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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Apr 09. 2023

남대문 손칼국수

언제나 따뜻한, 나의 힐링 푸드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 내리면 나의 가슴은 기대와 흥분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5번 출구 계단에서부터 느껴지는 생생한 시장의 활기. 남대문 시장이란 그런 곳이다. 특별히 물건을 사지 않아도 좋은, 언제나 정겹고 그리운 나만의 소란한 안식이 있는 곳.


붐비는 시장의 인파 속에서 나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고급스럽고 세련되진 않아도 부담 없이 손에 쥘 수 있는 수많은 소소한 행복들이 나를 풍요롭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까? 문득 느껴지는 허기에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를 기억해 다.


가메골손왕만두. 5번 출구를 나와서 50미터쯤 내려가면 보이는 작은 만두집이다. 왕만두로 꽤나 유명한 곳이지만 나는 이 집의 손칼국수를 더욱 애정한다. 가장 마지막에 온 것이 아마 2021년 봄쯤이었을 것이다. 위와 대장내시경을 마치고 허기와 피로로 탈진할 것 같던 그날, 나는 이 집의 칼국수가 너무나 그리웠다.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데 내 후들거리는 발걸음은 어느새 지하철을 타고 회현역에 내리고 있었다. 그때 먹었던 칼국수의 맛이 잊혀지지 않아서 나는 오늘 또 이곳을 찾았다.   


변함없이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저만치 보이는 만두집의 뽀얀 연기를 보니 왠지 고향집에 온 듯 반갑고 가슴이 울컥했다. 좁다란 만두가게 안에는 큰 통에 만두소를 담아놓고 즉석에서 왕만두를 빠르게 빚어내고 있었다. 쟁반에 켜켜이 놓인 동그란 만두들은 차례로 찜통에 들어가서 뽀얀 연기를 내며 먹음직스러운 자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줄줄이 포장을 기다리는 손님들 사이를 뚫고 익숙하게 내 집마냥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포장판매만 할 것 같은 좁은 만두가게 안에 2, 3층 홀이 숨어있는 것이 반전이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는 제법 가파른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양쪽 벽에 식탁을 붙여놓은 소박하고 작은 공간이 나타난다. 3층은 좌식 테이블이 있는 방이어서 혼자인 경우는 대부분 2층에 자리를 잡는다.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에 앉으면 입구에 서있는 직원 아주머니가 와서 주문을 받는다. 칼국수는 기본이고 김치 왕만두도 주문할까? 잠시의 갈등이 있었지만 혼자서는 감당 못할 양이다. 물과 김치가 세팅되고 얼마의 기다림 후, 드디어 내 앞에는 한 그릇의 따뜻한 위로가 놓인다.         


김이 나는 멸치육수에 울퉁불퉁한 수타면과 유부, 김가루, 양념장이 올려진 일견 너무나 평범한 이 음식이 뭐라고 나는 그토록 많은 시간을 연모해 왔던가. 순간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고 나는 한 그릇의 칼국수와 조용히 대면했다. 마치 하나의 경건한 의식처럼 천천히 수저를 들어 뜨거운 국수를 먼저 한 젓갈 입으로 불어넣는다. 입안에 씹히는 쫄깃한 수타면의 식감과 딱 알맞은 육수의 간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이번에는 양념장을 조금 풀고 유부와 김 가루를 얹어 면을 건져 올린다. 후루룩 입 안에 가득 차는 얼큰하고 고소 맛의 향연에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빨라진다. 줄어드는 면발을 아쉬워하며 국물도 한 숟가락 떠먹어보지만 피할 수 없이 끝은 오고야 만다. 이미 배가 가득 찼음을 느끼더라도 마지막 한 젓가락의 국수와 국물까지 모두 비워야 끝나는 게임이다.   


행복이 풍선처럼 터지지는 않겠지? 칼국수 한 그릇의 위로가 준 풍요로움과 따스함을 안고 남대문 시장을 나선다. 변하지 않는 맛이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오늘을 살아갈 힘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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