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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Apr 14. 2024

사랑할 자격은 누구에게

사랑에 대하여 4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사랑이 대체 무엇이길래 나는 생애 다시없을 지독한 이별을 방금 한 사람보다 더하게 사랑을 생각해 본다. 지난주 장장 2년에 걸쳐 받아온 제자훈련(참고로 말하건대 내 종교는 기독교이다)을 끝냈다. 재수강이었다. 사랑의 종교를 믿는 만큼 사랑을 더 잘하고, 많이 가진 사람이고 싶은데 실제 모습은 전혀 다른 것만 같아 초조한 마음에서 남들은 한 번도 안 할 선택을 해버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고민은 여전하다. 매일 마주하는 얼굴을 사랑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밖으로 뻗어내라면? 얼굴도, 심지어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지금 당장 사랑하라는 말에 사랑할 수 있는가? 그놈의 사랑, 사랑에 노이로제가 걸릴 판이었다.


시간 순을 봐서 알겠지만 종교적인 사랑에 대한 사유와 ‘형태소’에서의 글 짓기는 동시에 진행되어 왔다. 사랑이 부족하다 보니 형태소에서 그동안 써온 글에서도 내 글은 별 깊은 고민 없이 흘러왔다. 깊은 사유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한편, 애당초 사랑도 재능의 영역인가? 생각도 해보았다. 고민의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저 내 머릿속에 사랑은 영원하다는 낙천적인 믿음이 너무도 간단명료하게 진리의 명제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파헤쳐보자는 집념하에 이 책을 읽고 평을 적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우선 이 책은 표현하자면... 좀 그랬다. “쯧쯧”(연민을 느끼거나 마음에 못마땅하여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 보는 내내 혀를 찼다. 낭만 가득한 사랑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냉담해지는 사랑도 아니라 극한에 내몰린 현실 속에서 서투른 사랑을 지독하게 한다. 그것도 겨우 14살 아이가 말이다. 그래서 더욱 서글펐고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위의 표현에 오해 없길 바란다.


주인공 모모는 1970년대 프랑스 파리의 빈민가에서 자란다. 매춘여성의 부모 되기를 합법적으로 막은 프랑스의 제도와 아직 피임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늦은 과학의 만남은 모모와 같은 아이들을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로 내몰았다. 그런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유태인이자 매춘여성 출신 로라의 품에서 모모는 살아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쉴 새 없이 혀를 찼다. “쯧쯧” 모모가 불쌍해서,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이 너무도 가혹해서. 희망이 있을까 싶은 상황에 모모가 언제 사랑을 배울 수 있었는지, 그 발원지가 궁금했다.


찬찬히 읽은 책의 구절구절에는 그 해답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로라가 따뜻한 말과 포옹, 키스를 해주는 등의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홀로코스트를 겪어 겁이 많은 그녀는 다수의 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을 해도 심한 소리 없이 그저 본인이 신경안정제를 먹었고, 채소만 넣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다. 계속해서 글을 읽어나가는 동안에 나는 로라가 그저 동정, 연민과 비슷한 무언가를 모모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 없는 아이를 애잔하게 여기는 마음, 독자인 내가 모모를 대하는 그 심정 그대로 말이다. 그렇기에 길거리에 나가 물건을 훔치고 반응을 기다린다거나, 우산을 사람처럼 꾸며 안고 자는 모모의 결핍이 당위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로자를 떠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홀로 있을 로자에게 돌아가는 모모에 반복적으로 의아함을 표출하면서도 나는 그것이 연민인 줄로만 알았다.


동정 혹은 연민을 닮은 형태의 무엇은 둘 중 한 사람이 가장 무력해졌을 때 비로소 이름을 드러냈다. 로자의 머리가 다 빠지고, 구십 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모습에도 모모는 무척 아름답다 말한다. 단순히 왜곡된 기억이 아니라 그저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다웠다고 기억한다. 당장 자신이 빈민구제소에 갈 위험도 있지만, 병원에 가서 의미 없는 생을 지속하기를 죽기보다 무서워하는 로자를 위해 주변 어른들에게 담대한 거짓말도 한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숨어 살면서도 모모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아름답지 않아 슬퍼하는 그녀를 위해 이미 싸늘해진 그녀임에도 꾸며주고 보듬어준다. 나는 이 이상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를 그쳤다.


이 책에서는 사랑과 연민,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은 곳에 숨겨져 있다. 로자가 죽는 날이 가까워오자 마을 사람들은 각자 인종, 나이, 계층, 종교 모두 다르지만 로자에게 친절을 베푼다. 길거리 상인은 대놓고 음식을 훔치는 모모의 머리를 그저 웃으며 쓰다듬어 주고, 금발머리의 미녀 나딘은 언제든 찾아오라며 세상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건네준다. 난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오니 이미 내려진 답을 복습하는 것에 불과했다. 고작 이 감정이 연민인지, 사랑인지 책상에 앉아 판단하는 것은 세상 가장 쓸모없는 일이었다. 인지상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인간이라면 응당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기꺼이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그 둘은 대대적인 정의의 차이가 아니라 행동의 차이였다.


모모는 그저 했고,, 그에 반해 나는 아주 오만하게 사랑을 높이 샀다. 피로 맺어지지 않아도, 무저갱의 상황이라도, 아주 좋은 것을 해줄 수 없어도, 그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었다. 이미 모모는 그런 사랑을 알아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로 글을 끝맺었나 보다. 혀를 차는 소리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돌아왔다.



by.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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