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진정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정답을 맞히는 아이가 아니라 질문을 잘하는 아이로 자라는 것

by 꿈달

아들과 함께 공부하면 종종 토론이 길어진다.

이번 기말고사 기간에는 특히 그랬다. 한자 수행평가였던 성선설, 성악설에 대한 의견 쓰기를 시작으로 수업보다 이야기가 더 많았다.


한자시험까지 보고 온 날, 아들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엄마, 한문시간에 시험에 나오는 문법을 아는 게 중요한 걸까? 아니면 공자님 이런 옛날 사람들이 했던 말을 음미하는 게 중요한 걸까?


시험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말이을 이(而)’의 쓰임, ‘갈 지(之)’의 해석, ‘아니 불(不)’의 독음.


나는 수행평가를 준비할 때 간단히 정리해 주고 삼일에 걸쳐 벼락치기로 한자를 그림처럼 떠올리며 외우도록 도왔다.


아들은 시험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다잖아. 근데 내가 기쁜 건 배운 걸 이해해서가 아니라 ‘어? 금방 외워지네. 나 천재인가?’ 이런 거였어.

나는 웃어버렸다. 중학생 특유의 자신감과 솔직함이 귀여웠다. 그러나 이어진 말은 내 마음을 멈춰 세웠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계속 외우고 또 외웠는데 의외로 틀렸더라. 나는 그림처럼 떠올려서 다 맞았어. 근데 있잖아, 엄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같이 음미하게 해줬다면 다른 애들도 재밌게 배우고 시험도 더 잘 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

왜 수업시간에 꼭 이거 시험에 나온다라는 말이 필요한 거야?

그 질문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정답을 맞히는 법일까,

아니면 생각하는 법일까.


학생에게 배움의 기쁨은 정답이 아니라 이해에서 온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자는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익히는 대신 맞히려 한다.


시험을 위해 배우면 기억은 짧고 의미는 없다.


하지만 ‘왜 배워야 하는가?’를 묻는 순간 그 아이는 이미 배움을 시작한 것이다. 아들은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었다. 군자와 소인을 자신의 경험으로 연결하고 문장을 외우는 대신 이해하려 하고‘배움의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 고민하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시험을 잘 보는 아이보다 사유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교에서 진정 배워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하는 태도다. 오늘 아들이 배운 것은 문법이 아니라 배움의 본질이었다.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수업. 그런 수업이 아이를 자라게 한다고 믿는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공부를 잘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배움을 하고 있는 거야.”


학교가 가르쳐야 할 것은 정답을 외우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묻는다.


알면서도 왜 이렇게 가르치는 게 어려운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성악설이라니~~그 아이의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