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의 배달

by 작가 기안장

#오후 1시의 배달#

날씬하고 작은 체구였다. 그녀의 발걸음 사이로 물류현장의 숨 가쁜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매일 오후 1시경이 되면, 아파트 단지에는 푸른 1톤짜리 택배 차량이 물끄러미 들어왔다. 아파트 주차장 공터를 지나다가 작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택배 차량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남자가 아닌, 젊은 아가씨가 택배기사라는 점이 생소했다.


나는 속으로 신기한 모습을 구경한 것처럼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마음 속으로 젊은 아가씨가 택배기사 일을 한다는 게 낯설었다.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고동색의 택배 유니폼과 흰색 운동화, 회색계열의 편안한 몸빼 스타일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검정색의 자외선 차단 얼굴 가리개를 하고 있었다.

택배물건을 배달할 때면, 늘 앞 동부터 배달했다. 나는 그녀와 얼굴이라도 트고 싶어, 우리집과는 반대편에 있는 앞 동쪽으로 걸어갔다. 택배물건을 나르고 아파트 현관문을 빠져나오던 그녀를 보며 가볍게 말을 건넸다. 나는 젊은 아가씨가 힘든 일을 한다며 대단하다는 말을 건넸고, 그녀는 아르바이트 삼아 몇 개의 아파트촌을 담당한다며 대답했다.

그녀는 나의 칭찬에 쑥스러운지 검정 얼굴 가리개 너머로 살며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후 1시경이면, 아파트는 텅 빈 박스 상자와 같이 침묵으로 휩싸였다. 기껏해야 아파트 계단을 청소하는 나이 많은 아줌마들의 거친 호흡 소리만 들려왔다.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시간에, 불쑥 나타나 자신에게 관심을 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 듯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하루에도 다섯 시간 이상 택배 일을 한다고 말했다. 바쁘게 택배물건을 한 아름씩 나르는 그녀를 더 이상 붙잡아 둘 수 없었다. 그녀가 일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지만, 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또다시 대화할 수 있는 틈새를 엿보고 있었다.

내가 택배 여기사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어떻게 택배 일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 하고 있는 택배 업무의 부담감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 호기심의 대척점은 노동의 성질이었다. 중년 남자인 나는 글을 쓰는 정신노동에 몰입하고 있었고, 그녀는 젊은 남자도 하기 힘든 육체노동을 전념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언제가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나는 인생이라는 자갈밭 공터에서 부끄러움의 감가상각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는 웃음을 머금은 정직한 노동으로 생애의 순자산을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동안 글을 써왔다. 성찰과 위로의 경계를 오가는 생활 속의 문장들을 건져냈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약간의 문학성을 가미한 쉬운 글로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다. 생활문학은 나도 아픔을 겪어 봤고, 당신도 아픔을 겪었다는 체험적인 공감대를 나누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꿰매어온 수선법과 같은 형태였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자판을 두드리거나, 원고지 위에 일련의 글들을 이어갔다. 글을 쓰는 사람에겐 성찰을, 읽는 사람에겐 위로를 줄 수 있는 쌍방향의 치유제와도 같았다.


두세 달쯤 지난 여름의 초입새였다. 나는 교정해야 할 원고지를 손에 들고, 아파트의 외진 구석에 있는 쉼터로 걸어가고 있었다. 푸른색 택배 차량이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차에서 내린 그녀는 화물칸에 실려 있는 택배물건을 아파트 동과 동 사이의 주차장 경계선을 길게 늘어놓은 자갈밭 위에 동호수를 구별해서 군데군데 쌓아놓고 있었다. 군수 물품을 배달하는 전략적 기지와도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택배 배달을 효율적으로 하려는 그녀의 지혜였다.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여전히 동그란 두 눈을 제외하고는 검정색 얼굴 가리개로 자외선을 차단하고 있었다. 오늘은 박스 상자가 큰 물건이 좀 많은 것 같다는 말을 건네며, 다시 한번 그녀와 안면을 트기 위한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때는 서너 개의 택배물건을 한 번에 날랐는데, 한 번에 큰 상자 하나씩만을 나르던 모습이 애처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 상자가 커서 많이 무거워 보이네요. 하는 일이 힘들지는 않아요?”

“택배 여기사: 힘은 들죠. 하지만 매일 하는 일이라서 지금은 익숙해요.”

“나: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어요. 이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택배 여기사: 물류센터 사장님이 소개해 주었어요. 그래도 월급이 괜찮아요.”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커다란 택배 상자 하나를 가슴에 안고 배달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힘이 있고 당당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택배 회사의 고동색 유니폼의 중간쯤에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가느다랗게 줄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택배회사의 밤샘 유통작업이 떠올랐다. 택배물건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쏟아져 나오면, 컨베이어 벨트 양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일이 분류하던 수작업이었다.

기억의 연결고리처럼, 일련의 택배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밤새 분류되고 다시 실려 나와 집 앞까지 도착하는 긴 여정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이미 많은 손을 거친 뒤였다. 나와 같은 고객의 눈에는 자세히 보이지 않아도, 거대한 노동시스템 속에서 돌아가는 일이 택배 업무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고단한 육체노동의 현장이었다.


다시 오후 1시경의 정적이 찾아왔다. 그녀의 푸른 택배차량이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 나갔다. 그녀가 머물던 자갈밭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건들이 놓였던 자리마다, 그녀의 발걸음이 바쁘게 옮겨 다녔을 체취만 맴돌았다. 우리는 각자의 자갈밭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동의 실타래를 풀고, 또 엉킨 곳을 수선하며 살아간다. 나도 같은 방식이었다. 온종일 자판을 두드리거나 원고지를 쓸 때가 많았고, 다시 그 원고를 수선하며 좀 더 나은 결과를 생산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녀의 노동을 고단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나의 은둔을 정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텅 빈 박스 상자 같던 아파트 공터의 자갈밭에서, 나는 노동이 갖고 있는 삶의 가치를 다시 새겨 볼 수 있었다. 비록 생의 실타래가 아무리 엉켜 있어도, 그것을 정직하게 풀어가는 손길만 있다면 인생은 언제든 다시 수선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모습을 여리지만 강인한 노동의 체질을 품고 있는 택배 여기사에게 배웠다.

사유의 자갈밭에서 그녀의 당당함을 읽어내던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새똥 하나가 내 원고지 위에 툭 떨어졌다. 마치 하늘이 내 고루했던 노동관에 대한 경쾌한 마침표를 찍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체취는 주차장 자갈밭 사이에서 곱게 피어났다. 그 향기는 내 원고지 너머로 오래도록 스며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택배물건만 나르는 게 아니라, 노동의 의미를 긍정하는 법을 배달하고 있었다. 가끔 서재에서 글을 쓰다 보면,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리며 “택배 왔어요”라는 기다림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장 거친 자갈밭 위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그녀의 미소야말로, 다시금 나를 세상으로 이끄는 강한 자석이었다.



_기안장_

택배차량과 택배 물건.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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