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술대학에 졸업을 한 후 사정상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작업활동은 추후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물론 계속 이어나가야 하므로 집안에 이전보단 작지만 한 방을 작업실로 변경해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완전히 바뀐 환경 때문인지 이전에 해왔던 스타일 그리고 내용이 이번보다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는 걸 눈치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판단하고 그냥 지나왔지만 인스타나 다른 경로로 통한 피드백을 반영해 보면 나의 촉은 헛된 판단이 아니었음을 알아치게 됐다 - "이전보단 깔끔해졌다", "단순해졌다"는 등 무언가 그려왔던 대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략되어 내적 콘텍스트 개수가 축약되어 왔다는 위주로, 즉 이전에 비해 훨씬 추상적이고 미니멀해졌다는 부모를 포함한 주변인들로부터 다양한 관점들이 담긴 피드백들을 받았었다. 이후 이는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작업일생의 일부분을 장식할 새로운 시도일 것이라는 새로운 시점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느끼게 된 순간임을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새로운 학문적 경험을 맞이하고 이렇게 계속 다루고만 있던 정형된 스타일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 걸까?
우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서양의 미학보단 동양 특히 한국의 미학에 더욱 관심을 두는 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남는다. 한국 미학에 관한 철학과 학문에 대해 조금씩 탐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학문적인 내용만이 아닌, 비록 서양의 예술 기법을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작업을 제작했었다. 이러한 시도는 아마 내가 지난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던 환경이 발판을 마련해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생각이 드는 점은 - 실제로 보고 듣는 환경도 고려하자면 - 지내왔던 곳이 서양권이 중심이라 할 정도로 서양 미학과 이론을 계속해서 접해와서 그런 지 오히려 그 반대의 것에 끌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일 수도 있다. 나는 성격상 어떠한 장소나 대상을 오랫동안 지니게 되면, 질려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누군가 지시를 내리듯이 그것들이 갖고 있는 특성에 반대에 계속 매료되게 만드는 약간의 변덕쟁이 성향을 가진 듯하다. 비록 한쪽에 자석처럼 끌어당겨진다 하더라도 나의 커리어상 한쪽으론 치우치는 건 미래를 미리 바라볼 때도 오히려 나한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보아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듯이 두미학을 모두 가진다는 뻔하면서 가능성이 많은 실험성을 지니게 됐다. 특히 독일에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거면 한국적 미학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로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로지 서양의 미학만을 추구하지 않고 한국의 미학에 관한 요소도 적절하게 첨부해 적용할 수 기회가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내가 근래에 먼저 접하게 된 철학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 법한 '도가사상(道家思想)'이지만, 철학적인 개념으로만 조금 접했지 이렇게 미학과 관련해 새로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교는 고대의 민간신앙을 기초로 노장사상·역리(易理)·음양·오행·참위(讖緯)·의술·점성, 그리고 불교와 유교사상까지 받아들여, 심신의 수련을 통한 불로장생의 탐구와 기복(祈福)을 통한 현세이익을 추구하여 나가는 종교현상이다. 이를 크게 수련도교와 기복도교 또는 과의(科儀) 도교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 이런 수많은 사상 속에서 그나마 미학과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은 '비움 사상'이라 볼 수 있는데, 특히 한국의 전통 건축물에서 매우 잘 드러나는 사상중 하나이다. 우선은 직결된 자연에서 비물질과 물질로 나누는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비물질이란 물질 자체의 속성을 지우고 그의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로 정의된다. 즉 물질의 욕심을 버리기 위한 주어진 물질을 잘 다룸으로써 욕심을 버릴 수 있고 여기 일련의 과정을 합한 것이 비물질의 개념이 되어 공허의 상태를 지닐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공허란 부질없는 탐욕, 인위적 무리함, 그리고 물질적 집착과 같은 완벽한 상태에 가까워지는 집착으로부터 벗어서 얻게 되는 참된 것 그리고 진정으로 이로운 것이다.
이러한 뜻깊은 사상이 전통건축 특히 사찰에서 보이는데, 예를 들어 보현사 대웅전 앞마당을 보자면, 건물 주변 일부를 제외한 모든 마당은 바닥에 자갈로만 채워진 빈 공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선조들은 해당 빈 공간을 단순히 무로 지정하지 않고 유의 존재인 물질로 지정해 즉 물질을 버린 비물질로 얻은 물질로 지정해 모든 공간이 채워줬다고 정의를 내린 것이다. 이렇게 조선 회화에서도 비슷한 개념을 관찰할 수 있는 '여백의 미'도 아주 좋은 예시가 된다. 주대상에 대한 표현을 간결히 하고 여백을 강조하여 오히려 더욱 심오하고 풍부한 내용을 전달해 여백은 또한 여유의 공간으로 보는 이에게도 감정과 생각을 허용하는 비물질적인 속성을 지닌다. 위에서 언급된 사찰처럼 비어진 부분 때문에 미완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붓이 지나간 자취와 함께 더욱 공간 확장에 도움을 주고 내용도 충실해지는 것이다. 서양 예술에 경우 건축의 장식뿐만이 아니라 화백에 보이는 대상을 미메시스를 통해 꽉 채워서 색을 칠하는 경향이 크다. 이에 영향을 받아 파생된 현대미술에 관한 설명은 밑에 적어두었다. 결국엔 적용 대상만 다를 뿐 비움 사상과 추구하는 바는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유튜브에서 주로 지식습득, 영화/드라마 리뷰 등 시청을 하다 보니 당연히 내 유튜브의 알고리즘도 이에 따라 작동해 관련 영상들이 보고 싶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나열되니 정말로 다양한 분양의 설명위주로 가르치는 영상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안 그래도 한국 전통문화에 큰 관심을 둔 상태에 유홍준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한 영상을 보고 빠져들었다. 강의 내용 자체도 정치적인 관점보단 전통 예술에 더욱 초점을 맞춰 설명을 하시고 게다가 강의 방식도 꽤나 흥미로워서 집중할 수 있었다. 강의 내용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베이스로 지정해 본인이 지금까지 직접 탐방했던 거의 모든 한국의 유적지, 인근의 자연장소, 그리고 해외 특히 중국 일본의 유적지를 여행하면서 기록해 출간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재밌게 강의를 본 후, 책에 관한 내용이 더욱 궁금해 자세한 내용을 얻고자 바로 구매를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작업 철학에 비슷한 미학을 배운 뒤 다음처럼 조금씩 진행을 했었다.
배웠던 미학은 바로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추구된 미학의 일부인 검이불루 화이불치 (儉而不陋 華而不侈)를 현재 작품에 적용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가 있다. 본 뜻을 직역하자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 과한 미학을 추구를 거부하면서 빈약한 미학을 마찬가지 받아들이지 않는 중립적인 예술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적용했다는 뜻이다. 서양의 미학으로 굳이 비유를 하자면, 예컨대 정서적인 유발을 위해 극한의 색 이용과 형태를 과하게 왜곡한 표현주의와 외적인 요소를 극으로 배제한 미니멀리즘이 동시에 해당 특징을 한 대상에 드러내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된다. 이러한 중립적인 미학은 또한 조선시대의 지어진 사찰, 궁전, 절 그리고 이들을 비롯한 전체적인 도시체계에 많이 드러난다. 좋은 예시로는 특히 모든 궁전 중에서 창덕궁을 꼽을 수 있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정조대왕이 언급한 <궁궐지(宮闕志)>와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궁궐이란 임금이 거처하면서 정치를 하는 곳이다. 사방에서 우러러 바라보고 신하와 백성이 둘러 향하는 곳이므로 부득불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여야 하며 그 이름을 아름답게 하여 경계하고 송축하는 뜻을 부치는 것이다. 그 거처를 호사스럽게 하고 외간을 화려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궁궐지(宮闕志)
'궁원 제도가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검소란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란 악의 근원이니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단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이 말인즉슨 임금 백성 모두에게 너무나도 화려하면서 사치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누추하면서 빈약하지 않은 중립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궁전을 짓는데 수많은 노력을 해왔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특히 조선경국전에 검소가 많이 언급되는데, 이는 위에서 이미 설명한 비움 사상의 비물질에 관한 진정한 성질과 많은 관련성을 부여받고 있다. 그렇다 보니 외국 특히 유럽과 중국의 궁전하고 비교할 때 규모와 장식에 다소 덜하다고 느끼지만, 이는 의도대로 정말 잘 나타나고 있으며, 이렇게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진 외국이 아닌 조선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미학을 볼 수 있는 한국의 아이덴티티로 지정되는 발판을 마련해 줬다고 해도 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비교했을 때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존재할까?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서양의 현대예술사의 중요한 철학 흐름이 되어 비슷한 정의를 가지고 있는데, 먼저 둘의 공통점은 불필요한 요소(한국 - 사치스러운 것/서양 - 근접적인 것)들을 모두 배제한 뒤 필수적인 부분만 남겨둬 해당 대상의 본질적인 성질을 최대한 드러내고자 하는 위 조선 미학과 유사한 특징을 가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선 미니멀리즘은 본격적으로 단순함과 간결함을 통한 기교를 최소화해도 대상의 고유한 성질 즉 궁극적인 본질을 구현할 수 있는 기본 전제를 지니고 있는 미학이다. 반면 비움 사상과 여백의 미를 비롯한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철학적인 관점의 본질과 관련하기는 보다 일상생활과 인간성의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한 미학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미니멀리즘과 같은 본질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과연 전통건축이 지니고 있는 실용적인 설계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게 된다. 이렇게 실용성과 철학적으로 나뉘진 두 미학을 가지고 서양의 예술적 특징만을 고집한 게 아닌 동양의 예술철학까지도 혼합해 이중적인 요소가 담긴 작업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고 이뿐만이 아닌 하는 과정 중 종교와 문화로 인한 사상을 바탕으로 나누어진 다른 동서양의 차별화된 짙은 이분법을 옅게 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다.
참고한 서적 & 자료
1. 한국 전통건축과 동양사상 (임석제)
2.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서울편 I (유홍준)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