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어학연수 목적지 독일 최남단 프라이부르크까지
2024.08.01
홀로 떠나는 첫 여행이 독일이라니
오전 11시 반 정도에 비행기 이륙이라, 면세점에서 수령할 것도 있고 해서 일찍 집을 나섰다.
교환학생 때 쓰던 수트케이스를 다시 싸다니. 저번에는 정말 세상물정을 몰라 도둑질 같은 치안 걱정이 없었지만 미국을 다녀와보기도 하고, 혼자 어딘가를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라 안전에 신경을 쓰고, 또 썼다. 핸드폰 손목 스트랩이며, 도난 방지 물품이란 물품은 죄다 챙겼다. 엑셀로 표를 만들기까지 했다. 짐을 싸는 게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라 미루다 결국 출국날이 되고 말았다. 떠나고 싶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질러버린 큰 과제를 회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단 큰 일을 던지고, 저지르고 나면 해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독일 국적기 루프트한자를 이용했는데, 이코노미 석이 오버부킹이었는지 혼자인지 재차 물어보고 프리미엄 이코노미 석으로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오 이런 횡재가!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듣기는 했는데 실제로 나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굉장히 기뻤다. 무언가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심심할 것 같아 넷플릭스에 볼 것들을 많이 다운로드하였는데, 생각보다 볼 게 많아서 듄 2와 바비를 보고 내내 잠만 잤다. 이륙하기 전에는 독일 승무원 분과 스페인 교수님과 스몰톡을 나누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외국에만 나가면(사실 물리적으로는 한국이다만) 스몰톡 러버가 되고 만다. 그냥 호기심 때문일 거다.
스페인 교수님은 특이하게도 남편이 독일 사람이었나, 강의를 독일에서 하는 이유로 독일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어디를 향하냐고 물어 프라이부르크라고 답했다. 독일 승무원 분은 함부르크 출신, 그러니까 북독일 출신이었고, 내가 독일의 거의 최남단 프라이부르크를 향한다고 하니 날씨가 너무 좋다며 부러워했다. (서울에서 거주해 와서 그런지 나도 따뜻한 곳에 사는 로망이 있다. 그런 연유로 캘리포니아에서 살아보기도 했고.) 무엇 때문에 가냐고 물으니 독일어 어학연수를 위해 간다고 말했다. 다들 어학연수로 독일에 혼자 용감하게 가는 내가 기특하셨는지, 열심히 북돋아주셨다. 이 때문인지, 혼자 여행하는 게 하나도 두렵지 않아 졌다.
비행기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자 스페인 아주머니는 비행기 환승을 위해 재빠르게 내렸고, 재잘거렸던 독일 승무원과도 눈인사를 하며 비행기를 나서 공항에 첫 발을 디뎠다. 아시아, 북아메리카 대륙에 이어 처음 밟아보는 유럽이라는 대륙. 신기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문에 러시아 상공을 가로지르지 못해 돌아서 비행을 하다 보니 기존 비행보다 3 시간은 더 걸린다고 위에 둘은 불평을 했는데, 그 시간을 감안하고도 올 만한 곳인지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한번 어떤지 내가 보겠어. 나한테 인종차별을 한다면 혼자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을 하면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길을 네이버 블로그에서 미리 몇 번이고 봐두었건만, 지하철이라고 불리는 s-bahn을 처음 타보는지라 약 1시간 동안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 갇혀있었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길에는 계단밖에 없어서 안타까웠는지, 운동을 하는지 다부진 젊은 남자가 말없이 트렁크를 들어주고는 말없이 떠났다. '오 멋있다..' 이게 독일스러움인 걸까 어리둥절한 찰나, 혼자로서는 방향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옆에 있던 중국인 가족에게 맞는 방향인지 물어봤다. 정말 친절하고 젠틀한 가족이셨다. 가족 구성원이 총동원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더니 핸드폰으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향하는 곳을 찾아주셨다. 이런 사람의 온정이 느껴지는 순간이야말로 혼여행의 묘미다.
드디어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앞에 서 타려는 순간, 또 다른 남자가 내 트렁크를 집었다. 설마 이 자식, 도둑질하려는 건가 했지만 시크하게 들어다 주고 떠났다. 독일 사람들은 차가운 듯 자기 할 일만 하고 떠난다.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보다는 행동파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기차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낯선 곳에서 들리는 뉴진스의 ETA. 뉴진스를 좋아해서 힘이 없을 땐 뉴진스의 노래를 듣는데, 이때가 정말 뉴진스의 노래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휴- 숨을 들이쉬고 다시 한번 트렁크를 들고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내렸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역 주변 치안이 안 좋다는 말을 들어 몸을 본능적으로 웅크린 채 맥도널드 표지판을 발견하고 역 바로 앞 호텔로 향했다.
무인 체크인을 마친 뒤, 드디어 방으로 들어왔다. 아! 15시간에 걸친 장기 비행과 1시간 동안 긴장하며 공항에서 시간을 보냈던 탓에 누워만 있었다. 긴장이 풀린 건지, 배가 고파졌다. 기차역 안에 있는 맥도널드를 향하기에는 대마초를 피우는 수많은 홈리스들이 있었고, 이를 어쩐담. 1층에 있던 매점이 생각났다. 1층에는 감자칩과 키위 맛 음료수 오투를 팔았다. '그래 추억의 오투랑 레이스 칩이나 먹자.' 대충 끼니를 때운 뒤, 씻고 바로 쓰러져 잠을 잤다. 다음 날 바로 프라이부르크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2024.08.02
드디어 독일 최남단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로.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었기에, 막 일어난 아침 시간에는 탁구 경기를 찾아보았다. 스포츠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해서, 일어나자마자 네이버와 유튜브에 들어갔는데 웬걸, 해외에서는 서비스 제공을 안 한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가족에게 잘 도착했다는 의미로 화상전화를 걸며 경기 상황을 전달받고, 역 안에 있던 맥도널드로 향했다. 여행할 때마다 아침에는 맥모닝을 먹는 루틴이 있어서 맥도널드로 향했다.
맥도널드는 지역마다 특색을 살려 매장과 메뉴를 정하는데, 빵을 많이 먹는 유럽 문화권이라서 그런 건지 베이커리 종류가 정말 많았다. 그렇지만 그냥 약속의 맥모닝을 먹기로. "맥모닝 하나 주세요- 음료는 따뜻한 커피로요!" 커피를 받았는데 컵 홀더가 없었다. 점원에게 물어봐도, 가게를 아무리 둘러봐도 컵 홀더는 없었다. 다른 손님에게 물어봐도 컵 홀더는 없고 뚜껑(die Decke)만 찾아주었다. 정말 뜨거웠지만 부랑자들 사이를 삐져나와 커피 흘리지 않기 챌린지를 혼자 하며 무사히 방으로 돌아왔다. '맥모닝 하나 사 오길 벌써 힘든데.' 불평했지만 일단 뭐라도 먹고 나면 괜찮을 테다.
역시 탄수화물과 카페인의 조합은 사람을 괜찮은 척 만드는 데 탁월하다. 맥모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 프라이부르크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슈트케이스를 끌고 중앙역으로 향했다. 중앙역이 너무나도 커서 이번에는 튀르키예 역무원 아저씨에게 탑승 플랫폼을 물어봤다. 이 아저씨도 역시 따라오라더니 그냥 데려다 주기만 하고 말없이 떠나셨다. 독일인은 다 그런 걸까... 아직도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다들 친절하게 도와주면서 말은 없으시다. 하하.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상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벌써 심상치 않았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길래, 대충 적당히 프라이부르크 주변이라고 둘러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Kpop을 좋아한다며 한국에 대한 얘기를 이어 나가려다, 인스타그램이 있냐고 물어봤다. 없다고 얘기하고, 아무리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시그널을 보내도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길래 친구에게 전화를 해버렸다.
독일에서는 우리나라의 KTX 같은 기차를 ICE라고 하는데, 고속 열차지만 KTX와는 달리 지연도 심하다. iCE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열차가 지연이 심한 편이고, 30분 늦은 건 양호한 편이라고 보면 된다.
ICE에 올라 타 자리를 찾는데, 어떤 나이 든 독일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그 눈빛은 신기해서 쳐다본다기보다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명체, 마치 외계에서 온 존재를 보는듯했다. 신기하면서도 역겨운듯한 눈빛. 이런 사람에게 상처받을 것도 없고, 신경 쓸 것도 없었지만 나는 유럽이 처음이었고, 독일이 처음이었다. 2일 차에 그런 눈빛을 벌써 마주해 버리다니. 역시 따뜻한 사람도 많지만, 어딜 가나 별로인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여자는 내가 앉고 나서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그 여자의 눈빛이 안 보이는 것마냥. 마치 밖에서만 나를 볼 수 있는 구조이고, 나는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흥. 미안하지만 나도 한 성격 한다고. 똑같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도 얼굴 뚫릴 듯 빤히 쳐다봤다. 그런 눈빛을 받는 입장도 되어봤으면 좋겠어서. 그러자 눈빛을 거두었다.
기차를 내릴 땐 어떤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남편에게 코 막는 시늉을 했다. 내가 떠나고 나서야 코에서 손을 뗀 걸 보면, 분명 의도가 다분한 행동이다. 나도 보란 듯이 쳐다봤다. 일일이 상대하는 것은 멋이 없는 걸 알면서도, 아직은 피 끓는 청춘이라서.
몸은 꽤나 고단했는지 눈을 붙였지만 잠에 들지는 못 했다. 노래 가사가 희미해지지 않고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잠들고 싶은데 항상 잠은 필요하지 않을 때만 온다. 얄궂게도. 플레이리스트 노래가 바닥날 때 즈음, 내릴 때가 되었다. 초가을 날씨 같던 프랑크푸르 트였거늘, 내리자마자 여름이 되어버렸다. 역시 최남단에 위치해서 그런가, 햇빛이 쨍쨍했다. 프랑크푸르트에 비하면 한산했고, 여유롭고 한적했다. 대도시도 좋았지만 쉼이 필요했던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내리자마자 기숙사에 짐을 풀기 위해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행정실로 향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눈을 마주치자 눈웃음을 지어주었고, 차가운 눈빛의 그 늙은 여자의 잔상이 사라져 가는 듯했다. 차양막 밑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사람들은 큰 짐을 거리며 낑낑거리는 동양인을 보고는 신기했을 것이다. '저 아이는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처음인가 보군.' 시골쥐가 되어 두리번두리번, 눈으로 한번, 카메라로 한번 풍경을 담고 자주 돌아다닐 것을 결심했다. 곧이어 23kg에 달하는 가방을 들고 10분 정도를 걸어가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엔 거리에는 한 명도 없던 국제 학생들이 있었다. 학교 행정실은 신기하게도 학교가 아닌 길거리에 있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어학 코스를 위해 온 건가요?"
"네 맞아요!"
"그러면 이제 여기에 이름을 적고 앉아주세요."
드디어 나에게 사람답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며칠 만에 만났다. 독일 기준으로는 하루 남짓 걸렸지만, 한국 기준으로는 이틀 걸렸던 셈이다. 마주 앉아 학교 기숙사 생활 및 주거 규칙에 대해 듣는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은 언제인지, 수업 듣는 곳은 어디인지. 옆에 앉아 있던 미국 남자는 전형적인 너드였는데, 동양인이 있을 땐 한 마디도 없다가 여자 미국인이 오자마자 태도가 변했다. 이제 이런 미묘한 차별에 대응할 여유는 없었다. 나에게는 그저 이 짐을 푸는 목적만이 존재했다. 주변에 있던 라오스, 인도 학생들이 기숙사에 같이 가자길래 기다렸다 트램을 타고 기숙사로 향했다. 혼자 찾을 체력도, 자신도 없었기에 순순히 응했다. 서로 인스타그램을 교환했는데, 바로 나가서 놀자는 답이 왔다. 무시하고 짐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부분부터는 벌레가 나오는 내용이라 비위가 약한 분들은 넘어가 주세요.
그런데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걱정했던 베드버그가 있었다. 아 젠장.
이코노미 석이 프리미엄 이코노미 석이 된 건 이걸 위한 것이었나.
이제 막 룸메와 말을 트기 시작했고, 친해진 것 같았지만 나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이곳에서 한 달을 살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행정실로 다시 향해 담당 교수님(매우 까다롭고 괴팍한 인상이다)이 나에게 독일어가 편한지, 영어가 편한지 물어봤다. "둘 다 상관없어요." 그런데 벌레가 독일어로 뭐였는지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아 bugs...라고 말하니 "Insekten. Insekten(벌레)이라고 하는 거야." 내 독일어가 서툴어 보였는지, 단어를 정정했다.
일단 상관없고, 독일어로 베드버그가 있으니,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랬더니 "증거"를 내놓으라는 말을 했다. "증거가 있니? 증거가 있어야만 바꿔줄 수 있어. 모든 학생들은 너와 같은 조건이고, 지금까지 베드버그가 나왔다는 말은 없었어." 어라, 내가 분명히 본건 베드버그였는데 헛것을 본 것이었나. 기억을 짧은 순간 되짚어봤다. 아냐. 그건 분명히 베드버그가 틀림없었다.
"네 증거 있어요! 벌레가 정말 확실히 있다니까요!" 엄마에게 베드버그가 있다고 찍었던 영상을 보여줬다.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거라, 베드버그라고 추정하기는 애매했지만, 증거 효력이 약한 이상 감정으로 승부해야 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자기주장을 설득력 있게 하든,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 타국에서 건너와 혼자 사는데 벌레에게 살을 뜯기며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 고압적인 자세로 나올 땐 언제고, 정말 미안하다며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처음이라며 방을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전혀 말하지 말라는 말을 당부했다.
독일식 튀르키예 케밥이라고 할 수 있는 Döner(되너)를 사고, 독일의 올리브영 DM에서 생필품을 장만해서 들어가는데 비가 폭풍우처럼 쏟아지고, 홀딱 젖고 말았다. 우산도 없이 그냥 비를 다 맞고 말았다. 아- 처음부터 액땜하는 걸까. 짐을 챙기기 위해 처음 배정받았던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방 불도 어둡고 습한 데다 모여있는 날파리까지. 아무래도 이곳에 정을 붙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서둘러서 저녁을 해치우고 아쉬워하는 룸메이트와 작별인사를 한 뒤 방을 떠났다. 새로 전달해 주신 열쇠를 가지고 새로운 방으로 떠났다. 추적추적 비 오는 날에 열쇠라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어떤 친구가 도와줬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 문을 여는데만 30분은 걸렸다. 아- 방도 못 들어가는 건지! 다행히 어떤 친구가 나를 발견해 방문을 여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이상하게 아까 그 건물에는 대부분 아시아인이었는데 이 건물에는 유럽인이 많은 듯했다. 기숙사 이름도 유로 기숙사기도 하고. 방문을 열어보니, 공용 주방을 쓰던 이전 방과는 달리, 침실과 주방이 이어져 있어 화장실도 혼자 이용 가능했다. 휴- 이곳에서라도 혼자 방을 쓸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베그버드가 없어서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얼마 없는 소중한 주말을 활용해서 내일은 하이델베르크에 향할 예정이었기에, 이 날도 얼른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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