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동자 A 씨는 지난해 9월 계단에서 추락해 골반과 머리 등을 심하게 다쳤다. 10분 만에 출동한 소방대원은 응급처치를 마친 뒤 A 씨를 구급차로 옮겼지만 기장군과 해운대구 등 인근 부산지역 응급센터 8곳에서 모두 진료를 거부했다. A 씨는 골반 골절로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곧바로 이송 가능한 부산 고신대 병원에선 의료진이 부족해 수술이 불가했다. 결국 A 씨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사고 발생 4시간 만에 사망했다.
이어 지난해 9월 조선대학교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20살 대학생 B씨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끝내 숨졌다. 신고를 접수한 구급대는 B 씨를 직선거리 100m 앞에 있는 조선대학교 응급실로 이송하려 했지만 응급의학 전문의는 없었다. 외과 전문의 2명만이 당직 근무 중이었지만 긴급 수술 및 다른 환자 대응으로 자리에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환자가 응급실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대기하는 상황을 일컫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 개혁 추진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여파로 분석된다. 반년 이상 지속된 상황은 의료 공백을 메꾸던 전문의들의 진료 역량을 감소시켰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C 씨는 지난해 9월 인터뷰에서 “원래였다면 응급실에 와서 치료받고 갈 텐데 요즘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환자들도 있어서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라며 심경을 밝혔다. 이어 “응급실에서 간호사는 보통 3교대를 한다”며 “의사 파업으로 인해 의사의 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경우가 생겨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의료분쟁이 시작된 이후 응급실 부족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지역응급의료센터 중증 환자 1,000명당 사망자 수는 78.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명 증가했다.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일축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과 대비된다.
하지만 사태의 핵심인 의정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야당은 추석 전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한 여야의정협의체 출범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대한의사협회 등 8개 의료 단체가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 없이는 협의체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될 조짐도 보인다. 추석 연휴 동안 주요 대형 병원 응급실이 24시간 진료를 유지하며 ‘응급의료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수도권 병원의 응급실 채용이 늘어남에 따라 전문의 연쇄 이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지역 국립대 병원 응급의료 공백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의정 갈등 장기화에 따라 국민, 간호사 등 개인적 차원의 피해가 장기화되고 있다. 해당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는 각자의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협의체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각 집단은 의료대란에 대한 시민 불만이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음을 인지하며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원만한 합의를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