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이미 와 있었다

I후불제 인생I

by 작가 기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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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젠가 나에게 제대로 정산할 거라고 믿었다. 잘 버텨온 날들의 끝에, 고생한 만큼의 몫이 한꺼번에 지급될 거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오늘의 고단함을 참는다. 지금은 적자라도 언젠가 제대로 흑자구조로 바뀔 것이라 믿었다. 오늘 참고 흘리는 눈물은 내일의 통장에 엄청난 이자가 붙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내가 성실하게 견디면, 인생 계산서를 다시 써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통장은 잠잠했다. 노력은 꾸준히 쌓여 가도, 인생은 좀처럼 보상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지출만 늘어갔다. 때론 관계는 쉽게 마모되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게 늙어 갔고, 꿈은 현실 앞에서 돈과 체력을 먼저 요구했다.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 무렵, 나는 유난히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일시적인 성취는 있었지만 지속적인 기쁨은 없었다. 누군가 곁에서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주면, 고마움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무엇을 위해, 이만큼 달려왔는지, 나 스스로도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장면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퇴근길, 평소와 다르지 않은 골목에서였다. 문득 붉은 노을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가던 시간이었다. 동작구 대방동 자이 아파트 인근을 지날 때쯤에, 한동안 붉게 접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누렸던 여유 때문인지 숨은 깊어졌고, 어깨의 힘은 빠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잠시 누렸던 노을 풍경이 “참 좋다”는 감각을 불러왔다. 그때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누리며 사는 게 인생 보상금은 아닐까 하고. 돈도 성취도 박수도 아닌 형태로 미리 지급된 행복. 아무런 조건 없이 성과와는 무관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작은 보상금과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한 방에 만회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주변에 받아놓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행복들, 그 틈들 사이에 내가 받아야 할 보상금이 스며 있는 듯했다. 특별한 약속도, 성과도 없었지만,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누리던 것들은 고요하고 포근했다. 인생의 행복 보상금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인생의 계산서는 고생의 총합이 아니었다. 오늘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생활 방식이었다. 앞만 보고 달리면 노을은 스쳐 가는 시간에 불과하지만, 준비된 사람에겐 충분한 위로의 보상금이었다. 인생 보상금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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