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처음 시작하는 홀로서기_3주 차
[미국 교환학생 3주 차]
오랜만에 K-BBQ
연과 타피오카 익스프레스에서 만나 치킨 스낵과 보바를 먹었다. 한국식 치킨이 없다 보니 이런 치킨으로 대리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부할 때 그렇게 당길 수가 없다. 타피오카 익스프레스는 아시아인들이 대부분 버블티를 좋아해서인지 거의 다 아시아인이다.
저녁에는 스미레 친구 토모가 차로 데리러 와서는 한국식 고깃집으로 갔다. 미국에서는 이런 한국식 고깃집을 모두 K-BBQ라고 한다. 택시 기사님께 제일 좋아하는 한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K-BBQ라고 말할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고, 인기도 많다. 써머, 연, 브라이언, 나 모두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었기에 우리 모두 들떠있었다. 토모는 정확히는 스미레의 본교 선배님이시고, 토모 친구인 데빈도 같이 왔다.
데빈은 미국인이고 아시아계도 아닌데 매우 유창하게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를 구사했다. 뿐만 아니라 수상하리만큼 한국 술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본에 교환학생을 갔었는데, 그때 만난 한국 친구들이 알려줬다고 했다. 대부분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애플뮤직에 자신이 직접 만든 음악도 올리는 멋진 친구였다.
오랜만에 한국 고기를 먹고 난 뒤에는 다 같이 농구를 하다가 최종 시간표를 마무리했다. 샌디에이고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편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차의 중요성이 절대적이었기에 토모가 매우 고마웠다.
오늘은 공부하는 날
경제학 수업을 들은 적은 없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미시경제학을 수강했다. 왼쪽 사진은 잘못 들어간 강의실이다. 길을 잘못 찾느라 미시경제학 수업이 거의 끝날 때쯤 들어가 버렸다.
스파이 행위나 비밀 정보가 미국 외교 정책이나 안보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수업이었다. 흥미로워 보여서 책까지 샀다만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과감하게 드롭했다. 그리고 책값이 두 권 합쳐 거의 10만 원(?)이었다. 중고 서적도 새 책과 가격 차이가 거의 없었던지라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미국 교환학생이 되면 꼭 해보고 싶은 게 학교 로고 스티커와 다이어리 구매였다. 그래서 오늘 일정도 없겠다 학교 스토어에서 빈둥거리며 구경하고 미뤄뒀던 과제를 마쳤다.
크리스틴 옥상으로 따라와라
이번 시간에도 아직 아이스브레이킹 단계라 원으로 모여 게임을 했다. 동작에 맞춰 게임을 하는 건데, 엘리베이터!라고 외치면 going down~이라고 말하면 된다. 과연 재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꽤 재밌었던 건 비밀.
드라마 프렌즈에서만 보던 판다 익스프레스를 드디어 먹어 보게 되었다. 오렌지 치킨이 가장 맛있다고 들었지만 쿵파오 치킨이라고 하는 녀석이 끌려 먹게 되었다. 역시 미국 답게 양이 많아 조금 남기긴 했지만, 매콤달달해서 한국인이 좋아할 법한 맛이었다.
판다 익스프레스에서는 포춘쿠키를 하나씩 가져갈 수 있는데, 썸머, 나, 브라이언은 딱히 영양가 없는 포춘쿠키를 뽑았다.
오랜만에 로까지 원년 LA 첫 모임 멤버가 모여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팬케이크와 감자튀김, 어니언링을 먹었는데 학식치고는 꽤 퀄리티가 좋았다.
이후에는 연이 농구에 빠져있어 우리끼리 농구를 하다가 모르는 분들과 갑자기 농구 배틀도 해봤다.
분명 재밌게 들어왔는데, 룸메 크리스틴이 딴죽을 걸어댔다.
“Sue, what is this?”
싱크대에 있는 납작 복숭아 씨를 보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It’s just a peach seed.”라고 얘기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른 룸메 아이리스와 키득키득 웃는 것이다.
“You mean seed or seaweed?”
웃으면서 그 말을 하는 걸 듣는 순간 머리끝까지 열이 뻗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둘 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내가 말을 붙여보거나 인사했을 때에도 친절하지 않은 크리스틴이었기에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이밖에도 크리스틴은 내가 방에서 가족이나 애인과 통화를 할 때 시끄럽다고 주의를 준 적이 있었다. 거실도 아니고 내 방에서 내가 통화하겠다는데 그게 왜 불만인 건지, 이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이미 다는 다른 일정들로 인해 지쳐있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가 터진 이상 물어봐야만 했다. 도대체 너는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처음에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고 분하기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크리스틴을 쏘아본 채 눈물을 참고 뛰쳐나가는 것뿐이었다. 애써 눈물을 참고 나왔는데 연과 브라이언을 보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너무나도 내가 애 같았지만 이미 감정은 고장 난 8톤 트럭이었다.
친구들을 만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하다가 크리스틴에게 할 말을 하기로 결심하고는 얘기 좀 하자고 해서 아이리스, 크리스틴, 나 이렇게 삼자대면을 했다.
크리스틴은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고 아이리스는 그런 크리스틴을 위로하고 있었다. 정작 상처받은 사람은 나인데 내가 상처를 주는 것만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을 다잡고 할 말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1. 내가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잘 모르겠어서 다시 물어볼 수는 있지만 그걸 가지고 비웃어서는 안 된다.
2. 반대로 네가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왔을 때 내가 네 한국어 발음 가지고 “음 씨앗? 씨알? ㅋㅋㅋㅋㅋㅋ아 씨앗이래” 이러면 어떨 거 같은지.
3. 내가 부모님 곁을 떠나 타국에서 혼자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내가 유일하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내 방인데 너는 내가 편하게 있을 그 권리를 침해한 거라고.
4. 인사를 했을 때는 그래도 인사를 잘 받아주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갑자기 엉엉 울면서 엄마가 항상 내가 사회성이 없다고 그랬다며 나는 애니메이션 페어리테일의 캐릭터를 동경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다시 정신줄을 부여잡고 강하게 말했다.
“너 지금 우는 거야? 지금 여기서 잘못한 사람은 너고 네가 했던 행위는 명백히 인종차별이야. 내가 너 학교 측에 인종차별로 신고할 수도 있어. 조지 플루이드 사건 알지? 알면서 왜 그렇게 무분별하게 행동한 거야? 너도 나도 똑같은 아시아계라고. 네가 여기서 울면 내가 잘못된 사람처럼 보이는 거고 넌 착한 사람처럼 보일 테지만 그러지 말자.”
그러자 크리스틴은 태세전환을 하고 울음을 그쳤다. 여러모로 사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약속을 받아냈다.
1. 전화통화 하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기
2. 인사 잘 받기
3. 앞으로 차별하지 않도록 언행 주의하기
그리고 그 말도 해주었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한 번 더 이런 행동을 하면 그건 실수가 아닌 거야. 그리고 다음에 그 대상이 다시 한번 내가 된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다.”
하고 싶었던 말을 다해서 속은 시원했지만 어딘가 속이 답답했다. 그때 마침 써머와 브라이언이 저녁에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해줘서 바다를 보러 갔다.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저녁에 파도 소리를 들으니 얹힌 스트레스가 파도에 밀려나가는 듯했다. 다만 인적이 드물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무섭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별이 잘 안 보였는데 바다를 보고 올라가는 길에는 별이 너무나도 환하게 잘 보였다.
힐링을 하자
브라이언과 함께 점심으로 캘리포니아 피자 키친을 왔다. 라호야 드라이브 La Jolla Drive에 있는 곳인데, 점심에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이 바비큐 치킨 피자가 캘리포니아 피자 키친의 시그니처 메뉴다. 미국에서는 California Pizza Kitchen이라 CPK라고 부른다 카더라.
점심을 먹고서 UTC로 향한 다음 써머와 연을 만났다.
돌아와서 학식을 먹으러 왔는데, 이번에는 포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카이라는 곳인데, 자신이 원하는 포케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항상 인기가 많다. 게다가 내가 살았던 기숙사인 I-House에서 멀지 않아 자주 갔었다.
이곳에서 야경은 처음 보느라 모두 야경 찍기에 바빴다. 아직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모든 게 새롭기만 하다.
갑자기 내일 LA 여행 가다???
학교 매점에서는 의외로 한국 음식을 많이 판다. 신라면, 육개장도 있고 비비고 김도 판다! 다른 매점에서는 붕어 싸만코(?)도 팔고 있어 네가 왜 여기에서 나와…? 싶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스티로폼 용기를 사용한다는 것.
UTC에서 저녁을 먹다가 여행을 언제 가면 좋을지 얘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내일 LA를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평소라면 전혀 이렇게까지 갑작스레 여행을 가지는 않았겠지만 타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흥분지수가 오른 상태여서일까? 충동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워버렸다.
저 스터디실에 앉아 과제를 하다가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나서는 급하게 호텔과 교통편을 보니 버스 티켓이 남아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지나가던 잭은 우리의 계획을 듣고는 매우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샌디에이고에서 LA까지 택시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처음이라서, 정말 처음이라 뭘 모르고 할 수 있는 선택인 것으로.
다음은 숙소를 정했는데, 할리우드를 방문할 예정이라 할리우드에서 호텔을 1박 묵고, 저 사진 속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1박을 묵기로 했다.
과연 이 얼렁뚱땅 LA 여행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건 다음 편에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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