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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e Freack Jan 30. 2023

“와인 없으면 못 참지” 백년전쟁 끝에 태어난 와인

포트와인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현직 기자가 매주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1415년 10월의 어느 날, 프랑스 북부 사방이 숲으로 둘러쌓인 어느 평지에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돕니다. 전날 비까지 내리면서 진창이 된 이곳에 한 무리의 병사들이 제각기 무기를 쥐고 긴장한 표정으로 맞은편 구릉을 응시합니다.


반대편에는 말을 탄 기사들이 나타납니다. 얼핏 봐도 두 배는 훌쩍 넘을 듯한 병력에 중무장까지 했습니다. 구릉 위에서 상대를 내려다본 기사들의 눈빛이 전투 전의 긴장감에서 비웃음으로 바뀌고, 곧이어 이들은 지휘관의 돌격지시에 일제히 적을 향해 말을 내달립니다.


하지만 진흙탕으로 변한 땅 때문에 말들은 달리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져버렸습니다. 기마 돌격의 이점이 사라지고, 중무장 갑옷은 안그래도 진창 때문에 서있기도 힘든 기사들을 짓누릅니다. 이때를 노려 주변 숲에 숨어있던 병사들이 최소한의 갑옷만 걸친 가벼운 몸으로 나타나 그들을 도륙하기 시작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킹: 헨리5세’의 하이라이트인 아쟁쿠르 전투 입니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는 이 전투를 포함해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세계사는 이를 ‘백년전쟁’으로 기록합니다만, 와인러버들은 ‘와인전쟁’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와인전쟁으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전쟁이 당시 와인산업에 여러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거든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전쟁을 통해 탄생한 와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면 생각나는 달콤한 매력, 바로 ‘포트와인(Port wine)’ 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보르도 쟁탈전


세계사에서 분석하는 백년전쟁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와인러버들이 백년전쟁을 와인전쟁으로 부르는 이유 중 하나는 ‘가스코뉴 지배권’이 얽혔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남서부 지역인 가스코뉴(Gascogne·現 Nouvelle-Aquitaine) 지방에는 유럽 최대의 와인 산지인 보르도가 속해있죠.


땅이 혼인의 지참금 격으로 오가던 당시 시대 상황에서 가스코뉴의 소유권이 영국왕에게 넘어가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스코뉴는 전 유럽을 상대로 한 와인 무역으로 프랑스 전역의 세금을 합친 것보다 많은 세금을 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거든요.


앉아서 노른자를 뺏긴 프랑스왕은 결국 가스코뉴를 무력으로 몰수하고, 바다 건너 영국왕이 이에 대응해 군대를 파견하면서 백년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됩니다. 전쟁은 두 나라에서 다섯 왕이 왕위를 계승하는 동안 이어지다 결국 성녀 잔 다르크(Jeanne d’Arc)의 기적적인 활약에 힘입어 프랑스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포트와인은 이런 맥락 속에서 탄생합니다. 영국인들은 와인에 ‘환장하는’ 사람들인데, 브리튼섬에서는 기후와 위도 때문에 포도나무의 다년 재배가 불가능했거든요. 영국은 가스코뉴를 뺏기면서 막대한 부는 물론이거니와, 와인을 공수할 창구를 잃어버린 겁니다. 결국 그들은 프랑스가 아닌 다른 지역의 와인을 수입하기로 합니다.


꿩 대신 닭? 보르도 대신 선택받은 포르투


그렇게 영국의 선택을 받은 지역은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Porto)였습니다. 포르투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포르투갈 북부의 중심지이자 제2의 도시였는데요. 도시를 관통하는 도우로(douro) 강을 따라 포도밭이 넓게 퍼져있습니다. 여기서 자란 포도로 양조한 포도주를 비스케이만을 가로질러 브리튼 섬으로 공수해오는 것이죠.


하지만 순조롭게 대체지를 찾은 듯 했던 영국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합니다. 포도주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애써 운송한 와인들이 죄다 식초로 변해버린 겁니다. 따뜻한 바닷바람과 뙤약볕 아래 망망대해에 바람에 의지해 이동하던 범선의 험한 뱃길을 견디지 못한거죠. 당시 기술로는 저온을 유지할 방법이 없었을테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영국 상인들은 고민합니다. 운송이 힘들더라도 스페인의 리오하(Rioja)나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같은 내륙에서 와인을 싣어오느냐, 아니면 포르투에서 영국까지 와인을 안전하게 유통할 방법을 찾느냐를 놓고요. 근데 의외의 지점에 해답이 나오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상인이 ‘뱃사람들은 어떤 술을 먹는가’를 생각하다 그들이 마시는 브랜디는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브랜디는 과실주인 와인을 증류한 증류주입니다. 그래서 더 독하고 도수도 높죠. 상인은 생각합니다. 브랜디가 도수가 높아서 상하지 않는 것이라면, 와인도 도수를 높이면 되겠다고요.


마침 브랜디는 포르투갈의 특산품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하셨던 분이라면 아실텐데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의 주요 특산품 중 브랜디가 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의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품질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별로 찾는 사람이 없으니, 차라리 2차 가공을 해서 브랜디로 팔았던거죠.


양조 중 브랜디를 섞어 만든 주정강화 와인


하지만 일반적으로 와인을 양조하는 방법으로 도수를 높이는 것은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알코올 도수 15도를 넘어가면 와인 내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효모가 사멸해 발효가 멈추고 알코올 도수가 더 이상 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이 알코올로 전부 또는 충분히 변하기 전에 도수가 한참 높은 브랜디를 강제로 첨가하는 방식으로 당도와 알코올 도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정강화 와인을 오크통에 담아 도우로 강을 따라 내려보내면서 좀 더 오크의 향미를 가미해 숙성시키고 포르투 항구에서 출하, 영국으로 수출하면서 포트 와인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뱃사람들이 항해 중 와인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시던 브랜디를 넣었다’고 하는데요. 이는 사실 상업적인 스토리텔링에 불과합니다.


포트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하는 ‘주정강화’ 과정은 상품화가 끝난 다음이 아닌 양조 중간에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양조가 완료된 와인이 출하되기 때문에 ‘뱃사람들이 브랜디를 넣었다’는 주장은 아예 성립할 수 없는 셈이죠.


도수가 높지만 달콤하고 묵직한 디저트 와인


이렇게 만들어진 포트 와인은 알코올 도수 14도 내외의 다른 와인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뽐냅니다. 우선 알코올 도수가 18도 내외로 높아졌습니다. 요새 소주가 17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제법 독해진 것이죠.


도수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사멸해버린 효모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당분들도 그대로 남아 달달하고 묵직한 맛을 남기는 특징 때문에 포트와인은 디저트 와인으로 많이 찾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서 홀짝거리기 좋은 술로 명성을 떨치죠.


요즘처럼 연일 한파가 계속되는 날에 떠오르는 술이기도 합니다. 몰아치는 강풍과 추위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움츠러드는 겨울밤, 뜨끈한 집에서 달콤한 포트 와인 한 잔 하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경제신문 프리미엄 코너에 연재되는 주간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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