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된 오늘

I후불제 인생I

by 작가 기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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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산한다. 주로 카드값을 확인하고, 세금 고지서를 들여다보며 한 해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한다. 하지만 세금을 돌려받기 위한 연말정산서만 계산했지, 한 해 동안의 시간 사용은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돈을 쓰면 흔적이 남지만, 시간은 기억 속에 묻혀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대로 사용되는 것도 있었지만 그냥 소비하는 형태도 꽤 많았다.


나는 흔적을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 일 년 동안에도 다양한 사건들을 메모용 수첩에 기록했다. 그 내용은 체계적이지 않았고 그날그날 눈에 띄거나 마음에 와 닿는 것을 기록했다. 책 읽는 시간에는 감동이 갔던 내용을, 대화할 때는 새로운 정보를, 길을 걸어갈 때는 새로운 생각을 적어놓았다. 책장 한 칸에는, 그동안 내가 써놓았던 메모용 수첩들이 빼곡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수첩들을 보며, 시간은 기록하지 않아도 어딘가에 쓰이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빨간 메모용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메모해 놓은 기록들 사이에 ‘조만간에’, ‘다음에’, ‘시간이 되면’이라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마치 유예된 채무처럼, 페이지 사이에 미사용 시간이 끼어 있었다.

현실이 조금 복잡하다는 이유로 미루어 둔 일들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기억해보면, 그 말들은 지켜낸 것보다 흘려보낸 것이 더 많았다. 그리고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후회였다. 미뤄둔 일들은 꼭 연체 이자가 붙은 것만 같았다. 마음속에서 후회는 복리로 불어났다.

이런 생각도 밀려왔다. 나 혼자 계획했던 것이니, 그 일은 하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러나 미뤄둔 시간 사용은 생각보다 허탈했다. 그때 시작했다면 지금은 다른 얼굴로 서 있었을 것이다. 미사용 계획은 후회의 시간 영수증이기도 했다. 시간은 흘리는 것이 아니라 세워두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바람에 맡겨두었다.


어림셈법이지만, 하루 중 허투루 사용된 시간을 따져보았다.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아무리 시간을 아껴써도 최소한 1시간 이상은 흩어졌다. 하루가 끝나가던 늦은 밤, 휴대폰 화면을 넘기다 시계를 보니 12시 47분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하루가 숫자만 째깍거렸다.

시간은 공평하게 배부되지만, 낭비는 각자의 몫이다. 돈은 꼼꼼히 계산하면서, 시간은 대충 넘겼다. 유예해 둔 시간은 결국 계산서를 들고 돌아온다. 그 청구서에는 ‘후회’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나는 시간을 아낀다고 믿었지만, 사실 무감각하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내 인생은 돈보다 시간이 먼저 마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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