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하는 걸 했으면 좋겠어

아들의 세계

by 박솔

아들은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겁 많고 예상치 못한 신체 접촉을 싫어하고 자신에게 부당하다 싶은 일은 잘 못참는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커가면서 점점 조절해가면 된다. 하지만 기질은 이렇다.

다른 점도 많다. 일단 아들은 좋아하는 것에 한 번 빠지면 잘 못듣는다. 계속 이야기 해줘도 엄마의 마지막 말에 대답만 하고 다음 행동은 없다. 그래서 왜 엄마 말 안 듣냐는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된다. 쟤가 날 무시하나. 쟤는 대체 왜 그럴까 계속 생각하던 중 알았다. 쟤는 원래 그렇다는 걸. 아들들이 많이 그렇다는 걸. 눈 마주하고 듣는지 확인하면서 이야기 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을. 전문가들이 강의에서 이야기하거나 책에 적혀 있는 것을 여러 번 봤는데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아들은, 최소한 우리집 아들은 자신이 집중하고 있을 때 내가 무언가 이야기 하면 잘 못듣는다. 추가적으로 남편도 비슷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

이들의 장점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남편은 애플에서 제품을 출시하면 몇 날 며칠 그 이야기만 한다. 다른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도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거 사!" 이 말을 듣고서야 끝난다. 그리고 제품을 사서는 또 몇 날 며칠 그 놈을 가지고 감탄했다 신기해했다 웃었다 한다. 그리고 지난 번 버전과 무엇이 다르고 어떤 기능이 추가되었는지 한참신나서 이야기 한다. 내가 볼 땐 지난 번 제품이랑 거의 똑같은 것을 왜 산 것인가 싶은데......

얼마 전부터 아들이 '창의로봇' 이라는 로봇 만들기 방과후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들의 최애 시간이다. 이 날을 일주일 내내 기다린다. 창의로봇 수업까지 며칠 남았는지 매일 말해준다. 그리고 책에 있는 것을 스스로 만들었다 풀었다 한다. 아직 진도 나가지 않은 것도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보고 몇 시간씩 가지고 논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어제였다. 새벽에 조금 일찍 깨서 안방에 있었는데 아이가 자다가 깨서 엄마한테 와서 통곡을 한다. 뭐라고 웅얼웅얼하면서.

무슨 일인가. 안좋은 꿈을 꿨나. 왜 그러지 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창의로봇 못했어. 지나갔어." 이 말의 도돌이표.

이게 무슨 말인지. 오늘이 화요일인데... 어제 자기 전에 내일 창의로봇 간다고 좋아서 빨리 자자고 하지 않았니?

지난 주에 미술 수업에 깜빡하고 못가고 집으로 온 것과 창의로봇이 겹쳐 생각난 것인지. 미술 수업 빠진 것이 창의로봇으로 바뀌어 꿈에 나온것인지 한참을 꺼이꺼이 울면서 못갔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아니야, 아들. 창의로봇 오늘이야. 오늘 가면 돼."

그리고 1초. 2초. 아들이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번쩍 들고 눈물을 뚝 그친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화장실에 간단다. 뭐니, 아들아? 다 풀린거니? 나중에 물어보니 수업 못가고 화요일이 지나갔다고 착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제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니 절망스러웠던 것 같다.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하고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왔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온 남편에게도 이야기해줬다. 남편도 나와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다시 로봇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날 만들게 될 로봇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한참을 설명한다. 여기서 아들의 진심을 본다. 로봇 만들기를 향한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아들이 이렇게 사랑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 애정을 쏟을 만한 시간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 역시 행복할 것 같다. 물론 엄마가 여러 번 말할 때는 집중 좀 해주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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