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싫어하는 사람, 대중이 좋아하는 눈빛의 비밀
트라우마를 이겨낸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상처를 정면으로 부딪혀 극복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 상황이 찾아오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황은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내 감정과 생각이 나를 그 순간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주문을 건다.
이 또한 지나갈 거야.
너는 이미 그 때의 너가 아니야.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은 똑똑한 사람을 좋아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적당히 알고, 적당히 조용하며,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 튀지 않고, 무난하고, 때로는 모순된 조건을 가진 사람. 바른 말을 하는 사람보다 말수가 적고 말 잘 듣는 사람을 더 편안해한다.
물론 모든 조직,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경험상 대략 88퍼센트(12퍼센트는 특별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들었던 강의가 생각남. 그래서 난 특별한 나머지를 일반적 대중적이라고 표현함)는 그렇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을 ‘일반인의 법칙’이라 부른다. 대부분은 평범함을 원하고 안전을 선호하고 누군가가 너무 빛나면 마음 한구석에서 불편함이 올라온다. 혹시 내 자리를 탐내는 건 아닐까, 혹은 나보다 잘난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작은 두려움들.
그 두려움이 조직을 흔들고 관계를 흐린다.
대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박정민의 눈빛이 화사와 함께 회자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 눈빛이 좋다.” 그런데 문득 생각했다. 만약 그가 ‘훈남 배우’였다면, 과연 그 눈빛이 지금처럼 사랑받았을까? 사람들은 특별한 매력보다 ‘편안함’이 깃든 친절한 눈빛을 원한다. 너무 잘난 사람의 친절보다 우리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의 따뜻함에 더 큰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박정민의 눈빛이 닿는 지점과 화사의 솔직함이 함께 빛나는 걸지도 모른다.
조직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대부분 인정받고 싶고 소속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뒷담화로 공감대를 만들고, 비슷한 사람 옆에 서서 안도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찾는다. 똑똑함보다는 ‘내 편’을 원한다.
뭐가 옳고 그른지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본능이 그런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