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18. 친구 관계의 손익분기점

I후불제 인생I

by 작가 기안장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본성이 내향적이라 사람을 잘 사귀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나누면 그저 좋은 관계였다. 하지만 나는 친구를 장부에 올려본 적이 있었다. 결국 계산서를 꺼내 들었다. 마음 속의 엑셀 파일을 열어놓고 수입과 지출 관계를 정리했다.

관계를 위한 노력은 투자로, 인내는 적립으로, 상처는 언젠가 돌려받을 이자로 기록했다. 내 성향상 인간관계의 소모적인 일은 귀찮을 뿐이었다. 조금 손해를 보면 참고, 억울하면 삼켜도 될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더니, 주변에는 막역한 친구보다 그저 좋은 관계 정도로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 사이의 어긋난 감정은 불필요한 비용처럼, 욕심은 위험한 자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관계를 가볍게 유지했다. 몇 번 참석했던 친구 모임은 늘 짙은 술기운이 머물러 있었고, 감정에 도취된 모습이 불편했다. 가볍게 식사를 나누고 즐겁게 대화하고 싶은데, 모임 내내 감정에 취해 흥청망청 써버리는 것이 싫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계산이 시작될까 봐, 사람을 깊이 사귀는 것은 별로 달갑지를 않았다.


하지만 몇 안 되는 오랜 인간관계가 무너지기도 했다. 그렇게 수십 년에 걸쳐 힘들게 쌓아 올린 관계였는데, 그에게 나는 쉽게 대체 가능한 사람처럼 보였다. 젊어서부터 줄곧 그가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며, 회의적인 생각이 몰려오기도 했다. 자기 출세만을 위해, 나는 보조기구밖에 안 되는 것만 같았다.

섭섭함이 짙게 몰려오던 날, 처음으로 그와의 관계에서 계산서를 들여다보았다. 기억 속의 숫자는 나 중심으로 적혀 있었다. 내가 베풀고 나누었던 것은 일일이 적어 놓았는데, 그 친구가 내게 베푼 것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정년퇴임을 위해 좋은 곳으로 이직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한 번은 왔다 가야지.”

“그래, 생각 좀 해보고”


그가 옮겨간 자리는, 내가 오래전부터 바라보던 곳이었다. 지원서를 쓰다 지운 적도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그가 지원하고 싶다고 해서, 나는 다른 곳을 지원해야만 했다. 속으로 크게 섭섭했다.

그래도 나를 친구라고 믿었다면, 취업 준비 내용은 함께 공유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자기 출세를 위한 도구적인 관계로 나를 이용만 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양보를 선택했지만, 그 친구 또한 내게 애정이 있었다면 양보의 끈을 붙잡을 것만 같았다. 둘 사이의 교분은 헐거워졌고, 관계의 해석은 어긋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친구 관계를 유지했지만, 막역한 친구를 위한 나의 헌신은 한 번도 제대로 나누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부끄러웠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받을 것보다 줄 것들이 쌓여 있었다. 인생은 계산되지 않는 항목들이 있고, 오히려 그것들이 삶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 관계에서 이익을 묻지 않는다. 대신, 떠났을 때, 그 사람이 크게 미련이 남는가를 묻는다.

여전히 친구 관계는 손해 보는 날도 있고 억울한 날도 있다. 하지만 좋은 관계의 유지는 계산보다는 용기 있는 선택이란 걸 안다. 친구는 계산이 끝나도 마음에 남는 사람이어야 한다. 살다 보면, 서로 치명적인 형태로 어긋날 때가 있다. 결국 손익분기점은 관계가 아니라, 내 마음의 방향이었다.




※ 작가 소개: 기안장_브런치 작가, 2025년 항공문학상 우수상, 2024년 원주신문 올해의 오피니언상, 밀리의서재 올해의 밀리로드 Top 50, 문장21 시부문 신인문학상, 문학광장 수필부문 신인작가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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