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이 아닌 탐구로, 다시 수학을 배우다(2)

아들의 사고가 자라나는 순간의 기록

by 꿈달

어제 푼 실생활 문제를 아들과 수학 스토리텔링으로 수학의 필요성, 재미를 다른 시각에서 관심을 갖도록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 문제 안에 있는 과학, 공학, 기술, 수학, 예술을 ‘탐구’로 끄집어내려고 질문했다. 아들은 생각나는대로 거침없이 대답하고 다시 내게 무드는 식이었다.


나: 한지에서 찾을 수 있는 과학은 뭐가 있을까?아들: 보석함 만들라는데 과학이 어디 있어?
나: 보석함을 왜 한지로 만드는 걸까. 한지는 다른 종이와 다른 뭔가가 있겠지. 한지의 우수함?

나는 국어교과서처럼 대답했고, 질문도 교과서적으로 유도했다.

아들: 그게 왜 과학이야?
나: 한지의 물성을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걸 증명하는 게 과학이지. ‘우수하다’고 말하려면 뭔가와 비교해야 하고.
아들: (연습장 흔들며) 이 종이?
나: 그렇지. 그럼 어떤 방법으로 비교할까?
아들: 만져봐?
나: 그것도 좋아. 또?
아들: 찢어보고, 구겨.
나: 좋아. 오감으로 관찰해 보는 거야.
아들: 소리는 어떻게 들어? 이렇게 흔들어? 한지는 어떤 소리가 나는데?


움직임과 생각하기에 소심했던 아이는 점점 과감해졌다. 우리는 한지 색종이와 연습장 한 장을 같은 크기로 잘랐다. 아들이 배운 거라며 다른 조건, 같은 조건을 따지기에 비교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 ‘탐구’가 되기 시작했다.


아들: 한지가 우수하다고 누가 말하는 거야?
나: 그러게. 비교해 보고, 뭔가 좋거나 마음에 들면 우수하다고 할까?
아들: 말이 안 돼. 좋거나 마음에 드는 기준이 뭔데?


그 말에 문득, 아이 방 한 켠을 도배하려고 사둔 한지가 떠올랐다. 연블루빛의 한지를 꺼냈다. 펄럭거리는 동안 특유의 냄새가 났다.


아들: 이건 무슨 냄새야? 꽤 두껍네. 찢어지긴 해?


아이는 한지를 찢어 보더니 말했다.

“안 찢어지는데?”

“방향 바꿔서 해봐.”

“헐, 진짜 잘 찢어져! 완전 이쁘게 길게!”



그 후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나는 “~해 보자”, “어떻게 하면 될까?”, “좋은 생각이야.”

아들은 “이렇게?”, “뭘 비교해?”, “다음은?”, “헐!”을 반복했다.



탐구 1. 물방울 떨어뜨리기

2절지 한지와 A3 용지에 손가락 끝으로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젖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관찰하고, 젖은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 구멍을 냈다.


한지는 손가락 구멍만 생기는데, A3 용지는 젖은 부위가 함께 찢어졌다. 한지 구멍에는 실오라기 같은 섬유질이 남았다. 말리는 동안 한지는 점점 투명해졌다.

탐구 2. 오감으로 한지 관찰하기

실처럼 보이는 섬유, 앞뒤의 질감 차이, 독특한 냄새를 기록했다.


탐구 3. 찢은 한지 꽈보기

A3 용지는 잘 안 꽈지는데, 한지는 잘 꼬였다.

아들: 엄마, 휴지도 잘 꼬여. 이거 봐.
나: 그럼 그건 휴지의 우수성?
아들: 그러기엔 좀 부족해.
나: 어떤 게 불편한데?
아들: 한지로는 공예품 만들고 벽지도 쓴다며. 휴지로 하면 다 젖어서 없어질 걸.
나: 좋은 발견. 근데 넵킨공예도 있을걸?
아들: 진짜? (검색 중) 헐, 진짜네!

그 사이 우리는 한지의 재료, 제조 과정, 한지 공예품을 영상과 이미지로 함께 찾아보았다.


아들: 한지에서 T랑 E는 뭐야?
나: T는 공학, E는 기술이지. 영상에서 본 공학과 기술은 뭐라고 생각해?
아들: 한지를 더 질기게 만드는 제조 과정이 기술이고 만들 때 사용한 도구들은 공학이야.


아들은 한지 축제에 가서 직접 한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박물관과 축제 정보를 꼬리물기처럼 검색했다.


나는 답이 맞았는지보다

‘헐’이라는 단어를 연발하며 탐구를 즐기던 그 순간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질문에 호기심으로 반응하고

그 자리에서 함께 실험하며 배워나가던

그 분위기 말이다.


한지의 색깔과 질감, 공예품을 ‘아트’로, 필요한 공예품의 설계와 물량 계산을 ‘수학’으로 연결하며

오늘의 수학은 이렇게 끝났다.


연산은 사라졌지만 탐구는 피어났다.

결국, 수학은 공식이 아니라 ‘관심의 시작’이었다.


늘 남는 아쉬움은 교육사조가 일회성으로 끝나지말고 꾸준했으면 한다.

안타까운 건 이런 기대를 교사들에게 하기에 미안하다는 거다. 아이들 생활지도도 힘든데 민원에 시달리는 이 나라 샘들에게 교육의 열정까지 기대한다는 건 가혹하다.


그래도 열정과 명감을 다해 주시는 대한민국쌤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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