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ica Aug 05. 2022

나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2)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나는 결국 투쟁에서 승리했다. 여름방학 동안 집에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소도시의 할머니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할머니와 살고 있던 노처녀 고모의 손을 잡고 시내의 제법 큰 미술 학원을 방문한 첫날은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프랑스에서는 개똥도 샤넬 No.5 향기가 난다고 했던가? 깡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도시의 풍경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멋지게만 느껴졌다.


난생처음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다는 두려움보다는 드디어 바라던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다는 기쁨과 설렘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모가 상담과 등록을 마치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본 미술 학원의 풍경이란! 내 또래로 보이는 얼굴이 하얀 아이들이 커다란 테이블에 모여 앉아 기와집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다. 경과 비슷한 아이들이 사방에서 수채화로 기와집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팡파르가 울리며 내가 제대로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인근 문구점에서 신나게 미술용품을 구입하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첫날의 흥분과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년째 같이 미술 학원을 다니던 하얀 백조 무리들에게 시골에서 온 까마귀 이방인 소녀는 무관심 혹은 냉대의 대상이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초급 테이블에 혼자 앉아 단조로운 기초 드로잉을 연습하며 옆 테이블의 수준 높은 풍경화를 그리는 백조들을 부러운 눈으로 힐끔거렸다. 언제쯤 나도 멋진 기와집을 그릴 수 있을까?


얼굴이 하얀 도시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엄마가 장터에서 사준 내 분홍 스커트와 과장된 레이스 블라우스는 유난히 촌스럽게 느껴졌다. 괜스레 옷을 만지작거리며 용기를 내어 조금 순하게 생긴 백조1 에게 아껴둔 사탕을 내밀었다.


“너, 이거 먹을래?”


“아니, 엄마가 불량식품 먹지 말랬어”


즉각적인 거절에 민망하게 도로 자리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사탕을 낚아채는 검은손이 있었다.


“그럼 내가 먹는다?”


놀란 얼굴로 돌아보니 미술학원에 매우 이질적인 존재 한 명이 싱글거리며 내 사탕을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뭐랄까. 시골 학교의 씨름부 에서나 본듯한 그을린 얼굴에 구부정하게 큰 키, 검은 곱슬머리에 장난기 가득한 까마귀 한 마리가 백조 무리 속에 섞여있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그림을 잘 그리는 걸까? 그 아이의 스케치북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충격으로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시대를 잘못 만난 피카소의 그림이 그랬을까? 아름다운 색색의 풍경화들 사이에 블랙홀과도 같은 우주의 절단면을 본 듯 난해한 검은 선들과 곡선의 형태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나의 부족한 안목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천재이던가, 넘쳐나는 혈기를 미술로 정화시키고자 엄마 손에 억지로 이끌려온 미래 스포츠 꿈나무이던가.


까만 그 아이는 역시나 까만 나를 동류라고 인식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때부터 아예 내 옆자리에 터를 잡고 친한척하며 나를 귀찮게 했다.


“물통 같이 써도 돼?”


“아니-”


검은색을 너무 사랑하는 그 아이와 물통을 썼다가는 나의 그림도 온통 검게 될 것이었다. 선생님도 어쩐 일인지 그 아이가 자유로운 창작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멋진 기와집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멀리 시골에서 올라온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이 시대를 앞선 피카소와의 거리 두기를 시전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겨우 수채화를 시작하고 물감 섞는 법,

그라데이션과 중첩의 기법을 막 연습하려는데 집에 돌아갈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애초에 난이도가 있는 기와집은 1년 이상은 꾸준히 배워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꿈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며, 앞으로 어떻게 위대한 화가로의 길을 헤쳐나가나 마음이 암담해졌다. 그래서였을까? 그날따라 쉬는 시간에 잡기 놀이를 하며 걱정 없이 신나게 노는 백조 무리들과 함께 어울려보고 싶었다.


무리 중에 키가 작고 통통한 바가지 머리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여자아이들이 “돼지~”라고 놀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평소처럼 가만히 보고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그 아이에게 “돼지~”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장난으로 잡는 시늉만 하던 그 아이는 순간 나에게 무서운 표정으로 달려와 버럭 화를 내었다. 뜻밖의 격한 반응에 놀란 나는 그간의 서러움까지 겹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선생님이 와서 중재를 했지만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고, 이런 나를 검은 피카소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훌쩍이며 그림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내 옆자리의 피카소가 벌떡 일어나더니 바가지 머리 아이를 난데없이 바닥에 밀어 넘어뜨렸다.


“왜 그래?!”


“그냥”


누가 봐도 명백한 도발이었다. 둘은 우당 탕탕 치고받고 순식간에 교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선생님이 아이들을 떼어놓고 각자의 집으로 부모님을 호출했다. 집으로 가려던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다가 까만 얼굴에 피 멍이 든 피카소와 눈을 정통으로 마주쳤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바가지 머리는 씩씩거리며 피카소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피카소는 장난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못내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던 나는 후다닥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고, 그것이 나의 미술학원 마지막 추억이 되었다.    


(3탄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