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후불제 인생I
사람마다 아픔을 견디는 방식이 다르다. 기쁨이 숨을 내쉬는 일이라면, 아픔은 숨을 오래 들이마시는 일에 가깝다. 아픈 사람의 호흡은 일정하지 않다. 통증이 올 때마다 시간이 흔들린다.
병동에서는 숨소리만으로도 통증의 농도를 짐작한다. 나는 발목 인대접합수술을 하고 열흘 남짓 정형외과 병동에 머물렀다. 내가 머문 6층 병동은 간호·간병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으로, 허리와 관절 수술 환자들이 주로 입원해 있었다. 보호자가 없는 병동이었다. 대신, 간호사와 간병인이 수술 환자들의 하루를 맡고 있었다. 남녀 환자들은 병실만 구분될 뿐, 복도와 재활시설, 휴게실 등에서 쉽게 마주쳤다. 그 덕분에 환자들은 한 가족 같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하지만 병원 곳곳에서 통증의 숨결은 낮게 흘렀다. 병실 복도에서는 늘 누군가의 보조기구가 바닥을 긁고 지나갔고, 전동침대의 미세한 움직임은 밤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환자들은 대부분 노령층이었고, 관절 수술을 한 사람들도 오랜 세월 자기 몸을 써서 생계를 유지한 사람들이었다. 내과 병동의 묵직하고 긴 저음의 통증과는 달리, 이곳 외과 병동에는 짧은 단발성의 신음소리가 요동을 쳤다.
정형외과 병동은 늘 시끄러웠다. 전동침대가 움직일 때는 낮은 기계음이 났고, 링거가 다 떨어졌을 때는 경고음이 울렸다. 누군가는 화장실 문을 붙잡고 오래 서 있었고, 누군가는 신발을 신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 소리들은 병동의 시간을 대신 흘러가게 했다. 이곳에서는 시계보다 통증이 하루의 리듬을 정했다.
새벽 다섯 시쯤이면 병동은 잠에서 반쯤 깨어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새벽빛은 아직 어둠을 버리지 못한 채 희미하게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간호사는 작은 손전등처럼 낮춘 목소리로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혈압계가 팔을 조일 때마다, 사람들은 잠결에도 몸을 움찔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혈압과 체온으로 시작되며, 생명 활동은 시계가 아니라 숫자로 찍혀 나왔다.
나는 병실에서 노년의 나이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이씨와 엄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모두 칠순 가까이 되었지만, 수술 후 아픔을 대하는 태도는 극명하게 달랐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는데도, 여전히 생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매일 아침 10시쯤이면, 유독 눈에 띄는 할매가 있었다. 허리 수술을 한 작고 땅딸막한 할매는 병실 앞을 지나갔다. 허리를 수술한 뒤, 폴대라는 의료용 보조기구를 의지해서 간신히 걷던 분이었다. 먼저 입원해 있던 이씨는 그녀를 ‘정선할매’라고 불렀다. 벌써 두 사람은 안면이 있었는지, 가끔 병실 앞에서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다. 정선할매가 대화를 마치고 복도를 빠져나갈 때쯤이면, 이씨는 은근슬쩍 나에게 귀띔하듯이 말했다.
“저 할매, 예전에 과수원을 크게 하던 분이야. 돈도 좀 있고.”
무척 부러운 눈치였다. 시골 할매라도, 노년의 나이에 삶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었다. 사실 병실 안에는 직업도, 재산도 모두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수술 후의 회복 속도와 통증의 강도였다.
이씨는 얼굴이 뽀얗고 호리호리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아픔을 외부로 쏟아내지 않았다. 신음소리 대신 침묵을 유지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수술 부위의 고통을 마음속으로 삼켜버렸다. 아침마다 병동을 걸으며 자신의 회복 속도를 점검하기도 했다. 많이 걸을 때는 하루 5,000보 이상이었다. 어떤 때 이씨를 보면, 아픔을 이겨낸 사람보다 아픔을 숨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걸음에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아도 건강을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였다. 한 발 한 발 다리 근육을 키우며, 통증이 덜 오는 각도를 찾아내는 것은 연륜의 지혜였다. 아침을 먹고 운동을 끝낸 이씨와 대화를 나눌 때였다. 그는 병원 밥을 먹고 나면 홀짝거리며 믹스커피를 마셨으며, 호기롭던 젊은 시절의 영웅담을 꺼내놓았다.
이씨는 젊은 시절, 번쩍이는 간판 불빛 아래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까지 음악이 꺼지지 않는 골목에서, 사람들의 웃음과 술 냄새 속을 떠돌며 살았다고 했다. 그때의 그는 허리가 아니라,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지금의 느린 걸음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살아온 한 남자의 시간을 보았다.
반면 엄씨는 평생 건축현장을 떠돌았다. 몸집은 다부지게 보였어도,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허리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사람이었다. 얼굴에는 오랜 피로와 굽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했다. 전국 도시를 떠돌며, 다양한 건축물을 공사했다. 직업성 질병이라는 말이 그렇게 참담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고 했다.
엄씨는 허리를 처음 다친 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비가 오던 오후, 미끄러운 철근 위에서 중심을 잃고 쓰려졌다고 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일어났지만, 시간이 지나자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 그 사건 이후, 그의 인생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병실 침대 위에서 다치기 전의 삶과 다친 후의 삶을 매일 되짚으며 살고 있었다.
그는 몸을 뒤척일 때마다 ‘아…’ 하는 신음이 병실 벽에 부딪혀서 돌아왔다. 외부로 신음을 쏟아내며, 통증의 순간을 이겨냈다. 수술 부위를 간호사들이 치료하려고 몸을 뒤척이면 “아~아”를 연발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가족들이 면회할 때도, 혼자 잠을 자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날 때도 통증을 호소했다. 그는 통증을 안으로 삼키지 못하고, 늘 밖으로 흘려보냈다.
하루는 엄씨와 둘이 병실에 남아 있을 때였다. 바나나 우유를 내밀며,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듯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산재환자이고 장애진단을 받아서, 병실료는 물론이고 상당한 금액의 보상금을 받는다며 자랑했다. 업무상 질병의 보상 대상자였다.
그런데 엄씨는 엄청난 애연가였다. 담당 주치의가 회진을 돌며 아무리 담배를 끊으라고 해도, 식사 후에는 어김없이 옥상 정원으로 향했다. 복도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니코틴이 아니라, 잠시라도 허리 수술 환자에서 벗어나 정상인이 되는 순간처럼 보였다.
이씨의 통증은 늘 말이 없었고, 엄씨의 통증은 먼저 말을 걸었다. 말하지 않는 고통과 말이 많은 고통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둘 다 같은 방향으로 삶을 밀어내고 있었다.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발목 수술 후 아픔을 견뎌야만 했다. 물리치료실 문을 처음 열던 날, 나는 문턱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안쪽에는 고무 매트 위에서 끌리는 불편한 발소리가 들렸고, 이를 악물고 기계에 의지한 숨소리가 섞여 나왔다. 물리치료사는 내 발목을 조심스럽게 잡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발목 관절을 흔들어 깨웠다. 잠시 통증은 번개처럼 올라왔지만, 나는 신음소리를 삼키며 천장을 바라봤다.
한동안 물리치료실을 오고 가며 고통의 시간을 털어내야만 했다. 마음은 너무 예민해져 있었고, 수술 후유증으로 잠식당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병원에 입원한 동안, 어떤 아픔은 과거의 기억에서 왔고, 어떤 아픔은 현실 속의 불안감에서 왔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통증이 겹쳐지면, 마음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내일의 건강한 삶이 쉬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밤들이 이어졌다.
젊었을 때, 나는 통증이 없어도 삶이 아팠다. 밤과 낮의 경계가 흐릿했고, 몸이 보내는 건강상의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술자리는 끊이지 않았고, 피로는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두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심혈관계의 이상징후 현상이 일어났다. 고혈압과 고지혈, 당뇨와 같이 예고 없는 통증과 무력감이 찾아왔다. 건강 상태는 흥청망청 써버린 삶이 나중에 치르는 후불제의 대가였다.
하지만 아파봐야, 잠시라도 멈추어 서서 눈을 뜬다. 아픔 속에는 절망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절망을 딛고 일어난 삶의 의지가 담겨 있다.
정형외과 병동에 입원했던 기간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때면, 따뜻한 온기가 병실을 채웠다. 비록 고통의 시간이 안쓰럽더라도, 사람들은 지나온 시간만큼 달라져 있었다.
병실 벽의 시계는 멀쩡히 가고 있었지만, 각자의 통증만큼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환자들의 통증에는 삶의 시간이 배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비틀려 있는 환자도 있고, 이제 막 고통을 느끼는 듯한 환자도 있었다. 나는 환자들의 작은 습관과 태도 속에서 그들의 누적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픔이 언젠가는 수그러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삶을 버텨냈다.
매시간 간호사들이 들고 다니는 수액과 진통제, 약 봉투의 바스락거림만으로도 이 병동이 얼마나 많은 인내를 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병동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은 간호사와 간병인들이었다. 그들은 아픔 앞에서 늘 중립적이었다. 환자의 신음에 놀라지 말아야 했고, 눈앞에서 울어도 대신 울어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타인의 고통을 만지고,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병실을 나서는 것이 신기했다. 아픔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뎌지는 일이 아니라, 더 조심스러워지는 일이었다.
어느 날, 이른 저녁을 먹고 병실에서 노을이 지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씨는 갑자기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자신의 삶에 대한 감사를 쏟아냈다.
“사람이 아프면, 별거 아닌 것도 참 고맙게 보이지 않아?”
그의 말에 나는 즉각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그랬다.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 늘 바쁘다는 이유로, 그저 생각 없이 지나쳤을 일몰의 시간이었다. 병동 안에서 생활하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세상과는 단절된 삶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현재의 고통을 추스리고 있었다.
그들이 살아온 과거의 삶에 대한 대가를 고통이 아닌 감사로 바꾸며, 제값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오직 이 순간만큼은 감사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며, 아픔을 견디고 있었다.
엄씨도 점차 몸을 회복하던 어느 날, 뜬금없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
“허리만 좀 펴지면, 진짜 아무것도 바랄 게 없을 것 같아.”
그의 말 속에는 오랜 체념과 서글픈 바람이 들어 있었다. 병실의 불빛 아래에서 본 그의 얼굴은, 나이가 아닌 인생의 무게로 깊이 패여 있었다. 병실에서의 시간은 사람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육체의 고통은 타인의 삶으로 향하는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다. 이전에는 성가시게 흘려보냈을 환자들의 침묵과 신음소리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내가 아파본 만큼 위로는 말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배웠다.
며칠 후, 이씨가 먼저 퇴원하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그의 빈 침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얼굴을 마주하던 동료가 사라진다는 것은 묘하게도 깊은 허전함을 남겼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짧은 시간에 깊은 정을 나누는 힘이 있었다. 아픔이 만든 관계는 빠르게 깊어지고 떠나갔다. 이씨가 아침을 먹고 홀짝거리며 마시던 믹스커피 소리가 텅 빈 병실을 떠돌며, 그의 체취를 남겨 놓았다.
이별의 순간은 단조로 왔지만, 함께 고통을 나누었던 여운은 무척이나 길었다. 엄씨도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점점 커튼 너머의 밝은 세계로 향할 준비를 했다. 고통은 사람을 상하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기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 또한 그 힘을 빌려 조금씩 회복했고, 병동을 떠나기 전날 밤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의 고통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고통을 견디며 얻은 마음의 깊이와 타인을 향한 시선은 오래, 아주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퇴원하는 날, 나는 병원 신발을 벗고 운동화를 신으며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신발 끈을 묶는 단순한 동작이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문을 나서기 전, 나는 병실을 한 번 더 둘러봤다. 비어 있는 침대, 접힌 커튼, 몸에 달고 있던 링거대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병동의 소음이 하나씩 차단되었다.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가는 일이 아니라, 고통을 안고도 다시 걷는 법을 선택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발목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웠지만, 마음속 무게는 훨씬 무거웠다. 병동을 나선 뒤에도 한동안 나는 소리에 민감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 신호등이 바뀌는 짧은 알림음,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발소리까지도 예전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늘 빠르게만 살았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시한 채, 일정과 약속과 책임을 핑계 삼아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병동에서의 시간은 그런 나를 멈추어 세웠다. 멈춘 자리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의 신음 앞에서 말을 늦추었다. 남의 고통 앞에서 말을 아꼈고, 섣부른 위로를 삼켰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통증을 안고 삶을 버틴다. 어떤 이는 침묵으로, 어떤 이는 신음으로, 또 어떤 이는 가냘픈 웃음으로 견딘다.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가는 일이 아니라, 고통을 안고도 다시 걷는 법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병동에서 배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시계보다 먼저 울리는 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발목이 불편했지만, 이전보다 더 단순하게, 더 진실하게 삶의 고통을 받아들인다. 누구의 고통이든 안쓰럽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아픔만은, 헛되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작가 소개: 기안장_브런치 작가, 2025년 항공문학상 우수상, 2024년 원주신문 올해의 오피니언상, 밀리의서재 올해의 밀리로드 Top 50, 문장21 시부문 신인문학상, 문학광장 수필부문 신인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