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형태소 Feb 18. 2024

있는 그대로

사랑에 대하여 3 : 프랑수아즈 사강 <패배의 신호>를 읽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패배의 신호’는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자신에게 물질적 풍요를 제공하는 중년의 남자 샤를과 함께 사는 루실은 사교모임에 나갔다가 디안의 어린 애인인 앙투안을 마주치고 사랑에 빠진다. 비밀리에 만남을 이어가던 둘은 끝내 샤를과 디안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공식적으로 연인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궁핍한 생활이 이어짐에 따라 루실과 앙투안 사이에는 점차 갈등이 쌓여가고, 루실의 취직과 임신중절수술이 도화선이 되어 둘의 관계는 파경을 맞는다. 루실은 다시 샤를에게 돌아가고, 몇 년 뒤 다시 마주친 앙투안과 루실은 이전의 뜨거운 기억들은 모두 잊은 듯이 서로를 대한다.

루실과 앙투안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비밀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사교모임을 오가던 때가 있었다. 둘의 미묘한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샤를은 루실을 탓하거나 앙투안에게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만남을 뒤에서 조용히 도와주는 듯싶기도 하다. 루실이 샤를 자신을 떠난다면 자신의 삶에 의미가 없어질 것이고 그 후로도 다른 여자를 만나지도 않을 것이고 루실만을 기다릴 것이라고 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방식대로 루실을 그녀 그 자체로 사랑한다.

앙투안과의 관계를 고백하고 그에게 떠나겠다는 루실에게 샤를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루실, 언젠가 나한테 돌아와요. 난 당신을 당신 자체로 사랑해, 앙투안은 자기 짝으로서 당신을 사랑하지. … 하지만 난 당신이 나와 무관하게 행복하기를 바라오. … 게다가 앙투안은 머지않아 당신이 당신인 걸로, 그러니까 당신이 향락적이고 무사태평하고 비겁한 걸로 나무랄 거요, 아니면 벌써 나무랐을지도 모르고. 틀림없이 그가 당신의 약점 혹은 결점이라고 부를 것들에 대해 당신을 지탄할 거란 말이지. … 당신이 그 모든 모순 때문에 그토록 명랑하고 재밌고 착하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


샤를과 루실의 관계에 대해서는 단순히 경제적인 잣대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에서의 핵심은 “상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지”, “내가 누굴 사랑할 수 있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샤를은 루실이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고, 그런 그녀를 사랑했다. 루실은 그녀 자신이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샤를을 떠났고, 다시 돌아왔다. 상대의 그 모든 모순을 알면서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것, 그런 그녀를 그 자체로 둘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by. 새싹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완벽하지 않은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