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by 김숙희


이등병

군복을 입은 군인이 앞에서 다가오고 있다. 얼핏 만 봐도, 입고 있는 군복이 몸에 어색하다. 그의 얼굴은 낯선 얼굴이다. 왼쪽 가슴에 새겨있는 이름도 처음이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모자에 붙어 있는 작대기 하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그리운 얼굴이 오버랩된다.

고2 아들이 말했다. “ 엄마 저도 삼 년만 있으면 군대 가요.” 마치 군인이 된 양 아들의 목소리는 의기양양했다. 듣고 있는 엄마도 그런 아들이 제법 듬직하게 느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었다. 아들들이 군대를 가면 왜 부모들은 섭섭해하고 울게 되는 것인지. 그런 마음은 추상적일 뿐 와닿지는 않았다.


아들이 22살이 되던 해 입영통지서를 받고 군에 입대를 하였다. 겨울이 깊어지고 있어서 마음은 염려가 되었다. 입영 통지서를 받고 난 후 아들의 마음은 우울해 보였다. 김광석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매일 들으며, 다가오는 입영날짜를 무겁게 대기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올 때면, 섭섭한 마음이 들고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 노래는 구구절절이 애가(哀歌)가 되어 귓전에서 메아리로 남는다.


지난밤에 잠을 설쳤다. 아침식사는 여느 때와 다르게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준비하였다. 가장 좋아하는 두부조림이랑 불고기로 밥상을 차렸다. 앞으로는 나라에 식단의 자유를 반납해야 하니, 엄마의 마음은 많이 안타까웠다. 이제는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 서글픈 시간이 아들에게 도래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떠날 채비를 마치며, “엄마 다녀 올 게요” 하며 문 밖을 나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 또 한 번의 인사를 하고 가는 아들의 등을 바라보며 계속 울고 서 있었다.


집안 여기저기는 아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들의 빈 방은 썰렁한 냉기만 감돌뿐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아들이 입고 갔던 옷이 포장되어 돌아왔다. 옷과 함께 짧게 쓴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는데, 짤막한 사연 속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입대한 지 이틀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100일이면 다가 올 휴가를 고대하고 있었다.


입대 후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다. 철원의 3 사단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였다.

“보고 싶습니다”라는 절실한 한마디가 우리 가족의 마음을 녹였고, 가족들도 많이 보고 싶어 했다. 자유를 박탈당한 현실 속에, 지나온 시간을 막 쓴 것 같다는 회한과, 그동안 못 느꼈던 부모님의 사랑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군대 가면 효자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번 편지에도 100일 휴가 때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설을 며칠 앞두고 아들이 많이 그리웠다. 면회를 허락한다면, 좋아하는 깻잎전이랑 불고기 등 몇 가지 음식들을 챙겨서 아들 얼굴을 보고 올 텐데, 훈련병이라서 아직은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 마음을 꼭 붙잡는다. 설을 보내고 아들의 편지가 도착했다. 설날에 쓴 편지다. 훈련소에서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설날이 이른 줄도 모르고 살았노라고 한다. 정말 가족이 그립고, 어머니 밥이 그리웠다고, 100일 휴가를 나가면 무지하게 잘 먹을 자신이 있다고 하며,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적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라는 인사였다. 그런 후 편지의 글씨 채가 변형이 생겼다. 편지를 쓰다가 눈을 치우고 와서 다시 쓰는데, 철원은 현재 영하 22도의 강추위여서, 손이 얼어 글씨가 잘 안 써진다고 했다.


아들은 백골부대 수색대로 뽑혔고, 자대 배치를 받아 비무장 지대 GP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부대 이름은 백골부대, 또한 군 근무지는 비무장 지대 GP,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하였다. 처음엔 편지를 받고 너무 놀랐다. 순간 전쟁영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음번 이등병의 편지가 무척 궁금해진다.


꿈에 그리던 이등병이 100일 휴가를 나왔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반가움으로 서로는 얼싸안았다. 아들의 모습은 입대 전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선임들이 하루에 여섯 끼니를 먹게 하였단다. 휴가 나가면 부모님께 안심을 시키기 위한 발상이었다. 휴가 나온 이등병은 가득 찬 군기 때문인가, 엄마의 뒤를 따라다니며 안절부절못하였다. 잠도 깊이 자지도 않았다.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군대 훈련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9박 10일의 꿈같은 휴가를 마치고 귀대할 시간이 돌아왔다. 이등병의 얼굴은 무거워 보인다. 그래도 이등병은 이렇게 말했다. “잘 마치고 와야지”하며 군으로 돌아갔다. 가는 모습이 어찌나 짠하든지, 하지만 내 마음도 아쉬움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보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해서 새삼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듯, 국방의 의무를 감당해 주는 장병들의 고마움을 나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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