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토스트
언제나 진리, 나만의 소울 푸드를 추억하며
"특별한 맛과 향은 본능에 각인되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 기억 속에 자동 재생된다. 나의 소울푸드는 그렇게 내 일부가 되어 평생 잊혀지지 않는 의미를 가진다. - by m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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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엄마를 따라 을지로 평화시장에 간 적이 있다. 어린 나를 데리고 빠르게 물건을 사야 했던 엄마는 붐비는 시장의 좁은 골목들을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이셨고 그저 모든 게 신기했던 나는 엄마 손에 이끌리면서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기 바빴다. 시끌벅적한 상인들의 목소리, 골목에 빽빽이 들어찬 손님들,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 내 평생 그렇게 정신없이 많은 사람들과 옷 가게들을 본 것은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피곤함과 배고픔이 몰려와 집에 가자고 투정을 부리는 나에게 엄마는 간식으로 토스트를 사준다고 하셨다. 집에서 늘상 먹던 잼 바른 식빵을 떠올리며 심드렁한 표정이 된 나를 엄마는 시장 안의 한 좌판 앞으로 이끄셨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가 빠른 손놀림으로 토스트를 굽고 계셨다. 뜻밖에 군침 도는 고소한 냄새와 처음 보는 토스트 만드는 모습에 나는 금세 눈이 동그래져서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산 높이 쌓인 사각형 식빵과 계란 판들, 큰 비닐봉지에 담긴 채 썬 양배추와 당근, 양파, 그리고 사각형의 고체 마가린. 재료는 분명 단순해 보였는데 할머니의 숙련된 모습과 분위기가 묘하게 나를 압도했다. 엄마가 계란토스트 두 개를 주문하자 할머니는 곧바로 넓은 사각철판에 마가린을 슥슥 바르고 토스트 식빵 두 장을 척 올리셨다. 그리고 큰 플라스틱 컵에 계란을 탁 깨더니 야채 한 줌을 넣고 소금을 약간 뿌린 다음 나무젓가락으로 휙휙 재빠르게 섞었다. 철판 다른 한쪽에 다시 마가린을 바르자 이미 달구어진 철판에서 녹은 마가린이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거기에 잘 섞은 계란야채 믹스를 동그랗게 부어 놓자 계란이 맛있는 소리를 내며 가장자리부터 익어나갔다. 이렇게 두 개의 계란야채 믹스를 올리고 동시에 다른 쪽에 있는 식빵들이 타지 않도록 마가린을 발라가며 뒤집어서 노릇하게 구워냈다. 야채가 들어간 계란믹스 역시 마법(?)의 마가린을 수시로 철판에 발라주며 타지 않게 뒤집개로 뒤집어주고 중간을 지그시 눌러 계란 물이 골고루 익도록 조절했다.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지극히 빠르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나는 한 편의 공연을 보는 것 같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드디어 영원과 같은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할머니는 바삭하고 촉촉하게 구워진 식빵에 하얀 설탕을 회오리 모양으로 동그랗게 뿌린 다음 예쁘게 잘 익은 야채계란 패드를 한 장 올리셨다. 그리고 식빵과 계란을 그대로 대각선으로 접어 종이컵에 탁 꽂아서 나에게 내미셨다. 내 작은 손에 받아 든 따뜻한 종이컵의 온기와 고소한 계란토스트의 향은 지금도 생생히 머릿속에 떠오른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도 잊은 채 나는 종이컵에 담겨 나를 기다리는 계란 토스트를 호호불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마가린에 구워진 바삭하면서 촉촉한 식빵 속에 야채의 식감이 살아있는 따끈한 계란패드와 달콤한 설탕의 조화라니!! 이 단순함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조합의 묘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투박하고 허름한 시장 속에서도 진리의 맛은 존재했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서 재생되고 있다.
그 후로도 내 인생에는 수많은 화려하고도 다양한 계란 토스트들이 있었지만 젊은 날의 엄마와 처음 갔던 을지로 시장의 단순한 계란 토스트만큼 맛있었던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의 맛이 그리울 때면 나는 집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계란 토스트를 만들어 먹으며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지금의 내가 간절히 바라고 추억하는 것은 과연 을지로 시장의 계란토스트의 맛일까 아니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때의 내 어린 시절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