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by 리나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지하철에서 겪은 혹은 목격하는 에피소드들이 있을 것이다.


그중의 하나를 풀어 보자면,

사회초년생일 때 겪은 일이 있다.

첫 회사는 그 당시 나름 IT계열의 회사로 야근, 주말 근무가 많았다. 사회생활도 처음, 일도 처음.. 야근에 시달리고 늘 피곤에 쩔어 있었다.


내가 이용하던 2호선은 늘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서서 가야 했고, 만약 자리가 생겨서 앉게 된다면 그건 그날의 최고의 행운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은 칼퇴는 아니지만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2호선의 문이 열리는 순간 비어 있는 자리를 발견했다.

속으로 외쳤다.

'아싸~오예~'

다른 사람이 앉을세라 재빨리 앉았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한참 전이라 그냥 요즘처럼 핸드폰을 보진 않고 앞만 보고 앉아서 갔다.


그러다 좀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 옆자리의 남자분이 자꾸 나를 쳐다보다 말다 하는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일까 봐 직접 쳐다보진 못하고 곁눈으로 경계만 했다.


그러다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에 뜬 전화번호를 보니 저장된 번호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일 관련 전화일까 받으려니까 바로 끊어졌다.


그때 옆에 앉은 남자분이 나를 툭툭 쳤다. 좀 놀라서 쳐다봤는데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하..

대학교 4학년 때 소개팅으로 만나서 요즘으로 치면

썸을 타던? 사이였다.

그 친구는 나를 알아보고 전화를 해본 것이었다.


좋게 연락이 끊어진 사이가 아니어서 놀랐다.

그 친구는 복학해서 3학년이었고, 내가 4학년이었지만 내가 조기 취업을 하기 전까지 잘 만났다.

조기 취업을 한 나는 서울에 있었고, 그 친구는 지방학교에 있었지만 연락도 잘 되었고 그렇게 썸을 계속 탔다.(이 때는 사귀는 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그 친구가 알바 하다가 어떤 여자와 바람이 나서 잠수이별을 당했다. 뭐 그런 어이없는 이별을 했던 사이였다.


하필 그 넓고 넓은 서울 땅에서 지하철 옆자리라니...

시간이 2년 정도 되었을 때라 별 감정이 없었지만 그 친구는 엄청 반가워하며 이 상황이 인연처럼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럴 경우 어떤 일이 있었을까?

드라마틱하게 다시 썸을 탔다던가,

주먹 한 방 날려줬다던가,

그런 상상을 해볼 수 있겠지만

별일 없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꼭 밥을 사겠다고 우겨서

건대입구에 내려서 밥을 먹고 악수하고 헤어졌다.


원수라고 까지 할 수 없지만, 이별당했을 당시에는 원수만큼 화도 나고 힘들었었다. 첫 회사에서 사회초년생이 겪는 힘듦에 힘듦을 보태준 겪이였으니까.


옛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 틀린 게 없다.

누구에게 상처 주거나, 손해를 입히거나 해서는 안된다. 결국 만나게 되어 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지하철)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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