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2-하
아들은 2010년 여름쯤에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했다. 아내의 권유로 복학하기 전 6개월간은 서울시교육청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를 했다. 사회경험을 쌓은 셈이다. 2011년에 대학에 복학해서 학업에 열중하게 되었다. 이제는 복학생이 된 것이다. 아빠는 농협중앙회 예보사무국 팀장에서 안성교육원 부원장으로 승진 발령받았다. 주말에만 집에 오는 주말부부 신세가 되었다. 6년 만에 다시 친정에 복귀하게 된 셈이었다. 2011년에는 집이 서초동에서 신대방동 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우리 집이 생긴 것이었다. 2007년에 청약에 당첨되어 갖게 된 서울의 자가인 셈이었다. 스펙을 쌓기 위해 각종 금융 관련 자격증을 땄다. 2011년 3월에 펀드투자 상담사, 4월에는 파생상품투자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그럴 때마다 상금 30만 원씩을 주었다. 동기부여 차원이었다. 2012년에 아들은 보험계리사라는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4월에 1차 시험을 보았고 합격했다. 2차 시험은 주관식이었다. 8월 말 경에 시험이 있었다. 1차 시험에 합격하면 2차 시험을 두 번 볼 수 있었다. 방학기간에는 학교의 기숙사를 신청해서 그곳에서 기식했고 공부는 도서관에서 하는 식으로 시험준비에 열성을 쏟았다. 학교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2013년 초에는 아들이 학교에 휴학을 신청하고 학교 앞의 선배집에 의탁해서 그곳에서 기식을 하면서 2차를 준비했다. 1차 합격생들을 모아 그룹스터디를 하는 식으로 시험을 여러 번 모의시험을 치렀고 서로 간의 답안을 공유하면서 토의해서 실력을 쌓아나가는 식이었다. 8월에 2차 시험이 있었다. 2차 시험은 A3용지에 답안을 써내야 하는 것인데 두 시간 동안 답안을 작성하는 식이고 거의 피를 말리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계리사라는 것이 경제적인 요소 보험법 등과 맞물려 통계학적인 요소도 있어 만만치 않은 시험으로 정평이 나 있는 부분이었다. 용케도 아들은 단번에 합격의 영광을 안을 수 있어 행운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엄마는 서울시 교육청의 장학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아빠는 농협안성교육원의 부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모가 한 번씩 휴일에 아들에게 밥을 사주러 다녀가기도 했다. 아들이 고생하는 것에 대한 격려차원이었다. 노량진 학원에서 실시하는 2차 모의시험도 응시를 해서 실력을 체크하기도 했다. 10월에 2차 시험발표가 있었는데 합격했다. 140명이 합격인원이었다. 11월에 삼성화재보험사에 면접을 보기도 했다. 10명을 뽑는데 50명이 지원을 하기도 했다. 아쉽지만 입사에는 실패했다. 11월에는 부산에 아들과 함께 내려가 조상에게 묘사를 지내기도 했다. 가족, 친지들이 모두 축하해 주었고 기뻐했다. 아빠가 합격축하금으로 거금 3백만 원을 아들에게 주었다. 아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2014년 8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입학한 지 7년 만의 졸업이었다. 2014년 7월부터 영국의 런던 근처에 있는 어학연수원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2015년 1월 경에 귀국했다. 영국에 살고 있던 선배에게 부탁해서 아들을 보살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선배는 거의 세 차례 정도 스테이크 식사를 사주는 등 극진히 보살펴줘 감사했다. 아들은 4일간 어학연수를 했고 3일간은 유럽 전역을 관광하러 다녔다. 어느 만큼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여행을 통해서 유럽문화를 살펴볼 기회를 갖기도 했다. 아빠 엄마는 매주 여행경비를 송금하느라 고생을 좀 한 셈이었다. 후일 결혼해서 신혼여행지를 크로아티아로 가기도 했다. 차량을 렌트해서 돌아다녔고 차를 잠깐 주차해 두고 곧바로 바닷가 해수욕장으로 뛰어들기도 했던 모양이다. 아들이 머물렀던 곳이 남자 둘이 사는 집이어서 상당히 우려스럽고 걱정되기도 했는데 별 문제는 없었던 듯했다. 하숙집 주인이 휴가를 가는 기간 동안에서 식비를 반환해 줘서 그것으로 직접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해결하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2015년도에는 온전히 취업에 매진한 한 해였다. 최종 취업한 곳은 농협손해보험사였다. 회사 사장명의의 축하편지와 함께 과일 한 상자를 받기도 했다. 하늘의 별따기 같은 취업의 문을 뚫은 아들에게 축하를 보냈다. 400여 명이 지원해서 20명을 뽑는 취업시험이었다. 아빠는 2014년도부터 경기도 원당에 소재한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부원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집에서 출퇴근하는 형국이었다. 아들은 12월 경에 임용되었고 5주간의 신규직원 교육을 거쳐 서대문의 본사에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다. 신규직원으로 교육을 받았던 곳은 안성교육원에서였다. 극기훈련으로 오대산에서 하조대까지의 32km 야간 극기훈련이 있었다. 군복무 중에도 행군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직장생활의 첫 고비가 신규직원 교육 때의 극기훈련이었다. 교육은 미래다라는 얘기가 있다. 교육이 그만큼 사람의 삶을 좌우하고 그것으로 인생자체의 여러 선택이 결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은 매사에 책임감을 갖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 헸고 학업에도 매진해서 원하는 바를 거의 그대로 다 성취를 한 셈이었다.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만큼 자신 있게 자신의 길을 제대로 걸었고 확신을 갖고 도전했고 성취시켰다. 2017년 9월 초에는 결혼을 했고 그 해 11월에는 아파트에 당첨되어 입주를 하기도 했다. 2000년에 하남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자식도 낳았다. 이제는 한 가정을 이끌고 있고 2025년 초에는 책임자로 승진까지 이뤄냈다. 입사한 지 10년을 넘기고 있다. 올해에는 차도 새로 구입을 했고 작년도에는 하남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고 집도 근사한 아파트로 구입을 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잘 살고 있는 셈이다. 농협손보사에 입사해서 초창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몇 개월간씩의 야근에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젖한 책임자가 되어 소임을 다하고 있으니 향후에도 잘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제나 밝고 힘차게 소임을 다하는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