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사귄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찬 (본명이다. 중국인 아니다!)을 처음 만난 것은 인천공항이었다. 회사 업무로 귀빈영접을 나간 곳에 그도 무리와 함께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어떤 눈이 나를 계속 쫒고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나를 쫓던 그 눈은 한 달 내내 있었던 연수 프로그램 진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강의실에서, 만찬장에서, 경주 필드 트립에서도, 기관 방문에서도. 제주에서 1박 2일을 머무는 동안에는 더욱 집요하고 끈질기게 이동하는 장소마다 쫓아왔다. 나를 쫓던 그 눈이 바로 찬이 었다.
그즈음쯤 나는 이 시선의 주인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여러 계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고백을 할 듯할 듯 미적거리는 통에 속이 터지다 못한 내가 먼저 낚시를 던졌다. 뒷통수건 앞통수건 가리지 않고 나의 모든 동선을 째려보던 탓에 속이 터진 나는 필드 트립을 다녀오던 날 밤에, 찬에게 들으라는 듯 나는 시간이 많으니 놀고 싶은 사람은 연락하라 했다. 답답해 고구마 3천 개 먹은 듯한 행실의 찬은 그 사인은 알아들었는지 같이 술 한잔 하자고 했다.
광화문의 핫한 바에서 뭘 마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와인은 아니었던 것 같고 칵테일이었던가? 여하튼 그날 이후로 더 가까워진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의 고구마 행실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시간은 또 금세 흘러 이제 연수 마지막 날이 되어 내일이면 찬은 출국이다. 오늘 밤이 가기 전에는 고백을 하겠지 기다리던 나는 저녁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작년에 먹은 삼겹살이 올라오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포기하고 잠을 청하려던 찰나 연수기간 중 같이 머물고 있던 호텔룸의 전화가 울렸다. 찬이 었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뜸을 들이더니 급기야는 고백을 하더라. 기쁘기도 했지만, 부아가 났다.
다음 날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진 우리는 메신저가 불탈 만큼 뜨거운 연애를 했다. 매일 몇 시간씩 채팅을 하고 저녁에는 통화를 하고. 그러다 내가 먼저 찬의 나라로 찬을 보러 갔다. 공항에서 나를 마중 온 찬과 반가운 재회를 하고 찬이 예약해 둔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로 나를 데리러 온 찬은 수줍게 꽃을 건넨다. 자기는 이런 거 처음 해 본다며 조금 얼굴을 붉혔다. 찬의 차를 타고 찬의 나라의 유명한 여행지로 향한다. 현지인 가이드 역할을 자초한 찬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척하며 -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나는 원래 역사나 유물에 관심이 없다 -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유적지에서 해안도시로, 다시 수도까지 여행을 계속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5박 6일의 일정을 마치고 공항에서 헤어지던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아쉬웠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그 녀석을 보며 아쉬운 마음에 꽤 울었다. 그러고도 우리는 한참을 장거리 연애를 계속했다. 여전히 달달했고 뜨거웠다.
한참 커리어를 쌓느라 바빴던 찬은 한 번도 나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오지 못했다. 바쁜 찬을 배려해 나는 크리스마스에 프랑스에 가기로 했다. 찬이 유럽연합에 파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리 드골 공항에 마중 온 찬과 기차를 타고 바로 스트라스부르로 이동을 했다. 아직도 아름다운 스트라스부르의 성당과 리틀 베니스, 콜마의 시리던 겨울 풍광을 잊지 못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먹던 뱅쇼의 맛은 잊었지만, 쨍한 추위 속의 달콤한 시간만은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본 찬은 어딘가 좀 달랐다. 업무 스트레스 때문인지 원래의 본색을 드러내는지, 나를 대하는 태도도 고압적이고, 자꾸 강요하는 태도를 보였다.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하려는 태도도 못 마땅했다. 무엇이 다툼의 발단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의 말다툼을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너가 좋았던 그 녀석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내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로 한동안 연락은 계속됐지만 점점 뜸해지는 연락과 성의 없는 태도에 나는 화가 났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남자는 일을 자기 여자보다 더 중요시하는 인간 유형이었다. 외국인과의 미래도 가뜩이나 불투명한 마당에 나를 온전히 인정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이별을 결심하고 이메일로 결별을 통보했다. 찬은 처음에는 덤덤하게 이별에 동의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그 녀석이 다시 한번만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절절한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마도 술을 마시고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보낸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그리워해 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똑같은 인연은 다시 만나도 똑같은 이유로 헤어진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찬을 다시 받아주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찬과 친구로 지낸다. 찬은 몇 년 후 일본인과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우며 잘 지낸다. 한국에 나올 때면 연락해 한 두 번 만난 적도 있다. 지금도 가끔 메신저로 일상을 전하기도 한다. 여전히 바쁜 그 녀석은 직급이 높아졌고 머리도 빠지고 노숙한 중년 아재가 되었다.
찬은 프랑스에서 유학한 적이 있어 나보다도 먼저 와인을 좋아했다. Connoisseur라는 단어도 찬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찬과 마셨던 Alsace 와인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맛이 없었다. 그때는 와인을 잘 모르던 때라 슈퍼마켓에서 골라 든 와인이 제대로 된 것이었을 리 없었고, 그 당시의 나는 산도가 높은 화이트 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찬을 만나러 스트라스부르에 갔던 그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것 같다. 목까지 올라오는 터틀넥 스웨터를 껴 입고, 그 해 신상품인 두꺼운 패딩으로 꽁꽁 싸매고 다녔음에도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은 찬의 냉랭한 태도 때문에 나를 더욱 추위에 떨게 했다.
와인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잰시스 로빈은 리즐링을 가장 저평가된 품종이라 칭했다.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리며, 특히 고급스럽고 복합적인 향과 풍미, 높은 산도 덕분에 노블 (고급) 품종으로 분류된다. 드라이, 스위트 와인 모두 생산 가능한 재주 많은 품종이다. 특히 다른 품종과 구별되는 가솔린, 페트롤 (Petrol) 향은 리즐링만의 기분 좋은 시그니쳐이다.
다시 찬이 한국에 온다면 겨울처럼 쨍한 Alsace 드라이 리즐링을 함께 마셔 봐야겠다. 남자 친구로서는 별로지만 남사친으로는 여전히 든든하고 재미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