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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원 주미영 Sep 02. 2023

'성공한 쿠데타'
누가 왕의 눈을 가렸나?

인조반정 막전막후- 광해군, 최측근에게 배신당하다 

광해군이 즉위한 지 만 15년을 갓 넘긴 어느 날 밤... 권력에서 소외돼 있던 서인 세력은 무장 반란을 일으켜 임금을 용상에서 끌어내렸다그리고 새로운 왕 인조가 등극했으니 바로 인조반정이다연산군을 폐위시킨 중종반정 이후 117년의 세월이 흘러 신하가 왕을 몰아낸 성공한 쿠데타가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거사가 있던 날... 궁궐에서 연회를 베풀던 광해군에게 긴급 보고가 들어왔다그날 밤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급보였다하지만 술에 취한 광해군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 상소를 봤다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정보에 대한 광해군의 반응이었다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시했다신하들이 몇 차례 독촉하고 나서야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런데 반란에 대한 정보는 거사 당일뿐 아니라 지난 수개월간 줄기차게 광해군에게 올라왔다핵심 주동자까지 정확히 적시한 보고였다역모 사건이라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혹하게 다뤘던 광해군이 어찌 된 일인지 이 반란 고변에 대해서만큼은 무신경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인조반정 - 한국사전 KBS 


인조반정이 일어나기 약 3개월 전 대간들이 임금에게 비밀리에 아뢰었다.     


이귀가 김자점과 더불어 서궁(인목대비)을 부호(돕고 보호함)하려 한다는 의논이 사람들에게 전파된 것을 남근(대사헌)이 알고 방해하였습니다.” (광해군일기 정초본 1622년 12월 23)     


그다음 날 기록이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이귀와 김자점을 잡아다가 가두고 끝까지 추궁하여 사실을 밝히도록 하고 (이에 미온적인대사간 유대건 대사헌 남근을 체차(교체)하여 한편으로는 역적을 벌주는 법을 엄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일을 회피한 죄를 징계하소서.” (광해군일기 정초본 1622년 12월 24)     


이에 대한 광해군의 답이다.     


이번 일이 무슨 현저한 근거가 있다고 함부로 아뢰는가... 어떻게 풍문을 가지고 옥사를 일으킬 수 있는가모두 윤허하지 않는다.” (광해군일기 정초본 1622년 12월 24)     


다음 날과 닷새 후에도 신하들이 똑같은 요청을 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이런 가운데 역모의 주동자로 거명된 이귀가 상소를 올렸다정면 돌파에 나선 것이다.     


대간이 신과 김자점이 서궁(인목대비)을 부호(돕고 보호함)하려는 의논을 했다고 하면서 근거 없는 망측스러운 말로... 억지로 신에게 덮어씌우고 있습니다지어낸 말이 아닐 경우 필시 들은 데가 있을 것이니 그 말의 출처를 찾아내어 신과 대질시켜주소서.” (광해군일기 정초본 1623년 1월 4)     


광해군이 잇따라 역모 가능성을 일축하자 조정의 논의는 가라앉고 이 틈을 타 이미 공개된 반란 주동자가 실제로 반란을 준비하는 희한한 상황이 이어진다대간들의 고변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이귀와 김자점을 비롯해 김류최명길 같은 문신과 이서신경진 등 무신이 훗날 인조가 되는 능양군을 중심으로 거사를 준비했다이들은 궁성 수비의 주력 부대인 훈련도감 대장 이흥립을 끌어들임으로써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된다.    

 

그런데 거사 당일에 계획이 누설되면서 최대 고비가 찾아온다반란 참여자 중 한 명인 이후원이 길에서 친구인 이 이반을 만나 그날 밤에 궁궐을 범할 것이라며 동참을 요청한 것이다이 이반은 즉시 이 내용을 조정에 고했다. 하지만 이때 궁궐에서 연회를 하던 광해군은 이 결정적 정보도 무시했다그날의 기록이다.   

 

“이 이반이 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여러 여인들과 어수당에서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하여 오랜 뒤에야 그 상소를 보았는데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이에 유희분박승종이 두세 번 비밀리에 아뢰어 속히 조사하게 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 명을 내렸다.” (광해군일기 정초본 1623년 3월 12)     


여기서 왕이 내린 명은 대신들과 금부당상포도대장도승지병조판서를 부른 것이었다하지만 천 명에 달하는 반란군은 창의문을 통과해 순식간에 창덕궁에 들이닥쳤고... 기다리던 훈련대장 이흥립이 이들을 맞이했다. 광해군은 후원 소나무 숲에서 사다리를 타고 궁성을 넘어갔다젊은 내시에 업혀 사복시 개천가에 있는 의관 집에 숨었다가 붙잡힘으로써 광해군의 15년 치세도 막을 내렸다.   

 



인조반정의 진행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봤는데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역모라면 기를 쓰고 뿌리를 뽑아내던 광해군이 이 때는 왜 그렇게 사태 파악을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김개시라는 궁녀다김개시는 선조 때 궁에 들어와 왕자이던 광해군을 시중들며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선조의 피란 행렬에 동행했다가 왕의 눈에 띄어 정 5품 특별 상궁으로 발탁됐다천민 출신임에도 글자를 익힌 걸 보면 총명하면서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이후 선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하다가 광해군 즉위 후 광해군의 측근이 됐다김개시는 선조에서 광해군으로 보위가 넘어가던 시절 즉 영창대군의 탄생과 함께 광해군이 갈수록 위기에 몰리던 때 수완을 발휘해 광해군이 임금이 되는 데 공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광해군의 정치적 동지이자 비선 실세로 군림하며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김개시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계축일기에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부정적인 묘사 일색이다.     


김 상궁은 이름이 개시로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고가 많았다.” (광해군일기 정초본 1613년 8월 11)     

2015년 MBC 드라마 '화정' 김개시 역(김여진)


김개시는 광해군을 뒷배 삼아 뇌물을 받고 신하들의 인사를 좌우했는데 특히 당시에 핵심 실세였던 이이첨과 결탁했다는 기록이 다수 등장한다     


이이첨이 김개시의 부친에게 접근해 김 상궁과 연결했다두 사람이 공모해 크고 작은 벼슬을 낙점했다이정원이라는 사람은 이이첨김개시와 내통해 이조 참의까지 벼슬이 올라갔다는 등의 내용이다.    

 

광해군 세자 시절영창대군으로 조정의 힘이 쏠리면서 후계 구도가 불확실해지던 때 선조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광해군이 보위를 잇게 되는데 이때 김개시가 약밥에 독을 넣어 선조를 독살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광해군의 측근으로 비선 실세 역할을 하던 김개시가 뜻밖의 행동으로 임금의 판단력을 흐려 파멸로 이끌었다고 한다다음은 연려실기술의 기록이다.     


성지(김자점)는 지극히 충성스러운 사람이며 더구나 한미한 선비에 불과한데 무슨 권력이 있어서 다른 모의를 할 것입니까 하니 광해가 웃으며 끄덕였다.”   

   

김자점이 뇌물을 주어서 김 상궁과 은밀히 결탁하였으므로 김 상궁은 그 억울하다는 것을 힘써 변명하였다그 때문에 광해가 대간의 탄핵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연려실기술 제23권 인조조 고사본말)     


이 기록에 의하면 반란 혐의자들을 조사하라는 요구가 이어지던 때 광해군에게 거짓 정보를 줘 그런 요구를 막아낸 사람이 김개시였다그녀는 이렇게 반정 성공에 결정적 공을 세웠지만 곧바로 처형되고 희대의 악녀라는 기록으로만 남게 된다.    

 

그런데 김개시가 광해군의 절대적 신임을 저버리고 반란 세력과 결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앞서의 기록들은 반정 주동자들이 뇌물을 써서 김개시를 끌어들였다고 말하고 있다정말 돈 때문이었을까어떤 기록도 그와 관련해 속 시원한 답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다만 기록과 관련해 한 가지 기억할 점은 김개시에 대한 묘사와 평가는 결국 광해군을 끌어내린 인조와 서인세력즉 승자의 기록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모든 것이 조작과 날조일리야 없겠지만 광해군의 실세들을 악마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배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천민 출신으로 말단 궁녀로 들어가 조선왕조실록에 이름 석자를 남긴 김개시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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