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나는 내 20년 지기 친구를 떠올렸다. 드라마 속의 인물과 똑같지는 않지만, 서로를 무척 사랑하고 아끼면서도,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질투하는 그런 애증의 관계가 조금은 닮았다. 가장 큰 차이는 남자 취향이 달라 한 남자를 두고 둘이 다툴 일은 죽었다 깨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첫 직장에서 만났다. 키도 크고 미인인 윤은 새침데기 같은 외모와는 달리 푼수 같을 정도의 순수함과 친화력을 갖춘 친구이다. 해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대학도 미국에서 나와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 갓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 영어는 영어 관련 전공자임에도 그리 훌륭하지 않았으며, 나도 그런 영어가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한 번은 미국 대사관에서 온 서기관과 통화를 하는데 한국계 미국인인 그가 나의 부족한 영어가 답답했는지 지난번 통화한 윤을 바꿨으면 하는 내색을 비췄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윤과는 이미 친한 친구였기에 그 마음을 애써 눌렀다.
몇 달 후 회사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회자가 필요했다. 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부서였던 윤에게 도움을 청했다. 윤은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우리끼리는 동의했지만 부장 승인이 필요했기에, 당시 우리 부장은 불편한 관계였던 윤의 부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며 푸념을 했다. 말로 뱉지는 않았지만 “너는 왜 그걸 못하냐”는 속마음이 보였다.
그런 우여곡절과는 상관없이 윤과 나는 행사를 같이 준비하며 서로 셀카도 찍고 철없이 까불며 놀았다. 윤이 사회를 보는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그녀가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영어는 딸렸지만 일은 똑 부러지게 잘했던 나는 몇 개월 후에 고위관료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전에 나를 망신 주었던 미대사관 서기관의 회의장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현장에서는 담당 관리자가 최고 존엄이기에, 그 서기관의 아쉽고도 조금은 비굴했던 그 눈을 잊을 수 없다. 상당히 통쾌한 순간이었다. 나의 모자람을 탓하며 타박했던 내 상관은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치고 모든 직원들의 입이 마르는 칭찬 속에 개선장군처럼 2주간의 호텔 체류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온 나를 보며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진득하고 참을성 많은 윤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계속 근무했지만, 조직의 비정함에 정이 떨어진 나는 다른 기관으로 이직했다. 서로 다른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만나며 더 친해졌고 서로의 연애와 일상사들을 공유하며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베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썸 타는 상대에 대한 얘기까지 모두 공유하던 우리 사이에, 내가 모르는 남자를 갑자기 소개받으며 거기에 갑작스러운 결혼까지 나는 심란해졌다. 가뜩이나 나는 그때 짝사랑 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헛헛한 심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의 결혼식 장에 동해하던 길에 둘이 리무진 안에서 꽁냥꽁냥거리던 모습은 나를 더욱 외롭게 했다. 이때 처음으로 윤에게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꼈다.
윤은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남편의 직장을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홍콩으로 떠난 뒤에는 간혹 나누던 카톡 대화도 뜸해졌다. 시댁과 친정 때문에라도 간혹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리라 추측했지만, 더 이상 윤은 한국에 와서도 첫 해를 빼고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설사 연락했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남편이 항상 동반하는 윤의 모습은 생소하고 어색했다.
나는 나의 베프를 잃어버린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게 10년 여를 보냈다. 1년에 한 번 정도 카톡으로 연락을 하던 연에게 여느 때처럼 안부를 묻는 카톡이 왔다. 그때 이후 매일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윤은 이혼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정황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당황했다. 그러나 오히려 더 괴로웠던 건 윤의 이혼을 도와주면서였다. 알아서 반가울 것 없는 내밀한 부부의 가정사를 알게 되는 것도 괴로웠고, 윤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다는 것도 힘들었고, 능력이 없어 크게 도와줄 수 없는 내가 한스러웠다. 회식이나 모임을 제외하고 집에서는 술은 입에 대지도 않던 나는 거의 매일 집에서 술을 마시며 고통스러운 생각과 시간을 견뎠다.
국경을 넘나드는 드라마 같던 이혼 소송이 결국 합의로 종결되고 1년 여가 지나 윤은 한국에 돌아왔다. 윤의 이혼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나는 이제 내 친구가 내 인생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뻤다.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희망사항이었다. 윤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나를 거의 만나주지 않았다. 통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윤은 세상과 담을 쌓았다. 그리고 그 담 밖에는 나도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자신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그녀를 오롯이 이해할 수 없다.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다. 사실 윤이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 더 크다. 온전한 내 친구가 되어 몇 달만의 통화가 아닌 자주 목소리도 들었으면 좋겠고, 힘들 때 연락할 수 있는 1순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은 술 취향이 나와 다르다. 이탈리아에 산 적이 있어 어려서부터 와인을 접했지만, 오히려 독주인 스피리츠가 잘 맞는다고 했다. 와인도 도수가 높은 포트와인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소맥도 좋아하고, 샴페인도 좋아하며, 바롤로를 좋아한다.
포트와인은 바디감이 무겁고, 탄닌도 강한 데다 알코올 도수도 20도 정도인지라 보통 중년 이상의 연령대가 좋아하는 와인이다. 포트 와인 중 최고급은 빈티지 포트인데, 20년 된 빈티지 포트의 경우 40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와인이기도 하다. 그런 와인을 키 크고 호리호리한 공주 같은 외모의 윤이 좋아한다니 의외다. 하지만 뚝심 있고, 인내심이 강하며, 진중한 윤과도 닮은 와인인 듯하다.
내 친구 윤은 야근이라면 죽도록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자신이 맡은 일에 온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마무리하고 마는 독한 성격의 소유자다. 윤의 아버지는 부잣집에서 곱게 큰 그녀가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갈까 두려워 대학학비를 직접 조달하게 했다 한다. 미국 대학에서 최우등졸업 (Somma com Laude)을 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해 장학금으로 학비를 해결하고, 용돈 벌이는 학교 식당에서 햄버거를 구워 조달했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며 햄버거 패티 뒤집는 시늉을 할 때의 윤의 우스운 표정과 행동이 지금도 선하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당시의 힘들었던 경험이 너무 표정에 잘 녹아 있어서 그렇다.
이쁜 데다 공부도 잘하고, 일까지 잘하니 질투하지 않을 재간이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윤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품는 애정이 부러운 마음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빈티지 포트는 백 년 이상을 견디면서 그 풍미가 놀랍게 진화하는 와인이다. 파워풀한 탄닌은 점차 부드럽게 발전하고, 말린 자두, 건포도 풍미를 드러낸다. 나와 윤의 인연이 그와 같기를 바란다. 내 와인 선반에는 한두 잔 마시고 남겨둔 1996년 산 포트 와인이 있다. 윤이 마음과 육신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온전히 나오는 날에는 이 와인을 같이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