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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tea Oct 30. 2022

I’m all ears.

"I’m all ears!"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타닥타닥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거실,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외칩니다.  

저는 이 표현을 좋아합니다. '나 지금 완전 듣고 있어!‘라는 뜻으로 상대방을 향해 열린 귀, 귀의 화신이 된 청자를 상상하게 합니다. 귀기우려 듣고 있노라면 온몸에서 섬세한 섬모가 뻗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듣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과 의사일 겁니다.

코미디 영화에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psychodynamic psychotherapy)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요, 의사가 카우치에 누워있는 환자 몰래 진료실을 빠져나와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돌아왔는데도 환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혼잣말을 하고 있었죠.

이렇게 도통 말이 없는 정신분석가가 과연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점심시간에 먹을 샌드위치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환자들은 궁금해합니다.

치료 중 의사는 자신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곳에 적극적으로 존재하며 온몸으로 듣습니다.


듣는 사람이 없는 말하기는 어떤 모습일까요?

영화 <블루 재스민>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낯선 이에게 맥락 없이 혼잣말을 쏟아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마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복기하는데요, 그러면서 점차 현재는 사라지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의 발화는 적극적인 청자가 없기 때문에 무한 도돌이표에 빠집니다.


말은 듣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반응해 주길, 자신이 하나의 존재임을 확인받길 원하는 거죠.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여진 사람은 안전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언젠가 택시 안에서 기사님의 아내가 암투병으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초보 의사였고 정신과는 물론, 내외과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고 기사님이 택시에서 내려 제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셨습니다. 그 장면은 제게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또 한 번은 학교 동창이 큰 사건을 겪고 우울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긴 통화를 하고 난 다음 날, 친구는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고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이렇게 듣기는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가집니다.


환자의 가족이 제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요?”


저는 듣기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늘 하던 건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들을 수 있을까요?

첫째, 집중해서 듣기입니다. 긴 시간을 내지 못할수록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몸으로 듣기입니다. 눈을 마주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거죠.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필요한데요, 바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로 듣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수용적인 듣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용적이지 않은 듣기의 예를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집중력도 좋고 리액션도 좋은 동네 이웃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내 얘기에 무릎을 치며 공감 어린 표정으로 듣고 있던 사람이 불쑥 그건 누구의 잘못이라고 결론짓거나, 성급히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그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판단이 개입하는 순간 두 사람의 몰입 상태가 중단되고 청자와 화자의 자리가 바뀌게 됩니다. 무대 위로 관객이 난입한 것이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고 싶겠지만 듣기가 선행되지 않은 조언은 실패할 공산이 큽니다.


듣는 동안만큼은 세상만사를 좋고 싫음으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던 뇌의 작동방식을 멈춰야 합니다. 습관대로 하지 않으려면 애를 써야 하죠.

좋은 듣기는 상당한 에너지가 듭니다. 그래서 듣기에는 품앗이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힘들 때 내가 더 들어주고, 내가 힘들 때는 상대방에게 더 말합니다. 둘이서 하는 품앗이가 힘들다면 더 많은 사람과 품을 나눠야 합니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면 나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잘 듣게 됩니다. 듣기의 선순환이죠.

2022년 입적하신 영적 지도자 틱낫한 스님께서는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말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지금의 나는 더 들어주는 사람인지 더 말하는 사람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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