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중년이 되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오래 알고 지냈던 상담사 선배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나에게 그림이란 늘 버킷리스트에는 머물러 있던, 너무 어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분야였기에 그 놀라움과 부러움이 더욱 컸다.
선배의 핸드폰 갤러리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은 마치 유명한 화가의 작품집처럼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
억지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선과 담담히 칠해진 수채화 특유의 색감들이 보는 사람에게 아련한 향수와 따뜻함을 전해주어 마치 물안개가 내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선배가 <윤코랑 하루 한 장>이라는 유튜브를 통해서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배우고, 전시회까지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불과 일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말이다. 그래서 더욱 선배에게 직접 축하의 말을 전하고, 그들의 그림을 보고 싶어 전시회를 찾았다.
예문갤러리 전시회 걸린 작품들이 삼천점이 넘는다고 한다. 넓지 않은 전시관 공간의 사면 벽에는 액자라는 틀이 없이 작가들의 스케치 종이에 그려진 그림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날것 그대로의 그림들이 고급 액자에 갇힌 그림들보다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사람들을 옥죄던 구속의 틀과 규칙으로부터 벗어난 듯해 보는 내내 내 가슴 속에 시원한 바람을 채워주었다.
벽면 가득 채워진 그림들이 작가들의 자유로움과 "난 이래도 괜찮아!"라는 자신감으로 다가왔다.어반스케치는 같은 사진을 미션으로 받아, 커뮤니티에 소속된 회원들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리고, 그 그림들을 공유하며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듯했다. 선배의 소개로 참여하게 된 <윤코랑 하루한장> 이라는 오픈 채팅방에서는 80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이 각자의 그림을 올리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있었다. 분명히 같은 원본 사진을 바탕으로 그렸지만, 그리는 이에 따라 구도, 색감, 크기,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어서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지문처럼 그림도 작가마다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전시회 이후 바쁜 일정 탓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선배와 그림을 둘러보고, 선배가 그림을 시작해서 전시회에 참여하기까지의 여정을 들으며 무언가 내 안에서도 통통하고 새로운 열정이 움트는 것을 느꼈다.
선배 또한,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입장에서 처음에는 망설임도 컸고 서툴렀다고 한다. 전시 공간이 부족해서 엽서 크기의 사진첩에 수록된 '100인의 인물그리기' 그림들을 보여며, 처음에는 구도를 맞추지 못해 인물 비율이 5등신처럼 엉망이었다고 민망해했다. 밑선을 만년필로 그려 지울 수도 없어 화이트로 덧칠했던 흔적을 보여주며 웃고 있는 선배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행복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딸의 전시회 마지막날이라도 직접 오셔서 보고 싶다며 택시를 타고 달려오신 선배의 어머니의 표정에서도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전시회 곳곳에도 비슷한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형제자매들이, 손자손녀들이, 지인들이 자신과 함께 살아온 평범한 줄 알았던 이가 그림을 그리고, 작가로서 전시회까지 참여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마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년이 달라지고 있다. 나는 그동안 <쉘위셔플> 커뮤니티에서 춤을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났을 때는 참으로 특별한 사람들과 세상이 있다고 느꼈다. 아마도 이처럼 중년부터 노년까지의 사람들이 셔플댄스라는 생소한 춤을 통해 흥겨움과 생동감을 느끼는 커뮤니티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또 하나의 대규모의 커뮤니티를 직접 체험하면서 어쩌면 이런 변화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빈둥지증후군'이라 불리던 중년의 삶이 이제는 마치 빈둥지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자기 삶을 찾기 위한 도전의 출발점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제 중년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자신이 원하던 것을 시작하는 때가 되고 있다. 그동안의 삶에서의 책임과 부담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된 중년들은 열정과 배움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커뮤니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중년을 넘어 노년까지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펼치지 못했던 자신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내년에는 나도 <윤코랑 하루한장> 전시회에 작가로 참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