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O.1MHz의 거리#
소리굽쇠를 하나 두드리면, 옆에 있는 다른 소리굽쇠도 같은 음으로 떨린다. 타인의 슬픔을 보았을 때, 내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내 안에도 똑같은 공명의 주파수가 울린다. 공명은 내 안의 기억이 상대의 아픔에 응답하는 것이다.
나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낡은 자동차의 라디오 다이얼을 돌릴 때마다, 정확한 채널을 찾으려면 지직거리는 날카로운 소음을 감당해야 한다. 주파수가 단 0.1MHz만 어긋나도,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소음의 잔치가 되고 만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같은 이치였다. 저마다 주파수를 갖고 있고, 채널의 신호가 맞닿아야 맑은 소리를 냈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은, 기꺼이 내 안의 소음을 끄고 그 사람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는 인내의 과정이었다. 공감이라는 울림의 소리였다. 함께 마음의 골짜기를 내려갈 때, 잔잔하게 울리는 마음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맑은 시냇물 같았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과거의 소음을 잊는 게 아니라, 새로운 화음을 찾아가는 용기였다.
사람들과의 우정이란, 때론 직업이라는 전장(戰場)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관계였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친구가 어느새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거나, 내가 넘어버리고 싶은 욕망의 숫자가 되어버렸다. 둘 사이의 맑은 주파수는 파열음으로 뒤덮였다.
친구라는 이름의 주파수는 가장 선명하다가도, 납득하기 힘든 난청 지역으로 접어든다. 우정에도 잡음이 들끓는 난청 지역이 있다. 친구의 성공이 소음이 되고, 서로의 안부가 지직거리는 방해 전파를 탈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다. 소음을 없애려면 마음의 다이얼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침묵의 손길이 있어야만 했다.
몇 달 전이었다. 젊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전화였다. 한 달 전쯤에 지역신문에서 그 친구의 이직 소식을 들었다. 취임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안부 겸 약속 일정을 잡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와 친분이 있는 언론사 선배를 중간에 세워 자신의 이직을 증명받고 싶어 하는 노련한 계산이 읽혔다. 출세를 위해서는 평소 친분 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취임식의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고, 한 달이나 지난 후에 겨우 식사 한 번 나누자는 제스처였다.
나는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식으로 약속을 잡았다. 그가 옮겨갔던 직장은, 예전에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자리였다. 하지만 자기가 그 자리를 꼭 가고 싶다고 말해서, 나는 다른 곳을 알아보고 양보했다. 나는 애처로운 부탁이고 해서 마지못해 알겠다며 약속했다. 그리고 내가 취업 준비를 했던 많은 과정을 그와는 특별히 공유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후 취업 결정이 날 때까지, 내게 어떤 말 한마디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이용만을 당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소식을 쉽게 나누지 않게 되었다. 나는 성가신 마음을 품고 그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자동차의 주파수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잡음이 들려왔다. 친구의 성공이 곧 나의 실패처럼 느껴지고, 나의 성과가 친구에게 박탈감을 주는 상황과도 같았다.
그와 만나자마자, 입술 끝에서 맴도는 축하는 떫은 감처럼 깔깔했다.
“나: 그래, 잘됐다. 축하해!”
한동안 어색한 침묵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내가 전공했던 행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조직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효율과 성과라는 냉혹한 전파를 발신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친구라는 수신기를 가진 나에게 그 전파는 그저 자존심을 긁어대는 잡음일 뿐이었다. 친구와의 대화가 내 수신기에 잡힐 때마다, 축하의 얼굴 뒤편에서 지직거리는 시기심의 소음들이 섞여 나왔다. 서로 익숙했던 과거의 시간이 자존심을 건드렸고, 이해라는 이름의 월권이 화음이 아닌 불협화음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가끔 함께 갔던 일식집에서 축하 자리 겸 점심을 먹으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다. 언론사 선배와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그 친구는 선배와의 대화에서 내 삶에 대한 평가를 내놓았다.
“이직 친구: 조금만 고집을 꺾으면, 벌써 좋은 위치에 올라갔을 거에요.”
그 친구의 말은 날카로운 파편처럼 귓가에 와 닿았다. 이직 기간에 연락 한번 없던 놈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생색을 내는 듯한 모습이 꼴사납게 보였다. 자신의 이직 자리에 대한 도취된 감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이, 그 순간에는 어떤 변명도 없이 침묵을 유지해야만 했다. 각자의 주파수가 날을 세워 부딪치는 파열음이 쏟아지던 식사 자리였다. 화해를 위해선 먼저 이 소음이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마음 속의 기대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의 의기양양한 목소리 너머로, 임기제 공직자라는 시한부 성공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년 사내의 고단한 주파수가 들려왔다. 아무리 원했던 자리라도, 임기제는 잔여 임기를 갖고 있고 남아 있는 기회를 계산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자존심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둘 사이의 주파수를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좁은 주파수 대역 안에서 그를 밀어내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삶의 외피를 한 꺼풀 벗겨내자, 그곳엔 나와 똑같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헐떡이던 한 남자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숨소리는 지난 8년, 도서관 구석에서 내가 내뱉던 마른 한숨과도 닮아 있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서울 여의도 근처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때였다. 내게도 이직 기회가 있었고 중요한 저녁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쏟아진 욕설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놓았다. 나는 설명할 수 없었고, 그날의 기회도 조용히 사라졌다. 이 일을 경험한 후, 나는 고향 친구와의 관계에서 일정한 선을 그어놓았다.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었고, 앙금은 가라앉지 않았다. 전혀 인생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부류의 관계라며, 모든 연락을 끊고 살았다. 상대의 마음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한 관계를 끌어낼 수 있음을 두려워했다. 과거의 친구 관계에 대한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불편한 감정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이직한 친구의 축하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평상시에 만나면,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점심을 먹고 차 한 잔을 나누었는데, 오늘만큼은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오후에 약속이 있다는 말을 핑계로 남겨놓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기분 전환을 위해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여전히 카세트 라디오의 주파수는 불협화음의 소음을 쏟아냈다.
불편하게 쏟아지던 소음 속에서, 잠시 어릴 때의 친구 모습이 떠올랐다. 가난했던 나에게, 라면이라도 아낌없이 나누어 먹던 기억의 한 조각이었다. 젊은 청년의 시절, 대관령 산골짜기의 추운 겨울 날씨에도 함께 동네를 휘젓고 다녔던 아련한 추억의 그림자였다. 그때는 내 삶의 모든 것을 나눌 만큼 각별했던 고향 친구였다.
화해는 다이얼을 아주 조금씩, 숨을 참으며 돌리는 일이었다. 상대의 분노 속에 숨겨진 슬픔의 주파수를 찾아내기까지, 나는 내 안의 자존심이라는 소음을 먼저 잠재워야 했다. 오랜 친구일수록 그 친구의 주파수가 예전 같지는 않았다. 상대를 향해 내 마음의 주파수를 1도씩 바꾸어 갔어야 했는데, 20대 후반의 주파수로 50대 친구를 수신하려고 했으니 매번 지직거리는 소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제야 공감이란 낮은 저음의 주파수가 공명을 울리는 공감대의 맑은 소리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주파수가 맞닿은 순간, 파열음은 멈추고 낮은 저음의 울림이 시작된다. 우리는 생활공간이 다른 시대를 건너면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가끔이라도 서로 떨림을 동시에 느끼는 같은 궤도 위에 서 있어야만 했다. 화해의 공명이란 상대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다이얼을 돌려가며 친구의 떨림 곁으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공유된 과거의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갑작스런 내 전화를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핸드폰 너머에서는 여전히 반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거친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나: 오늘 저녁에 시간 돼?”
“고향 친구: 왜, 갑자기...무슨 일 있어”
“나: 아니, 명태찜에 소주나 한 잔 하게”
갈등과 파열이라는 거친 소음 속에서 화해라는 미세한 신호를 잡아내는 과정이 공명이었다. 공감은 공명 속에서 완성되는 화해의 언어였다. 공감은 상대의 소리를 완벽하게 수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안테나가 흔들리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둘이 만나서 다시 다이얼을 맞추는 동안, 명태찜의 주파수는 더 이상 지직거리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긴 활주로에서, 이제야 나는 타인과 공명하는 법을 배우며 맑은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기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