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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tea Oct 30. 2022

이주민 이야기

'외지인, 타지인, 이방인, 이주민.'

 

저에게는 늘 궁금한 이야기입니다.

민들레 꽃씨처럼 집을 떠나 상경한 개인사 때문이겠지요. 더 거슬러 올라가 추운 만주로 떠난 친조부의 이야기가 뇌리에 박혀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집을 떠나온 사람들은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시나브로 외지인에서 주민으로 옮아갑니다.

주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주민의 사전적 의미는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일정한 주소 또는 거주지를 가진 사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이가 주민의 기준이 될까요? 그렇게 쉬운 거라면 한 곳에서 몇 년을 살아온 이주민은 왜 이주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주민은 주민이 되기까지 주변부에 머물게 됩니다. 주변부에 있는 사람을 사회적 약자, 소수자라 말합니다.

약자와 소수자,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요?

약자는 힘을 보강하여 이영차하고 일어나면 주류가 될 수 있습니다. 무직자가 직장을 가지고 병자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처럼 상태변화가 가능하다면 약자에 속합니다. 하지만 성별, 국적과 같이 변치 않는 특성으로 인해 비주류가 된 사람을 소수자라고 합니다.

반드시 주류에 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비주류로 산다는 것은 주류에 속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만성적인 피로를 수반하게 됩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다문화 가족이 출연할 때 선진국 아이가 나오면 예능이고 개발도상국 아이가 나오면 다큐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쩐지 귓전에 방송의 배경 음악도 달리 들리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든지 본디 살던 곳을 떠나야 할 때 우리 모두 이주민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살던 곳을 떠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떠날 생각이 없다면 이주민의 삶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일까요? 한국은 변하고 있습니다. 은둔의 나라에서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선 한국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고 살고 싶어 합니다.


이주민을 이방인으로, 경계선 바깥에 두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습니다.

'이주민 때문에 내가 낸 세금이 새고 있다. 범죄를 일으킨다. 우리네 문화와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

저는 이주민 자리에 이 단어가 놓일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습니다. 바로 정신장애인입니다.

약자와 소수자를 그 자리에 놓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의사가 사회의 비주류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정신과 의사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 약자와 소수자를 좀 더 자주 만납니다. 물론 저와 만나는 순간에는 그 사람이 아플 때이지만 아프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삶도 궁금합니다.


한 번은 '이주민은 우리의 이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 토론회였습니다. 참석자 중 두 분은 재외동포로 해외에 거주하던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외국에서 소외당한 경험과 그곳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이 그들을 토론장까지 이끈 것입니다. 그것이 연결고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난관을 맞닥뜨렸습니다. 이주민 반대파 100명을 합쳐놓은 것 같은 한 사람이 토론회 내내 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습니다. 그 생각은 창과 칼이 되어 말 그대로 고막을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토론회가 끝날 무렵 두통과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당장 검은 머리를 한 사람도 온전히 내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뼈를 때리는 경험을 하고 씁쓸하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없었다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다른 생각은 듣지 못했을 겁니다. 결국 이주민은 우리의 이웃인가?라는 질문에 더 많은 의문문을 보탠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서에 따르면 제 조상님은 다문화 가정이었습니다. 시조 김수로왕께서는 인도에서 온 공주를 아내로 맞았죠.

그게 21세기를 사는 저랑 무슨 상관일까요?

학회 참석을 위해 미국에 갔을 때 새로운 친구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왔다고 했고 저는 대화를 이어갈 공통분모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인도 와봤어? 아니, 한국 와봤어? 아니. 영화에서 보던 인도인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준비했던 영화 이야기를 하기도 애매했습니다.

그때 퍼뜩 떠오른 이야기, 우리 조상님은 인도에서 왔고 나한텐 인도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 아직도 그의 폭발적인 반응과 반가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연결되어 있네!”


새로 알게 된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과에 다니는 친구가 있는 것’입니다.* 이주민도 마찬가지겠지요.

이제는 영화 말고 그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되겠죠.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회자되길 기대합니다.


*Penn, D. L., Guynan, K., Daily, T., Spaulding, W. D., Garbin, C. P., & Sullivan, M. (1994). Dispelling the stigma of schizophrenia: what sort of information is best?. Schizophrenia bulletin, 20(3), 56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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