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전쟁 중이잖아...

by 준지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났다.


연차를 잘 활용해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도 있고,

친척들과 인연을 끊어서 집에서 푹 쉬었다는 지인도 있고,

차라리 빨리 출근하고 싶다는 사측 노동자도 있었다.



저마다의 일정 속에서 나는 '노인의 슬픔'을 직관한 추석 연휴를 보냈는데, 이 꺼름직하고 깊은 외로움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훗날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이 글을 다시 읽으면, 웃게 될지 울게 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연휴 전날, 취재 업무로 한국에서 가장 명성 높은 대학병원 행사를 찾았다.

이 행사는 일정 금액 이상을 기부한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 후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설명하는 자리였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분주히 움직였고, TV에서 보던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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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분위기를 기사로 옮겨야 하기에 둘러보던 중, 놀라운 장면을 봤다.


환자인 줄 알았던 어르신들이 바로 그 ‘후원자’들이었다.


흉부외과 원장이 버선발로 달려가기에 응급환자가 생긴 줄 알았는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께 다가가 “늘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꾸벅 인사하러 달려가는 거였다.



몇 수년째 억 단위의 기부를 이어온 분들을 모신 만찬 자리에서 줄곧 “여러분의 후원 덕분에 우리 병원이 존재합니다”라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행사였는데,


달콤한 감사 인사에 어르신들은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을 얻어서 기뻐 보였다.




그때의 묘한 감정을 느꼈다.

비슷한 나잇대의 노인인데, 여기에 있는 할아버지들은 병원장의 인사말을 들으며 만찬을 즐기고, 나의 할아버지는 저혈당 쇼크로 병실에 누워있다니.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떠났다는 사실을 2년 뒤에나 알게 되었다.

당시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던 할아버지에게 비보를 알리면 충격으로 쓰러져 줄초상이 날까 봐 염려했던 큰아빠의 전략이었는데, 자충수였다고 할까.


2년 동안 연락도 없고 찾아오지 않는 착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며 더는 참을 수 없던 할아버지는 결국, 모든 가족들이 슬픔을 추슬러가는 2년 뒤에 슬픔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충격에 차츰차츰 끼니를 거르다 저혈당 쇼크가 왔고, 아예 없었던 일로 하고 싶으셨던 것인지 아빠가 떠났다는 걸 잊어버리셨다.


왜 추석인데 아빠와 같이 오지 않았냐며 아빠는 어디 있냐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책임감 없이 자리를 뜨고 집으로 돌아왔다.






삶에는 늘 배움이 있어야 한다.

이번 추석에는 슬픔을 이겨내는 단합력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이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다 같이 슬퍼했고, 다 같이 아빠를 추억하며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남은 서로에게 최선의 사랑을 주자고 약속했다.


갑작스러운 경제적 문제로 반지하에 살게 되면서 아빠를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슬픔을 잊게 해 주었다.


비가 오면 신발장에 들어오는 물을 퍼야 하고, 뒤늦게 주식을 알게 되어서 경제 공부도 해야 하고..


곰팡이 잡고, 매도 타이밍 잡고, 틈나면 주말 알바 잡으며 버텼다.

엄마랑 오빠도 더하면 더했지, 정신없는 2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슬픔을 같이 끌어안고 작게 반죽해 나갔는데, 할아버지는 이제 시작이라니 그것도 혼자.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몰입할 수 있는 건 생각밖에 없다.


'왜 갑작스럽게 그렇게 떠났을까..'

'왜 계속 숨겼을까..'


할아버지도 후원인 식탁에 앉아서 달콤한 감사말을 듣고 싶었을 텐데

'당신이 있어서 우리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같이 슬픔을 이겨내는 존재가 가족인데,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깊고 넓은 아픔이다.

큰 아빠에게는 다시는 이런 일을 숨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 같이 울고, 다 같이 아빠를 추모했다면 슬픔도 줄어들 수 있는데..

그렇지만 모르는 것이다. 큰 아빠 말처럼, 그 당시에 할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쓰러지셨을지는.


기부로 남은 생을 버티는 어르신들도 보았고,

슬픔으로 병실에서 버텨야 하는 나의 할아버지도 보았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주식이니 운동이니 해서 '열심히 살면 언젠가 보상이 있겠지'하고 강박적으로 지내고 있는 나 자신도 보고 있다.



명절인데 취재 기사 쓰고 할아버지 응급실 소식에 추석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거 같다.

퇴근길에 반찬가게 가서 모둠전이라도 하나 사서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