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띄우는 냉각의 기술

스핀 플립(spin flip)-21cm 수소선(고요한 배경)

by 양종이

중력우물 속 ‘1s’ 바닥에서의 스핀'뒤집기'

비어 있는 듯하지만 가득 찬 우주,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가 없던 '암흑시대(Dark Age)'는 고요한 정체기였다. 이 침묵 속에서 이미 우주에 존재하던 보이지 않는 거인, 암흑물질은 오직 중력만으로 시공간에 깊은 '중력 우물(Potential Well)'을 팠다.

이 우물은 별이 탄생할 거푸집이었다. 암흑물질이 설계도를 그리면, 흩어져 있던 중성 수소 가스들이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가스가 모일수록 밀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내부 온도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이 뜨거운 열기를 밖으로 빼내지 못하면 가스 구름은 다시 팽창해 흩어질 위기에 처했다. 별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식혀야만 했다. 그리고 초기 우주의 작은 헤일로에서 이 냉각의 문을 연 것은, 분자수소(H₂)였다.

우주의 새벽을 깨운 이 결정적 사건은 전자가 화려한 궤도(p, d, f)로 뛰어오르는 '도약'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원자라는 개별적인 경계를 넘어, 두 핵이 맞잡은 결합 안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떨림'과 '회전'에서 시작되었다.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며 빛을 내뿜는 방식은 너무 뜨거운 환경이 필요했지만, 분자수소는 아주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도 스스로 몸을 뒤틀고 떨며 미세한 적외선을 방출했다. 이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움직임들이 쌓여 거대한 가스 구름의 열기를 식혔고, 비로소 중력은 온도를 이기고 물질을 한 점으로 뭉쳐 첫 번째 별의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이러한 분자의 움직임보다 더 깊은 곳, 가장 낮은 바닥 상태인 1s 오비탈 안에서도 조용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전자가 자신의 스핀 방향을 슬쩍 뒤집는 '스핀 플립(Spin-flip)'을 통해 21cm 수소선을 내보내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가장 낮은 바닥 상태 안에서 꿈틀대는 아주 미세한 변화다.

재결합 이후 암흑시대가 열리자, 중성 수소의 21cm 전이는 어둠 속에 깔려서 우주의 상태를 읽게 해 주는 낮고 깊은 속삭임이었다. 이후 중력 우물, 즉 암흑물질 헤일로가 형성되면서 분자수소(H₂)가 만들어지고, 진동과 회전을 통해 에너지(열)를 밖으로 내보내(광자 방출) 가스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중성 수소는 1s라는 기저상태 내부에서조차 두 갈래의 길로 나뉜다. 양성자와 전자의 스핀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평행(Parallel) 상태'는 미세하게나마 에너지가 높다. 반면, 스스로의 방향을 뒤집어 서로 마주 보는 '반평행(Anti-parallel) 상태'는 중성 수소의 1s 초미세 구조 안에서 더 낮고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물리학에서 '금지된 전이'라 불릴 만큼, 양성자와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던 전자 스핀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며 일어나는 '스핀 플립(Spin-flip)'의 확률은 1,100만 년에 단 한 번꼴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를 관측할 수 있는 이유는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의 양이 워낙 방대하여, 통계적으로 이 '기적'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침반 바늘을 억지로 남극으로 돌리고 있다가 힘을 빼는 순간 터져 나오는 진동처럼, 이 ‘뒤집기’는 보이지 않는 정렬의 차이를 21cm 파장의 빛으로 드러낸다. 첫 번째 별은 주로 분자수소 냉각을 발판 삼아 점화되었지만, 21cm 선은 그 냉각의 구조를 우리에게 읽게 해 주었다. 스스로를 식혀 빛을 내는 법을 아는 인텔리전스(Intelligent)한 우주! 그 원리는 암흑과도 같은 두개골 상자에 갇힌 뇌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보통 전자가 궤도를 옮기는 '도약'은 주양자수가 변하며 1s에서 2p로 올라가는 식이다. 이는 에너지가 외부에서 들어오면 비교적 쉽게 일어난다. 반면, 21cm 수소선을 만드는 스핀 플립은 주양자수가 변하지 않는 '초미세 구조(Hyperfine structure)'의 변화다. 개별 원자의 입장에서 뒤집기는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다. 이때 내뿜는 에너지는 아주 미미했지만, 바로 그 '낮음' 덕분에 열기는 가스 구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우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두개골 상자 안의 냉각장치 : 의식의 깔때기(필터링)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물리학의 기작이 뇌 안에서 똑같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닌, 우주의 작동 방식을 빌려 인간의 내면을 사유해 보려는 비유다. 암흑과도 같은 두개골 상자에 갇힌 우리의 전전두엽과 신피질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냉각과 필터링의 장치처럼 느껴진다. 현대 인지과학의 한 유력한 관점에서, 신피질은 외부 세계의 모델을 내부에 구축하고 끊임없이 수정하는 '예측 기계'다. 2mm 두께의 6개 층(Layer)으로 이루어진 이 정교한 깔때기는 시상(Thalamus)을 거쳐 들어온 외부의 날것의 데이터와, 뇌 상층부에서 내려보낸 예측 데이터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의식의 시뮬레이션'을 가동한다.

제4층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외부 자극(input)은 중력 우물 속으로 유입되는 가스와 같다. 이때 내부의 예측과 실제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으면 뇌는 뜨거운 '예측 오차(Error)'를 내뿜는다. 엄밀히 말해 이 오차는 내부 모델의 기대와 실제 입력 사이의 차이이지만, 삶의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종종 본능과 현실 사이의 불협화음처럼 느껴진다. 시뮬레이션 장이 넓고 입체적일수록 '응축의 압력'은 더 강력해지며 이 열기를 뜨겁게 내뿜는다. 전전두엽은 바로 이 무질서한 열기를 한 점으로 모으기 시작하는 '의식의 연산기'처럼 작동한다.

여기서 인간의 위대함은 즉각적인 행동(출력)만이 아니라 거절(필터링)에도 있다. 전전두엽은 안팎의 신호 차이를 끊임없이 계산하며, 수많은 본능적 반응을 그대로 출력하지 않도록 붙들어 둔다. 마치 바둑 고수가 패배로 가는 수천 가지의 수를 읽어내며 손을 멈추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하지 않을 자유(Free Won't)'라는 냉각의 기술이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반응하는 것은 엔트로피를 따라 흩어지는 가스 구름과 같지만, 예측 오차를 견디며 충동을 잠재우고 모델을 수정하는 멈춤은 비유적으로 말해 우주의 열기를 식히는 어떤 낮은 신호와도 같다. 피질의 제5·6층을 통해 행동으로 출력(output)되기 전, 찰나의 순간에 본능의 스핀을 뒤집어 조율할 때(stop), 의식의 밀도는 단단해지며 충동은 차갑게 식어 정교한 '가치 판단'이라는 고밀도의 의식의 별로 응축된다. 이러한 전전두엽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거울을 들여다보듯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은 내면의 오차를 수정하며 '자유의지'라는 별을 띄우는 냉각의 기술이다. 이렇게 안팎의 신호를 조율하며 다듬어진 자아는 외부의 충격에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궤적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을 동시에 갖게 된다.


주체적 별의 탄생 : 바닥을 뒤집기 위해 필요한 드넓은 시야

모래 구덩이를 깊게 파 내려가기 위해서 먼저 그 주변을 넓게 깎아내야만 한다. 바로 우리가 지적 스펙트럼(p, d, f 오비탈)을 넓혀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p, d, f 오비탈은 사고의 폭과 방향성을 상징한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질수록 더 깊은 심연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는지, 어떤 가능성이 열리는지 다양한 각도로 조망하며 입체적인 시뮬레이션을 거칠 때, 내가 서 있는 '바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인식의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본 존재만이, 자신이 기저 상태(1s)라는 좁은 계에 갇혀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 지평선 너머를 보지 못하면 바닥은 세상의 전부지만, 넓은 궤적을 그려낼 수 있을 때 바닥은 뒤집어야 할 지점이 된다. 즉, 외부로 넓게 뻗어본 경험과 생각의 힘이 다시 내부의 한 ‘점’으로 응축될 때, 그 좁은 바닥 안에서 스스로의 회전 방향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쥐고 싶은 본능을 0.1초 멈춰 세우는 일,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입을 다무는 일. 이 작은 일상의 브레이크들은 바로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뒤집기와도 같다. 물리학의 21cm 수소선과 인간의 멈춤은 같은 기작은 아니지만, 과열된 상태를 낮추고 다음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시야가 좁으면 외길뿐인 절벽으로 보이지만, 넓은 시야를 가지면 여러 가능성의 경로를 찾아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을 갖추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놀이를 통해 변화해 나갈 때 삶은 입체적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암흑 같은 심연으로부터 별을 띄우는 이야기는 결코 먼 우주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온 우주로 뻗어 나갔던 드넓은 스펙트럼의 시선이 다시금 가장 어두운 내면의 한 점으로 돌아와, 바닥을 뒤집어 낼 때 우리 안의 별 또한 점화된다. 수조 개의 별을 탄생시킨 우주의 정교한 질서가 단 한 사람의 고요한 성찰 속에서도 하나의 형상으로 투영된다는 사실은, 우주만큼이나 인간 또한 한없이 경이로운 존재임을 보여 준다.


Free Won't: 하지 않을 자유라는 가장 뜨거운 동력

본질적인 자아의 발견은 ‘도약’과 ‘성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주의 새벽을 밝힌 신호 가운데 하나는 가장 낮은 1s(기저 상태)의 좁은 방 안에서, 전자가 제 스스로의 회전 방향을 고요히 뒤집었을 때 터져 나왔다. 그 신호가 첫 별을 직접 태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둠 속 우주의 상태를 드러내는 데에는 충분히 깊고도 집요했다. 이처럼 뒤집기는 단순한 도약을 넘어선 ‘존재의 재구성’이자 능동적인 내적 전환이다.

도약은 주어진 에너지가 허락하는 대로 뛰어오르는 것이라면, 뒤집기는 나를 누르는 압도적인 에너지를 견디며 나를 새롭게 재정의하는 저항이다. 표면 아래 숨겨진 많은 무의식의 좀비 시스템이 로딩될 때, 이를 필터링하고 응축하여 '의지'라는 진폭으로 변환하는 것. 내면의 욕망과 외부의 요구를 연산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하지 않을 자유'를 선언할 수 있는 자만이 가장 투명한 본질 자아를 마주할 수 있다. 가장 위대한 빛은 가장 낮은 곳에서 일어나는, 고요하지만 정교한 미세 뒤집힘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치 나침반 바늘을 억지로 남극으로 붙들고 있다가 힘을 빼는 순간, 제자리로 돌아오며 터져 나오는 진동처럼.

이제 중성 수소의 1s 초미세 구조 안에서 더 낮고 안정적인 상태, 스스로의 방향을 뒤집어 서로 마주 보는 '반평행(Anti-parallel) 상태'를 떠올려 본다. 물론 이것이 곧 인간 자아의 물리학적 본질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가장 낮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미세한 재정렬이, 때로는 가장 깊은 변화를 낳는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 않을 자유를 켜켜이 쌓아 응축할 때, 환경과 유전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이고 단단한 자유의지라는 별이 탄생한다. 자유의지는 흔히 무언가를 하는 것(Do)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적어도 자기 성찰의 차원에서 보면, 본능의 가속페달을 밟지 않는 '멈춤(Stop)'이야말로 그 별을 빛나게 하는 진정한 동력이다.



엔딩크레딧. Curt Jaimungal과의 인터뷰 중 로저 펜로즈가 학생들에게 건넨 마지막 당부

“저는 당신을 흥분시키는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즉,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이나 연구 전반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는, 당신이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좁은 영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또한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깔때기'와 비슷합니다. 당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향해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 내려가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니 항상 세상의 나머지 부분에 눈을 감지 마십시오. 그러면 다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연결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I say do what excites you. I mean, you have to concentrate. In doing physics or research in general, you have to have your area which you concentrate on, but you've also got to have a broader area. So it's a bit like a funnel like this. You go way down deep in the area you're interested in, but you should keep an interest in what's going on all the time as well. So don't shut your eyes to what the rest of the world. Then you may see a connection which nobody else has spotted. Thank you, sir. It's been a pleasure.)

Linda Cleary가 제작한 작품. 게임 캐릭터 Q*Bert와 M.C. Escher 스타일을 결합한 헌정 작품

팩트체크

우리가 최초의 별들이 언제, 어떻게 냉각되어 태어났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이 21cm 수소선의 변화를 관측하는 것입니다. 별이 빛을 내기 시작하면 주변의 수소를 이온화시켜 21cm 신호를 지워버립니다.


<참고자료>

이강환 저 <빅뱅의 메아리> 47p

Linda Cleary가 제작한 작품 Day 327- M.C. Escher- Absurdly Impossible – Day of the Artist

Curt Jaimungal과 펜로즈 인터뷰 내용 https://youtu.be/sGm505TFMbU?si=l7-my2tUdhauRY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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