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게 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 말투다.
오늘 아들과 말다툼을 했다.
“공부했냐?”고 물었더니 “했어”라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안 한 거였다.
거짓말이었다.
처음엔 실망했고 화도 났다. 하지만 더 속상했던 건
‘왜 내 아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이는 진심을 숨기고 있었다.
왜일까?
아이와 대화를 이어가며 알게 된 건,
“엄마, 나도 해야 하는 걸 아는데 안 하고 있으니까 내가 더 답답해. 그런데 엄마 말투가 너무 화내잖아. 잔소리처럼 들려.”
그 말에 멈칫했다.
사실 나는 화낸 게 아니라 ‘정당하게 지적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내 말의 ‘내용’보다 ‘형식’, 즉 ‘말투’에 눌려 진실을 숨겼다고 말하고 있다.
프로이드(1915)가 말하길 '사람은 위협을 느끼면 방어 기제를 쓴다’라고.
아이가 거짓말을 택한 건 어쩌면 진심을 말했을 때
엄마로부터 자신이 받게 될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투는 아이에게 ‘혼나는 신호’가 되었고 아이는 거짓말이라는 방어막을 쳤던 것이다.
존 가트먼(John Gottman)은
‘부모가 어떻게 말하느냐’가 아이의 마음을 열고 닫는 결정적 열쇠가 된다고 했다.
나는 오늘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금의 한 줄>
진실을 말하게 하는 건 단지 ‘옳은 말’이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말투’다.
오늘 내 과제는
아이와 다시 말의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