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by 문창인J

달빛조차 끈덕이던 계절 온 식구 둘러 앉아 한 입 베어 물던 열대야 당신들은 참 좋아했었지 불그스름하게 익어버린 속살이 난 너무 끔찍했었는데 새하얀 실핏줄이 터진 누군가의 머리 같기도 했지 숟가락으로 매일마다 파내던 당신들의 손길은 때론 두려웠어

그 속에 날파리조차 꼬이지 못하는 건 아닐는지 빈 껍질만 쓸쓸히 혹여 메마를까 언젠가는 붉은 과즙들이 터져 저렴한 b급 영화처럼 갑작스러운 엔딩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아주 사소롭게 나도 수박을 한 입 베어먹는 꿈도 꿨었지 너무 달아서 깨고 싶지가 않았어

왠지 모르게 요즘은 입안에서 단맛이 나는 것 같아 조금씩 빨아먹다 보면 언젠가 비어갈 수 있을까 노란 비닐봉지에 쌓인 빈 껍질들을 바라보며 빛바랜 줄무늬만 남은 삶을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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