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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pr 08. 2024

벚꽃의 꽃말은 아름다운 이별

오랜 날 오랜 밤, 많이 사랑했어요.

https://youtu.be/wEQpfil0IYA?si=pWgCaNwb0N2euR_C

AKMU의 오랜 날, 오랜 밤


오랜 날

오랜 밤 동안

정말 사랑했어요


마지막 안녕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 줄래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신의 흔적이

지울 수 없이

소중해




4월에 만개하는 벚꽃은 바람이 불면 향긋한 봄내음을 따라 아련하게 지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설령 그것이 사람을 아프고 괴롭게 하는 것일지라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어제 내가 마주했던 건 아름다운 이별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성적인 호기심에,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닿았던 연락이 연애로 이어졌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며 꼭 오래 사귀고 싶다고 다짐하던 그였다. 처음 해보는 연애는 아니었지만 진정으로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이었기에 알 수 없는 연애 감정으로 매일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던 하루하루는 특별한 의미가 생겼고,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그는 사랑스러운 메시지로 매일 달콤한 아침을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항상 잘 맞을 것만 같은 생각은 곧 다툼으로 변했고, 애정은 애증으로 변하기도 했다. 애증으로 인해 결별을 했었지만 일상 속 상실감과 허무감으로 인해 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갔다. 상대가 변하고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하며 2년을 그렇게 보냈다. 처음 1년 간은 노력하면 변한다고 생각하며 그와 함께하는 나날들이 즐거웠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나도, 그도 바빠져 가며 그는 내게 소홀해지는 듯했고, 당연시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그에게 그랬을지 모른다.


결국 몇 개월 간 괜찮을 것이라 눌러 참았던 감정은 한계에 다다라 결별을 결심하게 되었다. 강남역 카페에 만나 마지막을 함께했다. 원망 속에 마주하게 될 것만 같았던 상상과는 달리, 원망은 눈 녹듯 사라지고 두근거림과 울컥한 감정만 남았다. 헤어지자는 말을 어떻게 꺼내면 좋을까, 내가 그를 다시 보지 못할 텐데 그럴 자신이 있을까. 일상처럼 당연해진 그를 다시는 못 볼 수 있을까. 한 때는 부모님보다, 가족보다 더욱 가까웠던 그를 영영 보지 못 해도 상관없는 걸까. 굳은 마음이라고 착각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러 생각들로 요동치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갔지만 오전 10시 반이라는 이른 시간이라 밖에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만 같았다. 나는 민트 유자차를, 그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요새 장도 안 좋아서 빈 속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안 좋을 텐데-라고 평소처럼 걱정을 했다. 곧 이별하지 않을 사람인 것처럼 평소처럼 걱정을 했더랬다.


3분간 침묵 속에 서로 눈치를 보다가 먼저 입을 뗐다. 난 노력하면 달라지는 사이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 같지 않았다고. 다시 헤어졌다가 만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초반에만 그랬고 그 이후 다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서 그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손을 쓰다듬으면서 내가 미안해라고 얘기했다. 이미 용서해주고 싶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용서해도 내가 다시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알기에 용서해 줄 수 없었다. 그 이후에는 계속 이미 결정하고 온 거냐고 물어봤다. 헤어지자는 의사가 확고한 지 물어보려는 것 같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렇다는 것밖에 없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두 남녀는 이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로 나보다 좋은 사람은 못 만날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피식-하고 웃으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나는 데이식스의 ‘예뻤어’ 가사 속 “다 지났지만 예뻤던” 사람으로, “정말 한 번도 빠짐없이 그를 먼저 생각해 줬던“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더라도 문득 생각나는 그런 사람으로.


갑자기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에 물어보았더니 “이제 못 볼 얼굴, 눈에 실컷 담아두려고.“라고 말하면서 멋쩍은 듯 웃었다. 그러자 그는 이제 바꿀 수 없다는 걸 직감했는지 평소처럼 장난을 쳤다. 괜히 평소에 하던 장난이라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애써 모른 척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은 나의 앞길을 응원하는 건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항상 응원하겠다며 진심을 전했다. 무감각해지고 무던해졌던, 서로 싸우던 관계는 온 데 간 데 없고 서로의 갈 길을 축복해 주고 있었다.


카페를 나와서는 약속 장소로 가려고 신호등 앞에 서 있었다. 지하철 역으로 향하려는 그를 놔주기 아쉬워 신호가 바뀔 때만큼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갑자기 손을 잡더니 나를 꽉 껴안았다. 다시는 못 볼 아쉬움의 크기인 건지, 그동안 사랑했던 만큼 안은 것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온기가 와닿았다. 감정이 무너질까 애써 툴툴거렸던 노력이 무색하게 녹아내려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 헤어지는 마당에 왜 꽉 안고 그러냐며 툴툴거리니 “헤어지기 전에 딱 한 번만 꽉 안아보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횡단보도를 건너 돌아보니 그도 마침 돌아보고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달콤하게 만개한 벚꽃빛 연애가 종지부를 찍으며 아련하게 끝이 났다. 벚꽃을 보며 함께했던 일본 여행도, 벚꽃을 보며 자전거를 타기로 했던 약속도 이제는 날아가 온데간데 찾을 수 없는 벚꽃 잎이 되고 말았다. 12달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4월에 펴 아름답게 지는 벚꽃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너와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건 4월의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이윽고 네가 없는 봄이 지나고 있었다.


괜히 좋은 말을 못 해줘 미안한 마음에 카톡을 남겼다.


나는 4년 동안 거의 모든 게 함께 처음이라 행복했고 당신에 대해서 깊게 알고 사랑할 수 있어서, 사랑받을 수 있어서 고마웠어. 그리고 계속해서 다정하게 응원해 줘서 고마워. 서로 응원하면서 함께하자고 했던 만큼 나도 응원하고 있을게.


그리고 그도 나를 따뜻하게 응원해 주기로 했다.


어제 한말처럼 항상 응원하고 있을게. 항상 나를 바라봐 줘서 그리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 우리 20대에 가장 이뻤던 순간을 함께했던 거 같아서 정말 행복했어. 항상 응원해 주고 내편이 되어줘서 고마워. 꼭꼭 우리 멋진 사람이 되자 항상 잘 지내.


서로 가장 좋아했던 영화 라라랜드처럼, 서로의 갈 길을 응원하는 결말이 되었다.


누군가를 전력을 다해 사랑하며 20대 청춘의 특혜를 제대로 누렸다. 그리고 그 대가인 이별의 아픔은 진정으로 쓰라리다 못해 원망스러웠다. 어느 세상에도 연인 간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하지만 이별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다면, 좋은 기억으로 매듭 지울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이별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겨울이 강철로 된 무지개이듯, 벚꽃의 꽃말은 아름다운 이별이다.


안녕, 나의 벚꽃 같던 찬란한 4년간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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