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염주는 건내며
엄마인 나는 현실적인 공부를 놓치 않으려고 애썼다. 자..보자.
수학은 어느 정도 따라갔지만
영어는 기초부터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이랑 대화를 한다고 한들 지면 영어 문제를 못 푸는 걸 어쩌겠어.
엄마인 나는 도대체 뭘 한 걸까.
난 학교를 믿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아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고, 그저 통지표에 좋은 말만 적혀 있었을 뿐이었다. 학교는 아이가 학습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를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레벨테스트를 받고 어학원에 반 년 정도 다녔다. 매일 영어 공부를 2-3시간을 했다. 초등학생이 그렇게 많이 공부하는 게 싫어서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만 두었다. 초등학생답게 놀라고.
중학생이 되어서 숫자로 돌아온 성적표를 보며 아이의 학습 상태를 알았다.
그 때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미처 몰랐던 사이 아이는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학교를 믿었어야 하는 게 아니라 학원을 믿었어야 했다.
엄마로서 나는 성적표에 적힌 숫자와 세부특기사항 빈칸을 보며 속상해했다. 학급당 20%만 써 주는 세부특기사항. 그 안에 들지 못하는 아들은 과목별 특기가 없는 아이가 되었다. 오로지 알파벳이 과목선생님을 대신해서 10대를 평가했다.
아들은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해야 하는 공부를 마음에 품고자 애썼다. 그게 오히려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는 걸 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해야 하는 건 알지만, 그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이의 발목을 잡는다가 보다.
아이가 엄마보다 더 성숙했다.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그동안 뭐한 거야."
아이는 공부라는 행위를 넘어까지 있는 마음과 싸우고 있었다.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 '사이의 긴장은 어른인 나도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인데 아이는 그 인생 숙제를 스스로 하기 위해 발을 딛었다.
"엄마, 난 벌써 절반 인생을 향해 가는 기분이야."
절반 인생?
이제 철들어 공부한지 경우 5년.
앞으로 공부할 날이 더 많다며 나는 웃으며 말해 주었다.
"엄만 고등학교 때 제일 똑똑했어. 넌 이제 고등학생 준비 시작인데 벌써 낙담이야?"
멋쩍게 웃는 아들에게 한 마디 더 보탰다.
"그래도 너는 네 삶과 인생을 고민하고 있잖아. 그게 교과 공부보다 더 탄탄한 마중물이 될 거야."
그 순간 아들은 조용히 말했다.
"엄마, 염주 하나 줄래?"
나는 가만히 서랍에서 친정엄마가 준 작은 알 염주를 꺼내 건냈다.
"윤상이 형도 끼고 있어. 위로가 되겠지?"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들, 그건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앞으로의 길에서 마음을 붙잡아 줄 작은 약속 아니 믿음 같은 것이 될 거야.
아이는 이렇게 알려고 이해하려고 스스로 발버둥 치고 있는데
왜 어른들은 이런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것인지. 미안하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