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16. 후회를 멈추는 납득

I후불제 인생I

by 작가 기안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 어느 날 절교했다. 함께 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달갑지 않았다. 형제 중의 누군가 요양원에 가 계신 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전화한 것 같은데, 자기 부모를 생각하는 태도가 사람답지 않았다. 짜증 난 말투를 쏟아내는 것이, 자기감정을 다룰 줄 모르는 미숙아 같았다.


“평생, 나에게는 짐만 됐잖아요. 나도 할만큼 했잖아요. 이제는 나도 모르니까. 두 번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이 무너졌다. 나는 쉽게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훗날 자기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인간답지 않는 놈이란 생각이었다. 나는 엄마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한동안 마음 속의 공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람은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끝난 것 같은 장면인데도 자꾸 되감기 버튼을 누르는 게 후회다.


부모와의 관계는 더욱 심란하다. 평생 내 곁에 계실 것만 같았던 엄마, 도시 곳곳에 새겨놓은 엄마와의 추억은 아직도 내 삶을 붙잡고 있다. 하지만 나 또한 엄마와 다툰 적이 있고 첨예하게 갈등을 쏟아낸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났더니,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한 번만 더 말을 삼켰더라면, 그 짧은 시간 동안의 후회가 지워지지 않는 그늘을 남겨 놓았다.

지금의 선택은 바꿀 수 있어도, 과거의 후회는 바꿀 수 없다. 지금의 내가 묻는다.


“그때 왜 그랬어?”


어쩔 수가 없었다고 대답하는 것보다 “그때 최선을 다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만 가득 찬다. 즉흥적이었던 마음과 태도를 후회한다.

후회는 이미 끝난 장면을 반복 재생한다. 납득은 그 장면을 멈추고 앞으로 걷게 만든다. 매 순간 인생이 완벽하지는 않다. 나 또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다. 젊어서 건강만을 믿고 흥청망청 몸을 돌보지 않은 일들이었다.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아 병원 갔는데, 병원 진단서에는 심각할 만큼 고혈압과 당뇨 수치가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처음엔 엄청난 자책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조금씩 운동을 시작했고 술과 담배를 끊었다. 더 이상은 미래의 내 삶을 놓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매일 “그때 나는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를 되물었다.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었더니, 현재의 삶을 다루는 결도 마음도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현재의 나를 납득할 수 있었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건강한 생활방식을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후회가 칼끝이라면, 납득은 그 상처를 싸매는 붕대와도 같다. 납득은 변명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 후회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납득은 현재의 시간을 통과한다. 우리 모두는 서툰 시절을 통과해서 지금까지 왔다. 어쩌면 과거의 시간들은 반성과 자책보다는, 현 시점에서 이해와 승인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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