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사과 두 개가 놓여있다. 품종은 부사인데옅은 붉은색으로 옷을 입어서맛을 보지 않아도 약간의 신맛과 떫은맛이 입안에 남게 될 것이라고 확신이 된다.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 곁에서 간절한 눈빛을 쏘며 이렇게 말한다.
"좀 더 있으면 추석에는 먹을 수가 있겠지?" 하며 사과가 하루빨리 익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올 추석은,9월 중순도 채 안되게 있어서 너무 일찍 찾아온다는 느낌이 든다.반소매 옷을 입었는데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직 여름의 꼬리는 길게 남아있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은 정직하여 하늘은 더 파랗고 더 높아졌다. 넓은 들녘에도 누런빛이 띠기 시작한다.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보니 흐뭇해지고 풍요로운 선물을 안은 듯하다.
사과의 빛깔은 좀처럼 짙어지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다. " 사과가 10월이 돼야 익으려나?" 하고 오늘도 사과나무 곁에 서서 중얼거리고 있다. 그러더니 못난이 사과를 한 개 뚝 따서 먹어보라고 권한다. 역시 시고, 퍽퍽해서 바로 뱉었다. 간절한 염원은 언제쯤 끝날까. 기다리는 시간이 아득한 터널을 지나는 것만 같다.
추석 당일 아들 가족이 왔다. 경기도에서 이곳 부안까지 9시간을 도로에서 보냈다고 한다. 지쳐있는 모습들을 짠하게 바라보며 , 부모가 그리워 긴 시간을 버텨냈던, 아들과 며느리, 9개월짜리 예쁜 손녀가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9시간 긴 정쳬 속에서 아기는 보챘을 것이고,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타 먹여야 했던 모습들이 상상이 된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고마움이 우러나온다.
남편이 그렇게 익기를 바라던 사과는 아직도'도진개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주고 싶어 사과 두 개를 따서 식탁에 놓으며 하는 말,
"먹어봐라. 이래도 맛은 들었어." 한다. 그러나 두 개의 사과에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그대로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사랑은, 숨은 그림이 되어 사과 속 어디엔가 숨어있다.겉은 옅어 보이고, 맛은 덜 익은 맛같지만,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꿀보다 더 달콤하고, 더욱 진한 향기가 되어 사과 속 어디엔가 꼭꼭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