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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틈새

by 김숙희

고즈넉하고 쌀쌀한 아침이다. 멀리 보이는 들녘은 아침 운무가 운치를 더 해준다. 그 사이로 내리쬐는 반짝인 가을 햇빛은 금빛처럼 아름답다. 작년에 떠났던 기러기들도 어느덧 돌아왔다. 브이를 그리며 광활한 창공을 날아서 어디론가 가는 중이다.



시골 풍경은 여기저기에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앞집 늙은 호박도 누렇게 영글었고, 옆집 감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대봉감도 차가운 기온에 붉게 물들어간다. 들녘은 황금물결로 넘실거릴 때지만 벼는 병이든 게 많다고 한다. 요즘 반갑지 않은 가을비가 자주오기 때문이다. 추수를 앞둔 농부들은 속이 타고 있다. 그래도 해가 반짝 뜰 때면 바쁜 마음은 논으로 달음질한다. 이러면서 논바닥을 드러내는 논들이 하나씩 늘어만 간다.


우리는 텃밭 말고는 농지가 없다. 귀촌을 했기 때문이다. 텃밭에는 한창 김장배추 속이 채워지고 있다. 따뜻한 남쪽이라 김장은 한 달 후면 시작할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속이 꽉 찬 배추로 김장을 해서 일 년 밥상을 맛있게 채워줄 것이다.

아삭거린다는 품종의 무가 뿌리를 내려가며 잘 자라고 있다. 아삭거린다는 무는 씨앗 상회 사장님이 자신감 넘치게 권했던 품종이다. 이분은 신뢰할 만한 분이라 꼭 그럴 거라고 믿어진다.


뿌려놓은 무 밭에 무순을 속하냈다. 지금 잘 씻어서 소금에 절여 놓고 글을 쓰는 여유를 부려본다.


가을이 눈에서 마음으로 들어온다. 풍요로 채워주는 가을자락에 마음은 차분해지고 시를 쓰고 싶은 시심이 일어난다. 이 기분이 떠나지 않도록 꼭 붙들고 싶다.


절여놓은 무순을 한번 뒤집고 와서 다시 마무리를 해야겠다. 무순김치를 절여놓고 그 사이 기다리는 동안 짧은 글을 써 보았다. 맛있게 담근 무순김치는 며느리와 딸에게 택배로 보낼 예정이다. 틈새로 보이는 가을을 엿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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