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en tea Oct 30. 2022

차갑고 딱딱한 침대

'밤은 길고도 길었다! 간호사가 다녀가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첫 번째 환자에게는 물약을, 두 번째 환자에게는 가루약을 주고, 세 번째, 네 번째 환자에게는 주사를 놓고 갔다. 아조프킨은 주사를 맞으며 비명을 질렀고, 종양을 삭여야 한다며 또다시 보온기를 달라고 떼를 썼다. (...) 모두들 이제서야 비로소 되살아난 것 같았고 아무 걱정도 없고 치료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암 병동 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 이야기는 늦은 밤 걸려 온 전화로부터 시작합니다.

부모님이 위독하다는 전화였습니다. 작은 응급실을 거쳐 큰 병원에 옮겨졌고 심각한 상태임이 분명했습니다. 자정을 넘어선 시간, 저는 먼 곳에 있었습니다.

위태로운 숨을 기록하는 기계음과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습니다. 담당 의사는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지금 더 큰 병원으로 전원을 갈 건지 물었습니다. 한 사람이 생과 사, 그 갈림길 있을 때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 순간,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습니다.

병원에서 수없이 목격했던 순간, 그리고 중요한 질문. 그것은 어떤 의학 지식도, 인맥도 아닙니다.


"당신의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고 전원 계획은 취소되었습니다.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상봉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전원을 가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단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담당 의사가 전원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면 그리 했을 것입니다. 저는 멀리 있고, 가까이 있다고 해도 그분보다 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너무 늦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서 중환자가 되었고 저는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병실로 들어가면 좁고 딱딱한 침대를 배정받습니다.

그의 집이 몇 평이든, 어떤 매트리스를 쓰든 병원에서는 같은 평수를 차지합니다.

환자들은 식탁이면서 책상이고 안방이면서 침실인 침대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하루 일과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주치의를 만나는 회진시간입니다. 우르르 몰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주변을 정리하고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00님 00 기왕력이 있으시고 000 수술을 받으셨고…."

책에서 보던 의학적 응급사례가 바로 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의과대학에서 병원 실습을 돌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20대 여성이 수술을 앞두고 있었는데 종양으로 양쪽 난소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그저 다음 날 잡힌 수술 스케줄 중 하나였습니다. 그게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뒤늦게 깨닫고서 그런 저 자신에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병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눈앞에서 회진을 도는 사람들이 저의 가족을 책에 쓰여진 병으로 만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초보 간병인이었지만 의학용어를 용케 알아들었고 병동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호자는 사정이 달랐죠.

난생처음 간병인이 된 보호자는 이런저런 질문과 요구를 쏟아냈습니다. 아니, 그러지 못해 전전긍긍하기도 했습니다. 다정한 직원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고 모두 그 사람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가끔 미담이 오갔고 한사코 거절하는 손사래를 물리치고 주머니 안에 먹거리를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매일밤 규칙적으로 울리는 의료장치의 소음과 딱딱한 간이침대는 조금씩 보호자의 기력을 빼앗아갔고 인내심 또한 갈아먹었습니다. 긴 밤을 보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죠. 어쩌면 병원이라는 생명체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골수를 빨아먹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침상 위에 누운 환자들은 병과 씨름하느라 통증 이외에는 어떤 불만도 관심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가 길게 또는 빠르게 지나갔고 모두 같은 곳에 있지만 다른 시간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병실에서 나와 검사실로 이동했습니다. 크나큰 병원 안을 누비며 잠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긴 줄로 늘어선 다른 병동에서 온 여행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줄 끝에서 방사선 차폐문이 열릴 때마다 환자의 몸을 촬영하기 가장 좋은 자세로 만들기 위한 바쁜 손길이 보였습니다.

차가운 철제 기구에 닿는 따뜻한 환자의 몸.

휠체어와 수액기둥에 의지한 긴 줄의 여행자들을 보고 다음 차례를 호명했습니다. 효율적이면서 능숙한 손길은 마치 장인을 보는 것 같지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빠진다면 그곳의 체감 온도는 더욱 내려갑니다. 36.5도의 체온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말이죠.


병원을 임시 거처로 삼았던 입주민들은 질병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스트레스로 작용했지만 건강 회복과 퇴원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면서 이겨냈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겨진 정주민들은 오늘도 내일도 바쁜 하루를 아픈 사람들과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보호자로 다른 사람들을 관찰했고 어떤 것이 그들을 기쁘게 또는 슬프게 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병원이 모두에게 좀 더 나은 곳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보호자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병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차갑고 딱딱한 침대 때문에 따뜻한 무언가를 더 많이 원하게 된다는 걸 말이죠. 사소한 것일지라도 단 한 번 따뜻함을 경험하면 그날 하루는 그럭저럭 지낼만하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을.


이전 20화 이주민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