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로 Oct 14. 2023

생존의 위협을 느낀 최초의 순간

타국에서 처음 시작하는 홀로서기_4주 차

[미국 교환학생 4주 차]


2021년 10월 1일

드디어 할리우드 사인을 보다!

할리우드 사인을 보러가던 중 발견한 차. 이대로 굴러 가는게 미국?

수업을 마치자마자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곧바로 LA로 향했다. 고속도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창밖을 구경하던 중 굴러가는 게 신기한 상태의 차를 발견했다. 이걸 아무렇지 않게 굴리는 게 미국인 걸까?

할리우드 사인.

할리우드 사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에 도착했다. 사진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할리우드 사인을 내 눈으로 보는 게 믿기지 않아 한참 사진을 찍었다.

라라랜드에서 남녀 주인공이 춤추던 곳.
그리피스 천문대.

할리우드 사인 앞 공원에서 구경을 마치고 근처 그리피스 천문대를 방문했다. 라라랜드에도 나온 곳이라 유명하다. 영화에 나왔던 플라네타리움도 볼 수 있는데 학생증을 내면 할인된다! UCSD 학생증 덕분에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을 끊고 남는 시간 동안 구경했다.

그리피스 천문대 내부.

내부에는 과학 관련된 전시가 구성되어 있고, 테슬라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그 테슬라가 맞다. 비록 기업 이름은 아니지만 말이다. 기업 테슬라는 과학자 테슬라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피스 천문대의 선셋.

썸머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다 서로를 쳐다봤다. ‘너도 설마?’라는 마음으로 쳐다봤지만 역시 감동을 받아 눈가가 촉촉해졌다. 원래 자연을 보고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진 적은 없다고 얘기하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꿀꺽 눌러 삼켰다. 해가 지자 거짓말처럼 그 감정은 사라졌다. 생각보다 해는 빨리 졌다. 5분 만에 졌고 해가 사라지자 주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연한 보라색 하늘이 예쁘다.
해가 진 후의 하늘.
저녁의 그리피스 천문대. 밤이 더 예쁘다.
해가 진 다음의 그리피스 천문대.

선셋을 바라본 다음 해가 지자 그리피스 천문대 MD샵에서 구경했다. 천문대치고는 굿즈 퀄리티가 너무 좋아 과소비를 할 뻔했지만, 배지만 구매했다.

(왼) 플라네타리움 티켓과 좌석. (우) 그리피스 천문대의 야경.

플라네타리움은 라라랜드에 나와서 보게 된 것일 뿐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영상미가 너무 좋았다. 영상에 관심이 많은 썸머는 굉장히 감탄을 하면서 봤다. 플라네타리움을 보고 감동을 받은 채로 나왔는데, 더 큰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LA의 야경을 본 건 처음이었다. 서울처럼 고층빌딩이 없어 광활히 이어지는 수평선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도 저 빛의 일부분인 것만 같아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리피스 천문대 야경 구경도 좋았지만 문제는 이곳이 외곽이라 전파가 잘 터지지 않았고, 우버를 잡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30분 시도 끝에 겨우 우버를 잡았다(우버란 택시를 부르는 모바일 플랫폼이다).

숙소 근처 웬디스.

저녁을 못 먹었던 터라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웬디스로 향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는데 웬디스 앞에서 홈리스가 라이터를 가지고 놀고 있어 굉장히 무서웠다. 혹시 내가 불에 타버리면 어쩌지(?)라는 상상 속에 무사히 웬디스 주문을 마쳤다. 우리나라에는 웬디스가 입점했다 나간 관계로 나는 처음 먹어봤는데, 맥도널드나 버거킹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2021년 10월 2일

생명의 위협을 느낀 최초의 순간

(왼) 브런치 (우) LA 지하철.

숙소 근처 브런치 맛집이 있다고 해서 방문했는데, 실제로 분위기도 여유롭고 좋았다. 산뜻한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건만•••이후에 큰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코로나로 인해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이 무료화되면서 홈리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빈도가 잦아졌다고 한다. 우리가 탔던 칸에 홈리스와 싸우는 분들이 계셔서 마음을 졸였다.

지나가다 발견한 가게. 심슨을 너무 잘 그렸다.
내가 생각했던 LA의 풍경.

지하철에서 내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로 향하는 와중에도 홈리스가 많기는 했지만, 내가 그려왔던 할리우드의 풍경을 보느라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도착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명예의 거리 초입부까지는 좋았다. 상상 속에서는 깔끔하고 관광지일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코로나 시국이어서 그랬는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홈리스가 너무나도 많았다.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 분들을 상상하면 안 된다. 마약을 하고 환각 증세를 보여 언제든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좀비 떼 같았다. 무서웠지만 설마 나와 관련이 있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문제의 장소 주변 스타벅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 절여져 있던 나는 폴리스 라인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수사물을 좋아하다 보니 신기해서 사진으로 남겨두고자 했다. 이때만 해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잠시 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불안한 마음에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가려는데


“너 내 사진 찍는 거야? 찍는 거 냐고!!!”라고

눈이 튀어나오다 못해 광기로 번뜩이는 눈을 마주했다.


그 말 자체도 무서웠지만, 짧은 순간에 그가 못이 박힌 파이프를 들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말로 통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아뇨! 저는 찍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아저씨는 저쪽에서 오셨는데 저는 오른쪽을 찍었단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쪽을 향해 파이프가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슬로 모션처럼 움직이는 광인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무조건 죽을 것 같아서

고민도 하지 않고 급하게 스타벅스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광인은 내 뒤를 쫓지 않고 다른 곳을 향했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


스타벅스 직원도 이를 보고 있었는지 괜찮냐고 물어봐줬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멍-했다.


다른 아주머니도 “허니, 이건 인종차별은 아닐 거야. 여기 홈리스가 많아서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는데 모두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 마. 너무 무서웠겠다.”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다른 사람의 온기가 전해지자 그제야 긴장했던 몸이 생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30분간은 그 광인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아무것도 하지 못 한채 스타벅스에서 방황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서 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 광인이 언제 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그다음 계획 장소인 비벌리 힐즈로 향했다.

문제의 장소. 살인사건 현장이다.

무서운 마음을 안고 할리우드를 떠나자 그제야 긴장이 온전히 풀리기 시작했다. 여유를 되찾고 난 뒤 선글라스를 잃어버린 걸 깨달았다. 매우 아끼는 선글라스였기에 여행에 집중을 못했고 함께 여행 중이던 썸머에게도 미안했다.

(왼) 비벌리힐즈의 커피숍. (우) 낙태 관련 시위 현장.

비벌리힐즈 사인 근처에서 촬영을 하는데 경적 소리가 마구 울려댔다. 이건 또 무슨 사건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시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시위에 지지하는 운전자는 경적을 울린다고 한다. 낙태에 대해 찬성하는 운전자들이 지나가며 연신 경적을 울렸던 것이었다. 이 군중 속에는 유명한 작가도 있어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온듯했다.


짧은 시간 내에 참으로 다이내믹한 순간들이었다.

비벌리힐즈.

선글라스를 되찾으러 가기로 결심하고 할리우드에 갔건만 찾지 못했다. 같이 가준 연에게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사실 선글라스 잃어버린 것 하나 가지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긴장해서였을까 평소 나답지 않았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가 경찰 통제로 인해 우버가 잘 잡히지 않다 보니 1시간 걸려 온다고 되어 있어 기다렸건만 오지 않았다. 결국 고생해서 1시간 버스를 타고 비벌리 힐즈로 돌아왔다. 기다리는 도중 사이언톨로지(흔히 사이비 종교라고 알려져 있다) 신도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 같으면 무시했겠지만 다른 홈리스가 올까 무서웠던 나는 차라리 얘기하는 게 낫겠다 싶어 같이 얘기를 나눴다.


저 폴리스 라인은 뭐였냐고 물어보니 대형 쇼핑몰에서 칼부림이 있었고 한 명이 칼이 찔려 중태라고 얘기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치안이 그나마 안전한 쇼핑몰에서도 칼부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물론 2023년 우리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생기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경찰이 근처에 있었음에도 그 홈리스를 제지하지 않은 것도 충격이었다. 물론 목격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나 피해를 입고 사후적으로 처치해 봤자 피해의 몫은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가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외국에서는 스스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저녁의 비벌리힐즈.

고생한 기념으로 치즈케이크 팩토리라고 하는 미국의 레스토랑에서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치즈케이크 팩토리의 케이크.

레스토랑에서 나와 호텔 사이트에서 이른바 빈대가 출몰하는 집(?)이라고 별점 1점을 받은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미니 할리우드 맨션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정말 이름값을 했다. 생각보다 더 으리으리했다. 인도에서 왔다고 설명한 아저씨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셨고 은퇴 이후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시는 듯했다. 자식 자랑도 하시지만 무심한 듯 챙겨주시는 한국 아버지 스타일(?)이라 왠지 모를 정감이 갔다.


생각보다 문제의 빈대 하우스는 나쁘지 않았다.


2021년 10월 3일

유니버설 할리우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의 지구본과 입구. 다른 유니버셜 스튜디오와는 다른 모습이다.

게스트 하우스 아저씨가 주시는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마침 근처라고 해서 무료로 태워다 주시기로 했다. 조식에 라이드까지 이 가격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 생각보다 좋았다. 다른 LA 지역으로 가는 일정이었다면 무서웠을 법도 하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라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처음에는 인기가 가장 많은 어트랙션인 해리포터를 타러 갔다. 화장실에서도 해리포터의 목소리가 나와 신기했다. 하지만 나는 해리포터에 그다지 큰 관심은 없어 굿즈만 구경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다.

심슨 라이드 존.

평소 심슨을 좋아했던 터라 라이드 하나 정도는 타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타지 못 했다.

(왼) 심슨 도넛 판매 줄 (우) 심슨 도넛

애니메이션에서 호머 심슨이 자주 먹었던 도넛을 시켜봤다. 네 명이서 나눠 먹었는데도 다 못 먹을 정도로 커서 먹다 말았다. 그리고 매우!!! 달았다. 평소 단 걸 잘 먹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달았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할리우드에만 있는 어트랙션.

스튜디오 투어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에만 있는 어트랙션이다. 스릴을 즐기는 사람은 실망할지 몰라도,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환장할만한 곳이다. 그동안 유니버설 스튜디오 측에서 촬영했던 촬영장을 보여주거나 특수 효과를 보여준다. 쥐라기 월드, 분노의 질주 등 3D 안경을 쓰고 체험하는 것도 있어 매우 참신하고 재밌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어트랙션이라 가장 기억에 남았다.

어트랙션 탑승 중 발견한 백투더 퓨처 촬영용 차량.
브라이언네 집에 붙인 메모지.

다양한 어트랙션을 타고 오늘만큼은 관광객처럼 놀다가 왔다. 다행히 LA에서 샌디에이고로 향하는 버스 티켓은 남아있어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다만 USC 근처에서 버스를 탔는데, 그 부근도 홈리스밖에 없어 네 명이서 옹기종기 붙어가며 버스를 탔다.


샌디에이고로 돌아와서는 LA 출신인 잭에게 원래 LA 이렇게 위험한 곳이냐고 물어봤다. 할리우드 주변에 거주하는 잭은 이런 건 흔히 보게 되는 것 같다고 태연히 말하길래 놀랐다. 잭의 주도 하에 방문한 사람들은 메모를 붙이는 게 암묵적인 룰이라 'LA에서 드디어 살아 돌아왔다!!'는 메모를 남겼다.


2021년 10월 4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다

(좌) 계속 빠져있는 판다 익스프레스의 쿵파오 치킨. (우) 스타벅스에서 그린티라떼를 시켰는데 스마일을 그려줬다 :)

LA 여행 중 받았던 충격도 잠시 일상으로 돌아와 수업을 들었다. 죽다 돌아온 느낌이라 일상의 사소한 행복도 매우 크게 느껴졌다. 스타벅스 컵에 직원이 그려준 스마일도 어찌나 감사하던지...

(좌) 식칼로 피자를 써는 상남자 안디? (우) 브라이언의 집

인종차별 사건이 있던 이후 왠지 모르게 껄끄러워져서 우리 집에 별로 안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 집에 자주 놀러 가 시간을 보냈는데, 우연히 안디가 식칼로 피자를 자르는 모습을 발견해 너무 웃겼다.


브라이언네 룸메들은 모두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 부러워서 잭이 꾸며둔 벽의 사진을 찍어봤다.

브라이언의 집.

브라이언의 집에는 항상 스케이트 보드, 우쿨렐레, 맥주병이 있다. 모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재밌기도 하다.

브라이언 집에 붙어있는 러브레터.

잭이 우리 룸은 이런 러브레터를 받았다고 히죽거렸다.

"안녕, 내 룸메가 너 되게 귀엽다고 생각하는 거 같더라. 우리 218호에 사는데 누군지 알고 싶으면 메모 남겨줘!"라는 너무 귀여운 내용이었다.


지구 어딜 가든 연애 얘기가 가장 재밌는 법이기에 이 룸 중 과연 누가 러브레터의 대상일지 궁금했다. 총 6명 중 과연 누구였을까. 잭은 아마 이탈리아 출신의 안드레아일 거라고 얘기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과연 누가 주인공일지 궁금해서 빨리 메모를 남겨보라고 말했다. 드라마 프렌즈에 나오는 내용인 것만 같아 괜히 내가 설렜다.


2021년 10월 5일

아기 상어 뚜루룻뚜루

점심으로 텍사스풍 바베큐.

연과 만나 오랜 시간 대기 끝에 학식으로 텍사스풍 바비큐를 먹다가 갑자기 바다를 가자는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원래 충동적이지 않은 나였지만, 연이 오늘 날씨도 좋고 추워지기 전에 바다를 가자는 말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탈학식급 점심을 먹고 바다로 갈 준비를 하러 기숙사로 향했다.

네 학점을 망치지 않는다고 맹세할게! -블루 보울

친구들이 맛있다고 칭찬하던 가게 ‘블루 보울‘. 하와이 음식인 아사이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인데,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넣어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가격은 한 그릇에 만 원 이상이지만 가격 값은 한다.

버스에서 내려 바다로 가는 길.

연과 먹을 것을 잔뜩 싸들고 버스를 탄 채 바다로 향했다. 누가 봐도 바다에 놀러 가는 차림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무관심이 너무나도 좋았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인으로 살다가 일반인이 된 느낌이었다.

라호야 쇼어에 도착.

날씨가 너무 좋아서 도착하자마자 비치타월을 깔고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날씨와 햇살이 어우러져 뭐든 행복했다. 이때 당시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에서 매우 유명하던 시절이라 연과 같이 1화를 봤다. 미국에서도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있던 터라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오징어게임을 봤냐고 자주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아직 안 봤다고 하면 괜히 머쓱했다.

라호야 쇼어에서 놀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신나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웬 남색이 보였다.

‘음? 설마… 여기는 사람들이 노는 해수욕장인데?‘

다시 남색 물체 근처로 다가갔다.


내가 알던 그 상어가 맞았다!

상어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물살을 헤쳐 나왔다.

속으로 원망했다.

‘왜 요새 저에게는 이상한 일들만 일어나는 거죠!‘


나중에 듣기로는 여기 수온이 따뜻해져 상어들이 가끔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공격성을 띠고 있지는 않는다고.

아름다운 라호야 쇼어.

친구들에게 들려줄 무용담은 늘었지만 자꾸 안 좋은 일들만 생기는 것 같아 찝찝했다. 그렇지만 안 좋은 기분도 잠시 석양을 보며 홀가분하게 털어 보냈다. 이래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유한 편이라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야자수와 붉게 물든 하늘은 언제나 아름답다.

버스를 타며 촬영한 석양.


2021년 10월 6일

평화로운 하루

(좌) 또 다시 온 두근두근 러브레터 (우) 학식 햄버거

잭이 그 친구들로부터 또 편지가 왔다고 자랑을 했다. 꽤나 흥미로워 보여서 잭을 만나자마자 편지부터 읽어봤다.


1. 파스타 맛있을 거 같아! :) 근데 우리가 이번 주 토요일에 다 기숙사에 있지는 않을 거 같아서 다음 주 토요일에 비 오는지 한 번 보고 결정할까? 우리 기숙사에서 놀아도 되고 너네 기숙사 방에서 놀아도 되는데 우리 방 밑에는 기숙사 조교가 살아서 :/

추신- 우리 없다고 너무 그리워하지는 마라!

- 이웃 여자들


2. 우리가 저번에 너네 놀러 가서 노크했었는데 모르는 거 같더라! 무섭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해 :(

추신- 나중에 우리가 쓴 거 한번 봐바:) 잘장*_<

-이웃 여자들


편지 보고 또다시 봤다. 너무 귀엽고 드라마에 나올 것만 같았다!! Girls next door이라는 거 보고 프렌즈에 나올 것만 같았다. 번역하면 그 느낌이 안 살아서 아쉽다.

UCSD 음악관.

피아노를 치고 드디어 Bank of America 실물 카드를 수령했다. 저녁으로는 스미레와 함께 라볶이와 떡볶이를 먹었다.


2021년 10월 7일

이번엔 갑자기 뉴욕 여행 계획

이번엔 다른 학식 64도씨.

브라이언, 썸머와 함께 64도씨라는 식당에서 학식에 도전했다. 아직도 학교 안에 새로운 식당들이 많다. 교환학생 신청 시 기숙사 거주 학생은 무조건 밀 플랜(meal plan)을 신청해야 했기 때문에 돈을 다 쓰기 위해서는 학생 식당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낭만적인 하늘의 색과 야간 영화.

저녁을 먹고 나와 미식축구를 하는 학생들을 봤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하늘색과 이국적인 경기장이 어우러져 눈이 시원했다. 20여분 걸어 나타난 Price Center 근처에서는 야외 영화를 상영 중이었다. 한국 대학교에서도 이런 낭만을 좇으면 좋으련만. 잔디밭과 밤하늘 속 야외 영화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성이 있다.

뉴욕 비행기 예약.

LA에서 돌아온 이후로 뉴욕이 궁금해졌다. LA에서 습격당할 뻔했던 게 언제 적이냐 싶긴 했지만 여행을 갔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을수록 여행을 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눈에 담고 오기 위해 브라이언, 썸머와 함께 뉴욕행 티켓을 예매했다.


알래스카 항공은 미국 항공사인데, 대한항공과 제휴가 되어있어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도 가능하다. 어쩌다 보니 미국 여행 시 대부분 알래스카 항공을 이용하게 됐었는데 델타, 유나이티드 항공, 아메리칸 항공에 비해 연착이 드물기도 하고 서비스도 괜찮은 편인 것 같다.


2021년 10월 8일

한국의 맛을 보여주마, K-국뽕 장착 완료

라스 아메리카스 아울렛.

친구들이 라스 아메리카스 아웃렛에서 살게 있다고 해서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나와 썸머 이외에 다른 친구들은 처음 와서 그런지 모두 쇼핑하기 바빴다. 다시 온 만큼 더 쓰지 않으리라 결심했건만 새로운 상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둘러보지 못했던 브랜드를 발견했으며 더욱 파격적인 세일가도 발견해 버렸다. 이미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양손은 쇼핑백으로 가득 찼다.

라스 아메리카스 아울렛의 저녁.
브라이언 집에서 열린 한국 음식 파티.

잭이 보여줬던 수상한 러브레터를 기억하시는가? 러브레터의 주인공인 이웃집 여자분들을 만나는 일정이 연기되어 우리가 대신 토요일 저녁에 같이 놀기로 했다. 마침 같이 한국 마트에 갔던 기억이 있어 오늘 저녁은 우리 한국 친구들이 함께 모여 대접하기로 했다.


외국인 친구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불닭볶음면이다. 어렸을  때 유튜버 영국남자의 영상을 보면서 나도 외국인 친구가 생기면 불닭볶음면을 줘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였다. 잭이 가장 매운맛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얘기해서 야심 차게 준비를 했다. 이외에도 참치마요 김밥, 짜파구리, 아이스크림 호떡 등을 준비했다.

(좌) 잭 다니엘 양주를 깐 안드레아. (우) 우리가 준비한 아이스림 호떡.

사실 오늘은 한국 음식이라고는 했지만, 소주와 소맥을 알려주고자 만든 자리였다. 그런데 브라이언의 룸메이트들이 착해서 이미 다른 음식도 준비해 둔 상태였고 술도 준비해 왔다. 바로 왼쪽 사진의 잭 다니엘이 그중 하나다. 파이어볼이라고 하는 양주도 마셔봤다.


안드레아는 술에 약간 취하면 “Fxxk~! “이라고 외치는 버릇이 있는데, 묘하게 이태리 억양과 섞여 중독성이 있다. 오늘도 역시나 그런 재밌는 모습을 보여줘서 모두 재미있어했다.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해대고, 누군가 과음을 해서 토하는 중인데 그걸 화장실 앞에서 내일 보라고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고•••아수라장 그 자체였지만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웃겼다.


잭은 예상외로 불닭볶음면을 잘 먹었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너무 매워했다. 특히 안드레아는 짜파구리를 한 입 먹자마자 “Fxxk”을 내뱉었다. 긴 머리에 수염을 길러 성스러운 외모의 소유자지만 하는 말은 그렇지 않아 묘한 부조화가 더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방문객들의 방명록.
자유로운 분위기의 브라이언 하우스.

술에 취한 채 잭의 스케이트 보드를 타봤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자고로 스케이트 보드는 꼭 반스와 함께 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없지만 사실상 그게 암묵적인 룰(국룰)이라고 한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만난 라쿤.

라쿤은 미국에서 흔히 있는 야생동물이라고 하는데 기숙사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녀석은 성질이 고약한지 사람들이 구경하려고 모이자 그르릉거렸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밤이 지나갔다.


2021년 10월 9일

아름다운 야자수와 달을 눈에 담다

패러글라이딩 구경.

UCSD 근처에는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글라이더 포트라는 곳인데, 워낙 유명해서 예약하기 어렵다고 한다. 3달 전에는 예약해야 하고 날씨에 따라 가능 여부가 달라져서 시도하기 굉장히 어렵다.

글라이더 포트의 선셋.

과제를 마치고 패러글라이더들의 모습을 보는 여유를 가졌다. 아름다운 풍경을 위에서 둥실둥실 떠 가며 바람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글라이더 포트의 아름다운 풍경.

글라이더 포트의 풍경을 보며 썸머와 얘기했다.


“LA의 하늘은 분홍색, 여기는 보라색, 티후아나(라스 아메리카스 아웃렛 근처)는 주황색인 것 같아.”


우리가 봤던 영화 라라랜드의 하늘은 분명 보라색이었건만 샌디에이고의 하늘이 더 영화의 하늘색과 비슷했다. 선셋이 지나가고 져물어가는 햇빛과 하늘의 파란빛이 만나 보라색으로 물들어 가는 광경에 야자수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샌디에이고는 워낙 아름다운 광경이 많아 어떤 풍경이 가장 아름답냐고 물어봤을 때 선뜻 대답하기 어렵지만, 단연코 이곳의 선셋이라고 말하고 싶다. 보라색이 남색이 되어갈 때까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티팝의 일러스트 같은 풍경.

지금도 내 노트북의 데스크톱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다. 평소에도 시티팝 느낌의 일러스트를 좋아하는데, 자연 풍경 하나로도 그런 느낌을 낼 수 있다니. 하늘이 만들어낸 색감과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Copyright 2023. 제로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인종차별하는 룸메 참교육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