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갯네와 비린내가 솔솔 풍기는 바닷가 곰소항이다. 한가히 노는 갈매기 때들은 누가 봐도 아무 일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내가 찾아 간 그 시점에 바닷물은 갯벌에 물든 회색빛을 띠며, 넓은 바다는 물양이 절반밖에 안 돼 보였었다. 썰물 때인지, 아님 밀물 때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난이도였다.
곰소항은 젓갈이 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곰소항 주변에는 젓갈 타운이 자리하고 있어 젓갈의 고장답게 그 자부심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은 부안에 거주하고 있어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40여 년 전 친정엄마랑 광주에서 이곳까지 와서 새우젓, 멸치젓, 각종 건어물을 사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의 곰소항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풀치가 길게 몸을 늘어 뜨리고 철봉에 메어 달리기라도 하듯 해풍을 맞아 꼬들꼬들해져 간다. 풀치는 작은 갈치 말린 것을 뜻한다. 풀치조림은 부안사람들이 좋아하는 향토음식이다. 풋호박을 넣고 얼큰하게 지져먹으면 밥 한 그릇이 뚝딱 없어지는 최고의 맛이다. 어전 한 곳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다에서 잡아 올린 갖가지 말린 생선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굴비가 좋아 보여 조금 샀다. 저녁에 구워 먹으면 맛있는 밥상이 될 것 같은데 굴비 냄새가 온 동네를 홀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ㆍ
곰소항을 오게 된 목적은 나름 따로 있었다. 김장 때 쓸 젓갈이 필요해서다. 단골 젓갈집을 찾아갔다. 새우젓 한 통과 멸치젓 한 통을 샀다. 나에게는 단골 집이지만 사장님은 그냥 낯선 손님처럼 대하신다. 그곳은 관광객이 많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몰라보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그래도 친절히 젓갈을 꾹꾹 눌러 담아 주셨고 거기에 창난젓도 덤으로 조금 주셨다. 이제 젓갈을 샀으니 김장준비는 거의 된 셈이다. 곰소항 덕분에 맛있고 좋은 젓갈을 살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 것 같아 만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