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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tea Oct 30. 2022

마중 글

언제부터 정신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떠올려보면 10여 년 전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택시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프로그램 사이 광고 시간이었어요. 음악이 흘러나오고 어느 대학병원 교수님이 스트레스 관리법을 설명했습니다. 끝에 ‘3분 건강상식이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죠.

제가 느끼기엔 모두가 알 법한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일반 대중은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알더라도 반복해서 들으면 좋지 않을까.

그때부터 진료실 너머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피어올랐습니다.


라디오에 출연하려면 대학교수처럼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흘러 저는 작은 진료실에서 만나는 몇몇 분들과 소통하고 있었죠.

제가 배운 지식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남녀노소에게 차암 좋은데...

사막에서 외치듯, 보이지 않는 독자에게 손 편지를 쓰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쓰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그 망설임에는 전문가로서 충분히 농익었는가에 대한 자기 검열과 한 가지 고민이 더 있었습니다.

그나마 학술적인 글쓰기는 낱말 맞추기 하듯 띄엄띄엄 쓸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글쓰기에 도전하는 것이 망설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어떤 꿈을 꾸고 나서부터입니다.


꿈에서 시험을 치고 있었어요. 감독관이 학생들에게 문제의 답이 1번과 3번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답안지에 3번만 마킹해서 제출한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왜 답을 알려줘도 맞추지 못할까, 자괴감에 빠져있는데 계단에서 마주친 교수님이 3번만 체크한 사람도 정답 처리하겠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꿈인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고민하는 문제-글을 쓰고 싶다-에 대한 답, 그러니까 완벽한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뜻으로 (제 마음대로) 해석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글의 문을 열기에 앞서 제 안에 수집된 문장들은 제가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왔고, 상당 부분은 제가 만난 환자분들께 기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다른 사람이 허락도 없이 자신의 일기를 훔쳐보는 걸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저와 함께 써 내려갔던 일기는 제 몸 안에 녹아있지만 제 글에서는 알아볼 수 없도록 몇 번이고 고쳐서 썼습니다.

그러니 저와 만났던 분들이 우연히 집어든 책에서 필자의 이름을 보더라도 마음 졸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일터에서 주고받은 이야기, 환자분과 나눈 이야기를 뺀다면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저는 진료실 밖으로 나가기로 했고 길 위에서 여러 사람과 꼭 그만큼의 질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제 글은 그 둘 사이, 어딘가의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전공한 사람이 배운 지식과 그의 삶이 어떻게 만나는지 글을 통해 보여 드리려 합니다.

글을 읽다 두서없이 느껴지거나 설명이 불친절하다고 느껴진다면 언어와 친하지 못했던 필자의 탓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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