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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핸 Feb 21. 2024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릭 루빈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감상문


우리 모두가 창작가다. 이유는 누구나 지니고 있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곧 뽐낼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목격, 판매 등과 같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기록적인 관찰보단 뇌의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져 내재되어 있는 모든 고유의 의식들이 후에 현실 밖으로 나와 재현된 것이 결국 창의성인 것이다. 진정한 창의력이란 오감으로 받아들여진 모든 정보가 일체화된 후 의식이란 필터링을 거치된 다음에 무의식 속에서 생겨난 추상적인 개념이 곧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원초적인 요소인 것이다. 마치 세포 속에 제일 깊이 존재하는 DNA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고 매번 떠올린다. 결국 이런 비물질성을 지닌 생산적인 행동을 반복해서 개인적인 수련을 통해 전문적으로 다듬어진 창의적인 생산가들은 바로 예술가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된 창의력에 필요한 요소는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창의력의 궁극적인 소스(source)는 당황할 정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내부에서 저절로 탄생하는 일화를 거치는 것이 아닌 외부로 이미 존재한 대상을 오감으로 느낀 후 우리 것으로 바꿔서 밖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각자 방대하면서 다른 수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재밌는 특징을 가진 우리는 때론 잘 때 다양한 내용과 연출을 표현하는 무작위로 꿈을 꿔 어쩜 초현실주의적인 순간을 익숙지 못해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해몽과 같은 비과학적인 해석에 많이 의지한다. 그렇다 보니 중복돼서 겹쳐지는 창의성은 세상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으며, 고로 예술에서는 경쟁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순간들 대부분 지나가지만 예술가들은 다르다. 그들은 바로 세상 밖으로 표출한다. 그들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현실세계로 변환한다면 그 규모는 꿈보다는 유한해 한계적일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는 무한하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 내용을 다르게 가꾸어 나가면서 수많은 다른 실험을 도전해 스스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이어나가는 창조자라는 아이덴티티를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의력이란 단순한 경로로 통해 생각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행위라는 사실에 부정하고 싶다. 그 경로는 생각보다 주변으로부터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쉽게 변질되는 유동성을 지니고 있어, 특히 우리는 매일 무의식적으로 시작되는 기초적인 사소한 습관으로부터 변질되기 때문이다. 습관으로 작용받는 기준은 각 사람마다 모두 다르므로, 누군가에겐 맞는 습관은 한편 다른 누군가에겐 맞지 않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구체적인 스케줄을 맞춰 가면은 창의력이 잘 발휘되는 이가 있다면 고질적인 계획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기준에 적용되는 습관을 모두 떠나 모두에게 필히 적용되어야 하는 습관을 나는 말하고 싶다. 몇 가지만 꼽자면 - 스스로 부족하다고 단정 짓기, 작업 안 하기(게으름),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 실행 불가, 확실한 순간에만 작업하기 등 다른 분야에도 다소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습관이 있다. 여기서 어떠한 공통점들이 가졌을까? 어떠한 이유로 인한 무언가로 가로 막혔 거나 혹은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에 한계를 두는 ‘제한성’이 보인다. 즉, 장애적인 제한성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구속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어떤 때보다 더욱 창의적인 발상할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그러면 이런 자율성을 얻고 싶다면 처음부터 어떠한 행동을 취하면 될까? 일단 가능한 모든 시도를 다 해보자, 항상 ‘만약’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본 후 아이디어를 구현해 본다는 생각을 한 바로 현실세계로 변환하는 실행에 옮겨보아라. 만약 상황의 여건이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과 맞지 않는다면 기록이라도 해라. 창의성에 대해 평가를 받으려면 사용된 아이디어를 결국 보고, 듣고 만져야 된다.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행위는 결국 평범함으로 귀결된다.    


때로는 철저한 계획이 진정한 창의성을 억제시킨다. 때로는 아니 대부분의 위대한 작품은 계획보단 무계획에서 많이 나온다. 나의 경함 담을 반영하자면, 직접 종이에 꽤나 긴 시간을 투자해 그린 계획 스케치를 만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뒤를 돌아보자면 그 스케치 대로 100프로 일치하게 표현된 적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본판은 건물의 철근처럼 창작한 해당 작품의 기초적인 발판만 마련해 줬지, 작품 완성에는 결정적인 영향은 주지 못했다는 거다. 오히려 작업을 하는 도중 유동적으로 바뀐 선택으로 인해 후에 작업 완성의 만족도는 더 받았다. 결국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렇다고 아이디어 스케지를 하지 말자는 극단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닌 계획가 무계획을 둘 다 적절히 활용을 해서 더 좋은 작업 과정의 길을 가꾸어 나가자는 의견을 말하는 게 더욱 적절해 보인다. 위에서 완성이란 키워드를 계속 언급해 왔는데 사실 ‘완성된’이란 절대적인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작품에 더욱 손을 데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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