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를 위한 준비

by 에포트리슬리

주치의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받고 난 후 감정은 더할 나위 없이 흔들리지만, 상황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이게 정말 내게 일어난 일인가 너무나도 어색하고 적응이 되지 않는다.


바로 다음날 재택근무를 하며 부친 가까이 머무를 준비를 하고 오려했으나, 마냥 재택만 할 수는 없다. 최대한 재택을 아껴 요긴하게 쓰려는 생각 그리고 부친의 컨디션이 어지간하다는 동생의 전갈을 들은지라 주중을 서울에서 보내다 토요일에서야 주섬주섬 무언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그 일에 대비한 짐을 싸 기차역으로 향한다.


금욜일에도 출발할 수 있었지만, 몇 주 동안 업무가 많아서인지 피곤한 몸을 좀 쉬고 싶다. 사실 그보다는 부친을 다시 대면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매번 이 순간이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솟구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전철을 타고 기차역에 내린다. 아빠가 서울병원에서 지방병원으로 전원 한 지 얼추 한 달이 지나고, 그 사이 세 번째 여행이니 기차역이 한없이 익숙하다.


이 기차역에도 아빠와의 기억이 지천이다. 항암을 마치고 서울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부친을 모셔다 드리며, 옷을 잘 여미라고, 모자도 쓰라고 지청구를 하다 귀찮아하는 아빠에게 플랫폼에서 버럭 하던 기억.


혹시 항암 환자에게 치명적인 감기라도 걸릴까 마실 필요도 없는 커피를 사고 커피숍에 앉혀 놓으면, 비싼 거피를 왜 마시냐며 속도 모르고 내게 타박을 하던 기억.


그때는 그래도 아빠가 걸어 다니실 수 있고 거동이 자유로웠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바라보지만 나는 숱한 경험을 통해 안다. 마음의 소원은 간절할수록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고, 그래서 희망사항이라는 네이밍이 주어진 것이다. 그런 헛된 희망은 애초에 싹둑 접는다.


아빠가 병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계절은 겨울을 지나 봄이 되었다. 다행이다. 추운 날, 그래서 기분마저도 잔뜩 웅크린 날 아빠를 보내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화려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공기마저 따사로워 마음을 한껏 보듬어주는 따뜻한 계절이라 큰 위로가 된다.


기차를 타고 1시간 반여 만에 도착한다. 택시로 이동해 병원에 들러 아빠를 만난다. 귀에 대고 언제든 하나님이 데리러 오시면 아멘하고 쫓아가시라 전한다. 어디 목돈 모아둔 거 있으면 어서 나한테만 말하라고 농담을 한다. 실없는 소리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든 꺼이꺼이 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흰소리를 한다.


아빠를 만나고 다시 집에 온다. 엄마, 아빠네 집에는 따로 내가 쉴 공간이 없다. 1층을 넓게 쓰려고 방을 2개만 냈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뭉개고 있는 나에게 2층에 사는 동생이 아빠 방을 정리하고, 침대 시트도 갈아 놨다고 들어가 자라고 한다.


순간 주저했다. 아빠 방에 들어가면 아빠 생각이 나 계속 울컥할 것 같아서였다. 잠시 주저하다 아빠 방에 들어왔다. 아빠 방에 있는 15년도 더 된 오랜 올드한 취향의 가구. 당시 많은 돈을 주고 구매한 십장생 따위가 그려진 가구는 그 오랜 세월에도 어찌나 견고한다. 아빠가 지금 쓰는 침대는 내가 쓰다 물려드린 것이다. 300백만 원이 넘는 싱글 침대. 허리가 아픈 나를 위해 언니가 돈을 보태 줘 산 것으로 전동 침대이다. 게다가 진동 마사지 기능이 탑재되어 잠이 솔솔 잘 오고, 뻐근한 몸을 풀기에도 좋다. 하지만 매트리스가 너무 소프트하다 보니 허리가 더 아파 딱딱하고 큰 침대로 바꾸느라 여기로 오게 된 것이다.


아빠가 병원에 계시다 보니 나에게 이 침대를 쓸 수 있는 호사가 생겼구나. 지난번엔 거실 바닥에 자다 보니 웨이트 운동을 잘못해 다친 어깨가 더 탈이 났었다.


아빠 방에 누워 티브이를 켠다. 쨍한 햇빛이 창으로 들어온다. 아빠 방은 1층에서도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이구나. 우리 아빠는 이 방에서 지내는 동안 따스운 볕을 잘 누리셨구나. 내심 안심이 된다.


거실에 걸려 있던 남동생의 결혼사진. 사진 속의 아빠는 젊었고 짱짱했다. 그 사진을 보니 또 울컥했지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속상한 마음을 이렇게 위로한다. 우리 아빠는 지금은 병원으로 이사를 간 것이고, 이제 곧 천국으로 다시 이사를 가는 것이라고. 여전히 우리와 같은 시공간을 사는 것이라고.


며칠 전 만난 친구는 천국에서 만날 소망을 품으면 조금 위로가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노쇠한 부모님과 이별할 때 가장 힘든 이유는 육신의 눈으로는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니던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기약이 있고, 그 어디선가가 고통도 슬픔도 없는 그런 곳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큰 위로가 된다. 떠나갈 아빠에게도, 남은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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