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드디어 작가다. ^^

by LOVE LOVE LOVE

글 쓰기를 좋아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독서를 많이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부끄럽지만 최근은 그냥 숏츠를 의미없이 넘기면서 피곤에 지쳐 잠든 척도 많다.


그런 나에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해준 인터넷에게 감사한다.

작가 신청이라는 것이 사실 좀 낯설었다.


나에게 작가란 좀 저 높은 곳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진솔하게 신청한 나의 신청서가 OK 되었다고 하니


참 오랜만에 설레고 기쁘다.

드디어 나도 작가다. ^^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해 보았는데 사실 난 마케팅이라는 분야에서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느낄만큼

초라함을 느낄 때가 많기에 일 이야기나 전문 지식을 빼고 글을 쓰려고 고심해 보았다.


그 결과 선택한 주제는 바로 육아이다.

이제 차근 차근 기억을 더듬어 우리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고 / 그리고 엄마 아빠가 만나고 사랑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이렇게 쓰다보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점은 바로 회상이다.

요즘 점점 건망증도 심해지고 기억도 흐릿해짐을 느끼는데 그나마 또렷한 기억들이 손에 잡힐 때

그 기억들을 이곳에 세기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더 노년에 다시 꺼내 읽어보면 좋겠지? ^^


자! 드디어 작가로서의 첫 에피소드를 고를 시간인데... 흠 너무 신중해 지는군.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을 적어보는 것이 좋겠다.



새벽 12시 35분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사실 기억에서 흐릿해지는 것이 다소 느껴지지만 그래도 다시 기억해야겠다.


사랑하는 아내 (라고 표현하니 어색)이 오랜 산통 끝에 결국 제왕절개가 결정되었다.

자연 분만이 이렇게나 힘든 것이구나. 출산의 고통, 출산의 고통 그 단어가 계속 연속적으로 머리속에 떠올랐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직 뱃속에 있는 아기는 나에게 2순위로 느껴졌다. 그저 아내만 건강하게 잘 끝났으면 하는 생각 뿐. 아기는 물론 걱정되었지만 아직 일면식이 없어서인지..


"응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핸드폰을 켜고 동영상을 찍으려고 계속 대기 중이였던지라 들리자마자 울음소리와 함께 시계를 찍었다. 이렇게 다 기록해 두어야지 하고 미리 출산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보물은 태어났다.


태어나면 바로 아빠에게 아기를 보여주는 순서가 있는데 다들 태어나면 쭈글쭈글 하다던데 난 그런 느낌보다는 아 너무 연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구나 라고 느껴지기만 했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작을 수 있구나. 눈을 뜨고 쳐다보는 아기를 보며 손으로 불빛을 가려주었는데 간호사 분이 어차피 못봐요. 라고 하셔서 "아... 근데 쳐다보는 거 같은데..." 하면서 손을 서서히 거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난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아주 건강하게 수술을 마쳤다.

다행이다.



가을이다.

우리의 보물 소중한 딸은 가을에 태어났다. 날도 좋고 햇살도 적당히 따뜻한 그런 날.

우리는 3일간의 산부인과 생활을 마치고 산후조리원을 찾았다. 코로나 시기인지라 바로 부모님이 오셔서 보지 못하시는 것이 참 안타까웠는데 산후조리원 역시 1인만 출입이 가능한 구조이므로 나만 출입하게 되었다.


갓 태어난 손주를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싶었는데 또 막상 나중에 들어보니 그 와중에도 장모님은 딸 걱정이 앞서셨나부다. 참 다행이다 건강히 출산을 마쳐서.


이미 9년이 지난 기억인데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나는 점이 있다.

처음 3대가 만나던 날, 산부인과에서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던 날 장모님의 눈빛, 울먹이는 와이프, 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손녀딸을 보는데 참 뿌듯했다.


시집간 딸과 시집을 보낸 엄마의 가장 따뜻한 순간이지 싶다.

나중에 우리 딸에게도 내 와이프가 이런 시선을 보내는 날을 옆에서 지켜보겠지?

그때 이 글에 댓글로 기록해야겠다...


날이 너무 좋아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그 즈음이였다.

산후 조리원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아서 가격이 부담된다. 등등 이야기도 많이 들은 것은 사실이다만

우리의 경우에는 아이를 산부인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간다는 것이 마치 어린 아이가 생전 처음 겪는 야생의 세계로 나가는 느낌이였기에 산후조리원은 빠르게 피신할 안식처 같은 곳이였다.


산후조리원 분들은 정말 대단하시다. 물론 경험을 통해 단련되셨기만. 그 예민하고 연약하기만 한 생명체들을 그렇게 잘 돌봐주시니 말이다. 이름을 밝혀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선택한 산후조리원은 최고!


그렇게 2주가 지난다.

아기가 잘 자고 있나 늘 노심초사 하면서, 잠시 부모에게 보내주는 시간에는 함께 사진도 찍고 하면서

정신 없이 말이다.


퇴소 D-1

목욕 시키는 법을 배우고 이것저것 공부하느라 분주하다.

산부인과를 나와서는 산후조리원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고 느꼈는데, 이제 정말 우리 둘이 이 작은 아기를 온전히 봐야 한다 어쩌지!!!


안는 것부터 집의 온도, 작은 울음에도 당황하고 허둥지둥

숨은 잘 쉬고 있는지 휴지를 코에 가져다 대고 체크도 해보고 난리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100일이 코 앞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