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신없는 11월을 보내고 있다.
얼마나 정신이 없냐면, BTS 노래를 들으려 했었는데 TBS 라디오를 틀었다.
지난주에는 멸종위기 수달을 지키는 환경운동가를 만나러 지리산에 다녀왔고,
이번 주에는 대통령 주치의 출신의 거액 후원자를 인터뷰하러 서울대에 다녀왔다.
매주 다양한 직업군 달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지만, 정작 내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날들과 싫은 상사 밑에서 일하느라 짜증 나는 날들이 교차하면서 나날이 신용점수는 오르고, 그럭저럭 ‘믿을 만한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다.
퇴근하고는 운 좋게 당첨된 서울 재테크 무료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지출을 더 줄이라는 말은 못 하겠으니 얼른 수입을 늘리라며, 사양산업인 출판사를 떠나라는 조언을 들었다.
퇴근하고 시간 되는 날은 쿠팡이츠를 뛰라는 것과, 비혼주의자가 아니라면 돈 많은 남성을 만나서 결혼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국가사업인데 이런 수위의 조언을 할 수 있는 건가?)
상담 내용을 요약하자면, '빨리빨리 성공하라는 것'이다.
20대이지만 60세의 내가 국민연금만으로 버틸 수 없을 테니, 지금부터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지금부터 빨리 투자를 시작해야 하며, 더 늦기 전에 재력가를 만나야 삶이 살만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전형적인 한국식 가스라이팅이라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일부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철이 든 거라면, 나도 철이 든 걸까?
그리해서 상담 과정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내 상황에 맞게 조율할 것은 조율하는 것이 좋겠다.
우선, 재력가가 아니어도 사랑은 해볼 것이다.
젊은 나이에 얼른 돈을 모아야 하니, 쓸데없는 인연은 만들지 않겠다고 연애도 포기하는 세대이지만 사랑은 할 것이다. 사랑은 철이 없을 때 해야 제맛이다. 사랑에 쉽게 빠지는 나의 사랑력(Love Power)은 평균보다 낮은 편이라고 자신하는데, 그래서 더 역치가 낮다. 자그마한 사랑만 있어도 풍족한 하루를 보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철이 없을 때 자그마한 것에도 사랑을 품을 계획이다.
가끔은 일부러 나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허리에 군살이 붙지 않게 하려면 수시로 배에 힘을 주고, 꽉 끼는 바지를 입는 것처럼. 좀 살아갈만하다 싶으면 스스로에게 제약을 둘 것이다. 나에게 책임져야 할 홀어머니가 있다는 걸 수시로 상기하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연봉 상황도 인지하고, 아침마다 경제 신문도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은 그럼에도 오늘을 즐길 것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마음 줬던 사랑의 대상이 떠나도,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당장에 돈이 안 늘어도, 슬슬 몸이 노화하기 시작해 아파져도, BTS 노래 들으려다 TBS 라디오를 켜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었어도 당장 오늘을 즐기며 살아야지.
불어오는 바람이 왠지 서글픈 계절이다.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어져버린 수능 날.
어린이가 아닌 지는 꽤 됐지만 아직도 내가 어른이라는 걸 실감하기 어렵다.
가끔 꾸는 꿈에서 영원히 우리 아빠는 58세, 나는 24세.
철이 아주 잘 들어서,
아빠보다 더 멋있는 58세의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