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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패왕 Nov 27. 2022

별들의 고향-  여자가 죽었습니다

<별들의 고향 여자가 죽었습니다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1974년  이장호 감독작품이다

눈보라 휘날리는 한강떠도는 나룻배 한 척

유골함을 껴안은 남자가 하얀 보자기를 풀제에 뱃사공이 묻는다

-누가 죽었습니까?-

-여자가 죽었습니다.-          


1.이 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국 여자의 죽음을 선언한 이 영화는 사랑의 측면사람의 측면주체와 사회의 관계측면중 어떤 요소를 중점적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감상의 포인트가 달라질 수 있다.     

 1) 사랑 중심의 감상

 경아(안인숙)는 남자와 만나 사랑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이 영화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4가지의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경아는 네 남자의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면서 병들고 쇠약해져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사랑을 하면 할수록 불행해 지는 경아이 영화는 사랑의 부정적인 효과를 영상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람 중심의 감상

 남성들에 중점에 두면한 여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한국 남자들의 추악한 4가지 모습을 그린 영화로즉 이기적 욕망에 취한 영석(하용수), 동굴에 빠져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만준성(윤일봉), 사디즘에 빠진 동혁(백일섭), 포스트모던에 취한 문호(신성일)등 네가지 사랑의  민낯을 보여주는 영화로 볼 수 있다. 경아를 중심으로 보면남성들의 이기적 행태에 시달리다 쓰러져 간 경아를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주체와 사회의 관계 중심의 감상

당시 한국사회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였고경아는 남자들에 무척 의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경아의 불행은 이러한 경아의 성격과 사회구조와 맞물려 있다

여기서 주체의 측면을 강조는 실존주의 입장에서 보면홀로서기를 하지 못한 여성의 최후를 보여주는 작품여성적 본질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남성의존적인 본질을 추구한 한 여인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주는 영화로 읽을 것이다반면 사회와 관계의 측면을 강조하는 구조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면자본주의남성중심주의 사회구조에 갇혀 방황하는 한 여인을 그린 영화,  구조속에 갇힌 수인(=죄수), 여성 주체의 사망을 그린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경아와 영석(하용수)

 

(1) 섹스와 결혼의 관계

주산으로 계산에 열중하던 경아는 볼펜을 떨어뜨린다바닥을 뒤져 볼펜을 주우려던 찰나 같은 회사 동료 영석이 먼저 집어 들고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어버린다연인이 된 둘은 게임장에서 빠찡고 데이트를 한다경아는 수박 3개를 기대하며 한 기계에 만 집중하는데영석은 동시에 5기계에 돈을 넣고 잡아당긴다

웬수 같은 기계 너한테 바친 돈 집한 채도 샀겠다

그럼에도 영석은 모두 꽝이나 경아의 기계에서 돈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물론 그 돈을 챙긴 자는 영석이다. 5개의 도박 기계를 동시에 탐하는 영석은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볼펜 같은 존재인 경아를 호주머니에 볼펜 챙겨 넣듯 순식간에 애인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영석은 경아를 여관으로 유인하며 툴툴댄다.

우리 밤새 이야기 하자매일 같은 커피영화같은 말 같은 출근 퇴근 이제 지쳤어.”

거부하는 경아에게 경고 협박 메시지를 던진다.

도대체 뭐가 무서운거야내가 잡아먹냐날 못믿는 군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야저게 마지막 집(여관)이야 들어오던 말던 알아서 해난 경아 아니더래도 돈을 주고 얼마든지 여자를 살 수있어.”

우리 참아요제발 결혼할 때 까지 참아요영석씨는 여자 아니니 제 맘 잘 모를거예요.”

밀당 끝에 경아는 굴복하고 여관에 들어간다화장실에서 그녀는 기도한다.

절 행복하게 해주소서그이가 절 버리지 않고 영원히 사랑하게 해 주소서

 번뇌와 숙고 끝에 놈에게 몸을 허락했지만 놈은 경아를 임신 시키고,  중절 수술도 시키고그리고 경아를 버리고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린다     


(2)두 사람의 사랑관

이처럼 영석은 시종일관 경아의 몸만을 탐하다 싫증이 나니 그녀를 팽개치고 버리고 만다이에 비추어 보면 그에게 사랑이란 섹스 충동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사랑관에 부합하는 인물이다이에 반해 경아는 안전과 소속의 욕구라는 매슬로우,, 불안의 해소를 위해서라는 에릭프롬의 사랑관이 타당한 듯하다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A. 사랑의 본질

 우리는 왜 사랑하려고 하는가도대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사랑은 의무보다는 욕망쪽에 가깝다그럼에도 사랑을 이성편에 포섭하려는 견해(플라톤헤겔)과 욕망충동쪽에 위치시키려는 견해(프로이트)가 있다     

1).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사랑을 승화된 성욕으로 본다성관계는 사회적인 관습에 의해 규제를 받기 때문에 성적충동을 함부로 발산하다가는 낭패를 보기십상이다인간이 문화를 건설한 이후 동물처럼 아무와 섹스를 할 수는 없다무분별한 섹스는 사회적 비난과 법의 구속을 받는다즉 이러한 사회적 비난을 잠재우고 합법의 목도리를 두르기 위해 우리는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이다한마디로 섹스 충동을 합법화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2) 매슬로우와 에릭프롬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 1954)는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 안전의 욕구와 소속의 욕구를 실현한다는 것이다사랑은 인간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이며  운에 따라 우연히 경험하는 황홀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성장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모든 행동양식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에릭프롬은 우리가 사랑하는 근본 목적은 태아에서 엄마로부터 분리된 데 따른 불안 때문에 보상이라고 주장한다즉 사랑의 배우자와 함께 함으로써 실존의 불안을 떨구어 내고 안전감과 소속감을 보상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3) 평가

영석은 경아를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한다자신의 이기적 성적 욕망 충족수단일 뿐이다그에게서 사랑섹스결혼은 분리된다사랑에 보호존중의무책임 같은 것은 없다오로지 자신의 성적 충동과 이익실현 수단인 셈이다영석은 프로이트 사랑관에 아주 충실한 인물로 보인다.  설마 한국 남성 전부가 영석 같지는 않을 것이다이에 반해 남자에 대한 순종혼전순결을 중시하는 경아는 사랑과 섹스 결혼은 혼연일체라는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이는 봉건적 가부장사회의 피할 수 없는 결론이기도 하다그녀는 안전욕구와 소속감불안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을 영화 곳곳에서 드러낸다     



3. 경아와 만준(윤일봉)  

(1)진짜와 가짜

경아는 휘파람을 불지 못하는 만준을 만나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쳐 주다가 연분이 나서 그와 결혼한다회사를 경영하는 등 상류층인 만준은 상처를 하고 딸을 키우는 홀아비였다후처로 들어온 경아는 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성실하게 사는데  가정부(전원주)와 딸 명희의 외삼촌으로부터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된다

만준이 경아와 결혼 한 것은 전처와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다락방에 전처의 유물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는 것가끔씩 그 방에 가서 전처의 영혼과 교감 오고 온다는 것딸에게 검은 옷만 입히고 방에 가두어 둔다는 것이 모든 것이 만준은 의처증 때문이란 것그리하여 생전에 전처를 몹시 의심하여 이에 못견딘 전처가 자살하였으며명희도 자기 딸이 아니라고 생각해 검은 옷에 외출금지 시키는등 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심하던 경아는 결단을 내리고 전처의 유물을 모두 처분해 버린다이에 남편이 격노한다.

언제 치웠소누구 허락으로.. 멋대로 엉망진창이군날 무시하고 있어경아에게 아무 일 아니지만 내겐 소중한 기억이오.”   

이 집엔 죽은 것 뿐이에요난 말도 할수 있고 춤도 출수 있어요견딜수 없어요 숨이 막혀요전화를 걸겠어요아무한테나..” 

경아는 임신했다고 소동을 벌이지만 상상임신으로 판명났다그 와중에 의사에 의해서 임신중절 수술 전력이 남편에게로 알려진다

제가 속였다면 선생님도 속였잖아요전부인이 자살을 했잖아요

그까짓 경아의 과거쯤은 용서할 수 있어하지만 이제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경아는 집을 나온다     


(2) 만준의 행위의 의미

만준에 의하면 저세상에 있는 전처는 원본이자 진짜이며 현실의 경아는 사본이자 가짜이다.  이는 이데아는 진짜현실은 가짜라는 플라톤의 이원론과 참세상을 보지 못하는 동굴의 비유를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하여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동굴의 비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1) 플라톤의 이데아론

플라톤은 완벽하고 영원불변한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함을 역설하고 수학으로 이를 증명하고자 하였다그에 의하면 현상계에 존재하는 삼각형은 어딘지 모르게 불완전하다모든 사물이 그렇다완벽하게 아름다운 꽃이나 여인은 없다이처럼 현상게의 모든 것은 불완전한 사본일 뿐이다그런데 원본 없는 사본은 있을 수 없다완벽하고 영원한 삼각형이 어딘가에 있기에완전한 꽃이 있기에 흠 잡을 수 없이 아름다운 여인이 있기에현실의 불완전한 삼각형여인이 존재하는 것이다그럼 완벽하고 영원한 원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완벽하고 영원한 존재를 이데아라고 한다완전한 삼각형은 수학자의 머릿속즉 이념에 존재한다꽃의 이데아여인의 이데아아름다움의 이데아모두 현실의 사물 밖현실의 사물을 초월하여이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이것은 감각경험으로 파악할 수 없고오로지 이성의 사유로서만 파악할 수 있다

 이로써 이데아의 세계는 진짜이자 원본이고현상계의 존재들은 모두 가짜 사본인 셈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데아)가 사물내에즉 현실의 삼각형현실의 꽃현실의 여인 안에 존재한다고 하여 현실의 존재를 가짜로부터 구출한다그럼에도 다소 변화는 있었지만 이러한 이원론은 서양철학의 주류로 19세기 까지 이어져 왔으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에 의해 신은 죽었다-는 파산선고를 받게 된다     


2) 동굴의 비유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국가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간은 동굴에 갇혀있는 죄수와 같다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쇠사슬로 묶여 있어서뒤를 돌아 볼 수도 없고항상 동굴의 벽만을 보고 산다그들의 뒤로는 횃불이 타고 있으며그들은 이 횃불에 비춰지는 그림자만을 보고 살기 때문에 이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한다." 

동굴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우리는 동굴에 갇힌 죄수인데도그러한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즉 우리는 사물의 실재 모습이 아닌 그림자를 실재로 믿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동굴의 세계즉 감각으로 경험하는 현실세계는 거짓과 변화하는 세계로 존재하는 것이고동굴 바깥의 세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데아(이성)의 세계이기 때문에 완전한 지식은 감각을 초월하여 있는 이성을 통해서만 찾아 질수 있다고 말한다.     


3) 진짜는 가짜고 가짜가 진짜다니체

 현대철학의 사도이자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에 의해 플라톤의 진짜와 가짜는 전복된다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전통철학의 이원론과 기독교적 이원론을 부정한다존재하는 것은 오직 변화 생성의 현상계일 뿐저세상 넘어 이데아나 신의 존재는 없다고 단언한다이데아나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과 이데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신이나 이데아계는 가짜이고 현실이 진짜다     

죽은 것을 신성시 하는 민준은 이원론적인 이데아론의 신봉자이고 살아있는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아는 니체적 일원론자인 셈이다     



(3) 만준과 경아두 사람의 사랑관 

남편은 전처와 닮은 경아를 아내로 맞음으로써 전처를 인식하고 느끼려한다그에게 전처는 원본이고 경아는 사본인 셈이다이는 원본에 대한 열망이라는 플라톤의 사랑관에 부합한다고 평가 할수 있다이에 반해 경아는 안전 욕구와 불안해소라는 목적외에 이전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위해 남편에게 인정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헤겔은 사랑도 인정투쟁의 일종이라 간파했다     


1) 플라톤의 사랑관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향연>에서 에로스의 의미를 소개한다태초에 안드로기노우스라는 괴물이 있었는데이 괴물은 얼굴이 둘손이 넷다리가 넷이나 달려 있었다이 괴물이 자신의 초능력을 믿고 나쁜 일만 일삼자어느 날 화가 난 신이 이 괴물의 몸을 두 동강 내 버렸다그리하여 얼굴이 하나손발이 들인 사람 두 명이 탄생했다.

이 두 사람은 처음의 한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서로가 서로를 찾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하는 남녀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즉 불완전한 두 사람이 하나 되기 위해 사랑 (애로스)하는 것이다이 행위의 본질은 완전함(이데아)에 대한 열망이다사랑의 목적은 영혼의 성장과 고양인데우리는 탁월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서 진리의 세계로 인도된다고 한다이상향을 추구한다는 것은 부족한 부분을 메워 충만함을 얻으려는 활동을 의미한다플라톤은 같은 맥락에서 사랑을 포착한 것이다이는 플라톤이 결핍으로서의 욕망을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아리스토파네스 역시 사랑의 목적은 완전성의 열망잃어버린 반쪽의 열망이라고 한다즉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사람 찾는 것이라 한다     


2). 헤겔의 사랑관

 헤겔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타인의 사랑을 받음(인정을 받음)으로써 진정한 나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라고 답한다그는 사랑을 성적 쾌락(프로이트)이나 정신의 성숙(플라톤)이 아니라 인식의 문제로 보고 있다.  타자(타인)는 나를 인식하는 거울과 같다인간은 타인과 관계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한다타인의 사랑을 받음(인정을 받음)으로써 진정한 나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4) 평가

영화는 만준과 경아의 결혼생활을 통해 세가지 측면의 이항적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사상적인 면에서 현실을 가볍게 여기는 이원론(플라톤)과 현실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일원론(니체), 사랑의 측면에서는 플라톤의 사랑관과 헤겔의 인정투쟁론의 대립을시간의 측면에서는 과거를 중시하는 만준과 현재를 중시하는 경아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와 감독은 중립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만준을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만준이 플라톤적 사랑관을 완전히 실천한 것은 물론 아니다그는 경아를 통해 전처를 느끼고자 하는 열망만을 가졌을 뿐자신의 영혼의 성장과 고양이라든지 탁원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면을 찾아 볼 없기 때문이다만준 역시 플라톤적 사랑관을 실천했다기 보다는 그저 흉내를 냈을 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영화 역시 의처증 환자라 표현함으로써 플라톤의 유산을 배격하고 경아를 옹호한다동굴에 빠져 참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경아가 아니라 만준이라는 것이다영화는 이러한 동굴에 빠져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는 남성들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4. 동혁(백일섭)과의 사랑사디즘 대 마조히즘

(1) 가학과 피학

동혁은 경아를 물건 취급을 한다경아를 때리고 얼굴은 찍지 않는 조건으로 도색잡지의 누드모델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호스테스짓 까지 시키며 그녀의 몸과 재산을 착취한다경아는 그로부터 도망치지만 불안에 떤다현대인들의 불안감의 영화적 표현이다끈질기게 추적하던 동혁은 문호를 찾아와 요구한다

경아를 만나게 해주소난 경아의 전 소유자요지금이야 노형 곁에 있지만 ...경아는 내가 길들여온 여자요아마 지금쯤 경아도 날 원하고 있을 거요.”

마침내 경아를 보고 소리친다.

난 너를 구해 주러 왔어어서 칫솔 가지고 와다음에 올때는 반드시 널 데려 갈거야

동혁을 피한 경아가 울부짖으며 문호에게 고백한다

몇번이나 도망쳤는지 몰라요나 아저씨를 이용했어요저도 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좋은 남자 만났더라면 지금쯤 예쁜아이 낳아 우유나 먹이고 행복하게 살았을 거에요.” 

 문호에게도 버림 받은 경아는 갈 곳이 없어 다시 동혁에게로 간다동혁과 남자들의 가학증에 자신도 모르게 경아는 마조히즘에 취한 듯 동혁에게 돌아온 것이다.

동혁은 자신에게 스스로 돌아온 경아에게 문신을 파면서 

”“이렇게 표시를 하는 것은 다시는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야

경아를 실컷 부려먹고 경아가 알콜중독에 시달리자 동혁은 다시 문호를 찾아온다

경아를 돌려주고 싶어서요몸이 좀 약해지기는 했지만 경아를 다시 데리고 사는 것이 어떻소그동안 술버를 고치기 위해 때리기도 했지만 난 지쳤소수용소에도 한 두 번 보냈지만...나 같이 무식한 놈보다 똑똑한 당신이 맡아주시오난 배를 타고 멀리 떠나겠소

경아의 동혁과의 질긴 인연은 여기서 멈춘다     


(2) 새디스트메조키스트나무위키 참조

1) 사디즘즉 가학성애(Sadism, )는 성적 대상에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쾌락을 얻는 것을 뜻한다프랑스의 작가 마르키 드 사드(1740~1814)는 사디즘의 원조다사드는 성행위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의 끝을 보여준 소돔 120이라는 작품으로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다그는 실제 성 학대죄로 감옥에 다녀온 일도 있다. 30대의 한 미망인을 가정부로 고용한 그는 자신의 알카이유 저택에 그녀를 감금한 뒤 발가벗겨 피가 흐를 때까지 채찍질을 하는 등 심한 성 학대를 일삼았다견디다 못한 이 미망인이 사드의 눈을 피해 침대 시트로 엮은 밧줄을 타고 탈출함으로써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물론 사드는 이 때문에 철창 신세를 져야 했다.     


2) 마조히즘의 본래 제대로 된 정확한 뜻은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함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마조히즘의 원조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레어폴트 폰 자허 마조흐(1881~85)라는 소설가피학증을 다룬 그의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단순한 허구성 소설이 아니었다이 소설은 마조흐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쓰였다그는 자신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결혼 직후 자신을 나무에 묶어놓고 아내 오로라와 하녀 마리에게 자신을 매질해 달라고 간청했던 인물그뿐만이 아니었다임신중인 아내에게 신문 광고에 당신과 성교할 힘센 남자를 구해보자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3) 과거에는 정신병리학적 시각에서 이러한 사디즘을 보았으며 사디즘이 정신 병명으로도 사용되었으나(EX : 가학성애자현재는 '인간의 내면에는 파괴성이 존재하며 그 파괴성을 어떻게 표출하고 해소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어 정신병으로는 구분하고 있지 않다재미있게도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다 사디즘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마조히즘은 자기 자신을 향한 사디즘이라고 한다변을 싸는 것공부하는 것아이를 낳는 것 모두 마조히즘적인 행위라고 한다     


4) 긍정론마광수 연대교수

남자와 여자의 성적결합을 음()과 양()의 결합이라고 볼 때가장 이상적인 결합의 상태를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결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생태계가 유지되려면 약육강식은 필연적인 법칙이고내가 남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사디스트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그렇게 보면 인간은 동물들 가운데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이다우리는 모든 동식물을 마음껏 잡아먹으며 식욕을 충족시키고 있고다른 동물은 하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는 버릇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은 절대로 변태성욕이 아니다누구를 죽인다거나 하는 사디즘은 물론 변태이다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사디즘은 인간의 모든 성취욕이나 진취적 기상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욕구인 것이다또한 마조히즘 역시 모든 종교적 신앙들이 복종의 쾌감에 기초하는 마조히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심리이다교회 신도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성은 역시 마조히스트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마광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3) 감상

이 영화가 사디즘과 매조키즘을 인간 본성의 발로라며 옹호했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남성들의 가학적인 폭력을 고발하고 이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만 하는 처지의 여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분명하리라동혁은 경아를 괴롭히고 착취함으로써 성적쾌락을 얻는 사디스트가 분명하지만 경아가 과연 마조히스트인가는 불분명하다그러나 삶에 지친 그녀는 점차 자신을 학대함으로서 위안을 찾는 듯 하다물론 갈 곳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폭력적이고 잔인한 동혁에게 스스로 찾아가는 것은 자기 파괴적 행위임에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5. 경아와 문호(신성일) -포스트모던식 사랑

(1)사랑의 해체 시대

대학 미술강사인 문호는 방탕한 생활을 이어간다노상방뇨하고 288번 버스에서 내리다가 넘어지고 성병에 걸려 10일간 고생하더니 스탠드빠에 들른다역시 거기서 홀로 홀짝이던 경아에게 그녀의 스케치 초상화를 선물하면서 인연을 맺는다둘은 종업원과 손님으로 술집에서 조우하고 다시 만난다그녀는 얼음 장난을 친다문호의 등에 얼음덩어리를 넣어버리자 화들짝 놀란 문호는 그 얼음 덩어리를 꺼내 입안에 넣었다가 이내 뱉어버린다결국 둘은 문호의 아파트에서 서로의 정확한 이름도 모른체 관계를 맺는다다음날 헤어지면서야 경아는 그의 이름을 묻지만 곧 잊어 버린다경아는 밥 빨래 해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문호의 집에서 동거를 한다그야말로 쉬운 만남조건 없는 만남이다이모든 것은 쉬운 이별을 위한 것이다문호에게 경아는 뜨거운 얼음덩어리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잠시 놀라운 경이를 안겨 주지만 곧 녹아 없어져도 당연한 전혀 아쉬울 것 없는 존재이다이제 사내에 닳고 달아버린 경아도 만남과 동거에 결혼이라든가사랑이라든가그 어떠한 거창한 목적은 없다

전통적인 남녀의 사랑관은 사랑결혼책임의무의 연쇄고리를 준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문호와 경아는 전통적인 사랑과는 전혀 무관한 만남을 계속한다오로지 불안과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섹스와 시시콜콜한 유희에만 집착한다

 동거의 시간이 길어지자 문호는 버거움과 지겨움싫증을 느낀다둘은 취해서 섹스를 하다가 그림과 캔버스를 넘어뜨리고 석고조각상을 깨뜨리며 문호의 화실을 난장판으로 만든다섹스를 중단한 문호가 수돗물을 잠구어 달라깨진 석고조각을 치워달라하자 경아가 울먹인다.

무서워요또 버림 받을까봐모른척 하고 있었지만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군요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다 그렇고 그런가 봐요

얼마후 문호는 본심을 드러낸다

난 서울을 떠나겠어서울이 싫어그림도 안되고지쳤어난 늘 초조하고 불안해경아를 만난 기쁨외에는 건진게 없어

결국 경아는 동혁에게로 돌아가고 문호는 이를 방치한다그녀가 폭력과 착취당할 것도 알면서도...책임지기가 결혼만큼 싫은 도시 먹물들의 모던식 사랑법이다

동혁이 다시 문호를 찾아와 경아를 책임져줄 것을 요구하지만 문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대신 그녀의 술집에 찾아가고 그녀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그 유명한 대사오랜만에 누워 보는군참 오랜만이예요-

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처럼 둘은 전통적인 사랑관의 해체단지 즐기고 외로움을 달래면 그뿐이른바 포스트 모던식 사랑의 진수를 보여준다.  문호는 미술강사이다예술가는 포스트모던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다그가 포스트모던을 부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2)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프랑스 68혁명과 베트남 반전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성중심주의서구백인중심주의등 각종 절대주의 중심을 해체하고 탈 권력,  탈 전통,  경계의 해체,  혼종등을 옹호하는 문화적 흐름을 말한다차이를 존중하고 독식과 독점에 대해 강력히 저항한다차이를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체의 공존을 강조한다획일성통일성 거부하고 다양성 다원성을 존중하며 위계질서 부인한다그 성격의 특성상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것도 확정되어 말할 수 없고 정의 내리기도 어려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다

가벼움 언어의 유희를 조장하고 전통과 기득권에 대한 반항하며  급문화와 하위문화의 해체한다모든 장르와 매체 사이를 오가며 경계를 무너뜨리고 혼종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한계도 뚜렷하다

 이슬람과 유럽의 충돌로 과연 서구는 어느 정도까지 이슬람을 포용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유럽각지에 이슬람 좌파들의 테러행위가 계속되기 때문이다화 상대주의가 어디까지 허용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문제는 단지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자유의 적에게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또한 상대주의적 윤리관의 득세로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기준이 무너져 사회적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극단적인 상대주의에 의하면 모두가 옳기도 하고 모두가 악이기도 하다궤변이 판치는 소피스트 세상이 도래한 듯하다또한 각종 경계와 영역이 무너짐으로 불안감이 확대된다동성애에 대한 갈등으로 기독교도들의 불만과 불안이 그 좋은 예이다

해체는 좋으나 대안 없는 해체에 불만들이 쌓이고 있다대안도 없고 방법도 없다는 것이 비판론의 핵심이다     


(3) 감상

사랑이 해체되어버린 둘의 만남에 보호와 책임은 없다그저 불안과 외로움의 해소를 위한 섹스만 있다경아에게 싫증을 느끼고는 미술가 였던 문호는 자신의 그림이 진척이 없다는 이유로 경아가 떠나는 것을 방관한다갈 곳 없는 그녀가 동혁에게 돌아가 모진 학대를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녀를 내보낸다이처럼 포스트모던이 휩쓸고 간 그 자리중심이 해체되고 공동체도 해체되고가족도 해체되고지독한 개인주의가혹한 자유만 남았다다시 동혁에게서 경아를 양도 받은 후에도 그의 미지근한 태도는 계속된다알콜 중독증에 창녀 생활을 이어가는 그녀에 대한 보호를 거부하고 마지막 밤을 보내고 돈 몇푼 던져주고 새벽에 그녀 곁을 떠난다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보호책은 마련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겉은 부드럽고 온화하나 이전의 세 남자 보다도 더욱 비정하고 야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하여튼 문호는 떠나고 경아는 한겨울 길바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6. 경아의 홀로서기는 가능했는가?

(1) 경아의 남성 의존성

점쟁이가 경아에게 점괘를 고지한다.

팔자 사납군사면초가야 부모덕도 없고 젊은 나이에 이남자 저남자 여럿 갈아 치웠겠군 내말 맞지앞길도 순탄지 않아 미국가서 살아결혼 생전 못할 팔자야

경아는 착한 품성에 나름 성실하고 남자에게는 매사에 순종적이다

첫남자인 영석과 관계를 맺기전 기도한다.

절 행복하게 해주소서 그이가 절 버리지 않고 영원히 사랑하게 해주소서

만준(윤일봉)에게도 어떻하던지 살아보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집엔 죽은 것 뿐이예요난 사람이예요견딜수 없어요숨이 막혀요전화를 걸겠어요아무에게나.”

헤어지자는 만준을 향해

제발 용서하며 살아요. .....그럼 제가 나가겠어요이럴땐 여자가 나가는 법이예요선생님이 안계시면 무서워요. ”

문호에게 동혁의 존재를 들키자 경아가 변명겸 항변을 한다.

난 정말 이상한 여자예요난 남자가 없으면 잠시도 살수가 없어요난 그래요난 그런 여자예요..... 저도 전에는 이렇지 않았어요좋은 남자 만났더라면 지금쯤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지금은 늦었어요늦었어.  한때 나에게서 잠시 위안을 받아요하나둘 내곁을 떠나지요결국엔 우리가 혼자 뿐이라는 것...”

문호와 마지막 밤을 보내며

여자란 참 이상해요남자에 의해서 잘잘못이 가려져요나도 한때 행복하다 믿었던 적이 있어요아름다운 꿈이예요내몸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이 차라리 사랑스러워요. ....내일 모례쯤 엄마를 찾으러 갈거예요엄마가 보고 싶어요

문호와 헤어진 경아는 알콜중독증에 시달리며 남자들과의 하루살이 사랑을 이어간다

결국 눈발 날리는 벌판에서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다          


(2) 과연 경아의 홀로서기는 가능했는가?

경아는 시종일관 남성의존적이고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현실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일정정도 그 속에 안주하고 자포자기하고 만다과연 그녀의 홀로서기는 불가능했던 것일까?

여기서 홀로서기가 가능했다는 실존주의와 불가능하다는 전기구조주의의 입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A.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1) 의식내 존재

사르트르는 모든 의식은 존재에 대한 의식(의식의 지향성)이라며 현상학적 방법을 계승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세계내 존재를 의식내 존재로 바꾼 것이다이 경우 의식은 존재와는 다른 것즉 비존재이어야 한다그것은 본래 존재의 부정이나 무화(無化)를 통해 생겨나야 한다.

존재는 즉자(卽者)와 대자(對者)로 구별된다즉자 존재는 자연사물즉 대상으로서의 존재를 말하고 A=A라는 절대적 동일성 원리에 기반한다즉자는 아무 근거 없이 그냥 우연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에 반해 대자(()=의식)는 자기의 상태에 대해 그것을 항상 문제로 삼아 다시 파악하려고 하는 존재즉 인간의식을 말한다인간은 육체(즉자)를 가지고 있기에 즉자 대자 두 원리가 서로 얽힌 구조로 존재한다대자는 A=A가 아니다 또는 A는 A여서는 안된다는 부정성을 끊임없이 제기한다예컨대어제 내가 왜 그랬지..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다른 방식이 더 좋은 것은 아닐까 등등으로 항상 현상을 반추해 보며 반성한다이처럼 의식은 끊임없이 변하며 자신을 되돌아 본다즉 A는 A가 아니다즉 동일성이 없다따라서 그것은 무()무 이므로 자유다사르트르는 끊임없이 현재를 극복하려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의식=자유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이처럼 사르트르는 인간의 의식의 본성에서 자유를 도출해 낸다

.

2)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인간은 자유로운 존재

인간의 의식은 즉자존재가 아니므로 무이다무는 본질이 없다는 의미이다따라서 인간적인 본질은 없다본질이 있는 즉자와 이점에서 다르다돌멩이는 돌멩이 본질대로 바다는 바다의 본질대로토끼는 토끼의 본질대로 살아야 한다하지만 인간은 대자존재로서 무이기에 본질이 없다자유다인간존재는 목적도 없고 필연성도 없다필연성이 있는 것은 자유가 없으나 우연으로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유가 있다이 자유로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자유란 끊임없이 상황을 부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이기 때문이다끊임없이 실존을 형성하고 창조해 가는 존재이다     


3) 사르트르 소설 <구토>

소설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은 조약돌과 같은 사물의 만남을 통해 갑자기 사물의 우연성과 무의미성을 인식한다어느 날 돌연 사물들이 인간이 부여한 의미를 벗어버리고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이때 구토는 대상의 존재를 설명할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구토에서 사르트르는 로캉탱의 다양한 구토 경험을 묘사하면서 모든 존재의 우연성을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존재에 앞서 있는 존재의 이유가 없으며 대상이 그저 거기에 우연히 있을 뿐이라는 로캉탱의 경험은 부조리한 경험이다로캉탱이 인식한 부조리는 우연성이라는 부조리이다즉 모든 대상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으며 세계가 전혀 아무런 의미없이 존재한다는 어이 없음이다.     


4)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의하면 경아는 자신의 남자 의존증과 한국사회의 남성중심주의가 자신의 삶에 어떤 결과를 드러냈는지 벌써 인식하고 있었다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에 구역질을 하면서도 경아는 실천적인 결단을 하지 못했다실존주의에 의하면 경아는 자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부조리의 사슬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따라서 자신의 불행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져야만 한다이들에 의하면 이 영화는 사회가 부여한 여성적 본질을 거부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이리 저리 끌려다닌  한여인의 비극적 일대기 인 셈이다     


5) 경아와 실존주의

실존주의이 얼마나 허망한 결론인가과연 경아는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올 능력이 있었는가그것은 경제력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그녀에게 충분한 경제적 자립능력이 있었다면 실존주의 이론을 적용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이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직결된다고 하겠다이처럼 실존주의는 경제적 자립을 이룬 사람들에게 다소 부합하는 이론으로 보인다사회 하층의 성노동자(호스테스)자 가진 것 하나 없는 경아에게 실존주의적 자유를 들이대는 것은 가혹한 일로 보여진다     



B. 구조주의 입장

1) 주체 철학의 허구성

주체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사르트르등 실존주의자들은 주체의 실존적 선택을 통해 주체가 자신의 내용을 만들고 본질을 형성한다고 본다즉 주체는 자신타인사회역사를 자유롭게 의식적으로 선택한다고 주장하는 바 주체의 선택과 자유는 허상일 뿐이다.

이에 반해 구조주의는 주체란 그로부터 독립된 구조에 의해서 고유한 자리와 의미가 부여되는 것일뿐 주체의 자유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2) 구조주의와 자유     

자연에는 생존경쟁만 있을 뿐 그 어떠한 선악이나 방향은 없었다그러나 인간이 출현함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졌다인간은 자신들의 편리한 삶을 위하여 자연을 개조하여 문화를 만든다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자신들의 물적토대(영토화)와 운영원리(코드=구조)를 구축한다는 것이다즉 구조가 만들어진다인간 없이 구조 없고 구조 없이 인간 없다이로써 자연에 선악의 개념과 그 어떤 방향(진보등)이 생겨난다.  예컨대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 집을 만들어야만 한다집에는 마당부엌안방마루거실등의 구조(물적구조)가 만들어져야만 살 수 있다이때 집이 반드시 초가집이나 기와집일 필요는 없다어떤 곳은 동굴집또 어떤 곳은 수상집일 수도 있다이처럼 인간의 문화는 자의성이 그 특징이다언어가 실재 사물에 대해 자의성(소쉬르)을 갖듯 말이다또 여기서 왜 부엌이 부엌이라고 지칭되는가그것은 마당이 아니고안방이 아니기에 부엌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이다즉 고유한 부엌이라는 것(정체성본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와 관계자리와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구조는 집과 건물 같은 사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무의식의 규범체계를 의미한다가족에는 가족만의 영토와 근친상간 같은 규범(가족구조)이 있다규범이 없으면 가족이 아니라 동물이다학교에는 학교의 코드가교회에는 교회의 코드가 존재한다이러한 코드를 구조라고 말한다좀더 넓게자본주의 구조는 교환 증여의 바탕위에 수요와 공급법칙생산제도등등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이루어진다남성중심사회의 구조는 여성에게 순결강조호적제도상속제도제사제도결혼제도등을 통해 관철된다

 인간이 돈을 만들었지만 곧 돈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야 만다인간이 언어를 만들었지만 곧 언어가 인간을 구속하고야 만다인간이 사회와 국가를 만들었지만 사회와 국가가 인간을 구속한다구조도 마찬가지이다인간이 구조를 만들었지만 이제 구조가 인간을 구속하고 인간의 주체와 정체성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이러한 구조에서 개인은 자리와 위치에 따라 그 역할을 부여받는다가족에서는 장남의 역할학교에서는 반장의 역할회사에서는 과장의 역할군대에서는 유격대원의 역할등등...이렇게 촘촘하게 짜여진 사회구조속에서 관습과 규범을 넘나드는 자유란 없다그저 주어진 역할에만 순종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왕따되거나 범죄자가 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는 언어로 구성된다언어 없이 문화 없다소쉬르의 언어관을 살펴보자.     


3) 소쉬르의 구조주의와 주체

문화는 언어없이 존재할 수 없다모든 것은 언어로 이루어진다그런데 언어는 철저히 구조화 되어있다.(소쉬르)개인이 빠롤(발화)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랑그(문법)에 따라야 한다개인의 모든 정신작용은 모두 언어작용이며 빠롤인데이러한 작용은 모두 랑그의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랑그와의 관계에서 인간은 수동적이다즉 사고나 판단은 개인(주체)가 하는 것이 아니다사람은 언어의 의미체계(구조)속에 있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내가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언어가 내 생각마저 장악해 버렸다는 것이다아무리 개인이 의미를 만들고 싶더라도 이미 있는 랑그가 제약을 한다의미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랑그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이는 인간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주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모든 판단이나 사고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속에 내재해 있다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언어속에 혈혈단신 뛰어든 처지에 불과하며 인간 개인이 랑그를 좌지우지 할 수도 없다집주인은 언어고 우리는 세입자일 뿐이다인간은 주체가 아니라 구조의 역할 담지자 일 뿐이다.     

4) 경아와 구조주의

구조주의 입장에서 경아는 자본주의 남성중심의 한국사회는 경아에게 이러한 구조를 탈출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어찌 한갓 가냘픈 여죄수가 이 거대한 감옥을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이 입장에 선다면 이 영화야 말로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한국사회를 분석한 훌륭한 영화라는 평가를 내릴 것이다.     



7. 맺으며

순수하고 착한 영혼의 경아는 네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구원받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그것이 경아탓인지남자들 탓인지사회 탓인지누구도 명확히 진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 원인은 그들 사이 어디쯤에 있을것이다하여튼 경아는 쓰러졌다한 여인만 쓰러진 것이 아니다영화는 선언했다여자가 죽었다고여자 없으면 남자도 없으니 결국 남자도 죽은셈이다결국 영화는 주체는 죽었다고 선언한 것이다이 영화로부터 50여년이 지났다.  지금 여자는 살아났는가남자도 함께 살아났는가다가오는 겨울이다가올 눈보라가 경아가 쓰러졌던 겨울의 눈보라가 아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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