고 낮은 소리지만 입을 크게 벌려 말했다. 자초지종을 파악코자 가정 불화 할머니를 밖으로 나오십사 손짓을 하니, 아빠가 넘어지신 것을 본인이 발견해 간호사 5명이 와 일으키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너무 놀라 간호사에게 사정을 물으니 비슷한 상황을 전해주었다. X레이 촬영 결과 골절은 없고, 환자 상태가 양호해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같이 간 큰언니는 갑자기 나빠진 아빠의 상태와, 간병인이 만들어 놓은 혼란의 도가니를 보고는 펑펑 울었다. 큰언니와 얼마 전 퇴근해 도착한 작은 언니에게 아빠와 잠시 머물 시간을 주고자 나는 병동 밖에서 기다렸다. 간병인에게 2만 원을 쥐어주고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오시라고 했는데, 무슨 까닭인지 병실에서 버티고 나가지 않으려 하더니, 겨우 나가시라고 타이르니 병동 밖 복도 휴게실에 앉아있다. 돈을 아끼려나 부다 정도로 생각하고 내버려 두었다.


30분 정도 후 병동 밖으로 나온 언니가 본인이 간병하겠다며 간병인을 보내자고 한다. 이런 악역은 법을 전공해 말발이 좋고, 사람을 잘 후리는 내가 적격이다. 봉투에 일당을 넣고 “언니가 아빠 상태가 걱정돼서 직접 간호하고 싶다고 한다”며 너무 죄송하다는 인사를 여러 번 정중하게 전하고 간병인을 보낸다. 짐을 바라바리 싸 간 간병인은 병동 앞 휴게실 의자에 앉아 귀가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나중에 앞 베드 환자 어머니와 다른 간호사, 주변인을 통해 종합한 이야기는 가관이었다. 아빠는 기운이 없어서 간병인을 쓴 첫날이자 마지막인 그날은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화장실에 갈 꿈은 꾸지도 못했고, 소변도 누워서 내가 직접 다 소변통으로 받아냈다. 그런 아빠가 간병인이 한참 동안 자리를 비우는 사이 소변이 급해 베드에서 나오려다 간병인이 침대 사이드에 바리케이드처럼 쳐 둔 붕대에 걸려 넘어져 링거줄이 목에 걸리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나의 추론은 그렇다. 환자가 자기 맘대로 움직이면 본인이 나다니기 피곤하니 붕대를 가져다 손발을 묶어 둔 것이다. 섬망은 왔으나 비교적 의식이 있던 아빠는 그게 답답해 계속 풀려고 시도했던 것 같았다. 상황을 제대로 전하지도 않았고, 적당히 거짓말을 버무려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그 간병인에게 너무 화가 났다.


여러 경로로 좋은 간병인을 소개받으려고 했다. TOP 10안에 드는 서울종합병원의 법무 팀장인 친구, 보험사에 다니는 가족 등을 통해 알아봤으나 별 소득이 없어 할 수 없이 섭외한 간병인이었다. 이제껏 정말 잘하는 훌륭한 간병인을 무수히 봐왔기에 큰 염려를 안 했건만 이렇게 참담하고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다니. 간호사는 운이 정말 없었던 케이스 같다고 했다.


그런 중에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은 다행히 아빠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속히 우리가 조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환자를 학대하는 간병인은 먼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나를 원망했고 아빠에게 너무 미안했다. 너무 운이 없었지만, 그 보다 더 큰 운으로 잘못된 사람을 만난 불운을 빨리 피했다.


이 지면을 밀어 상황을 신속히 꼰질러 주신 같은 병실 이웃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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